“한글 배우니 엄마에게 제일 먼저 사랑의 편지 쓰고 싶었어요”

국민일보

“한글 배우니 엄마에게 제일 먼저 사랑의 편지 쓰고 싶었어요”

춘천 성인문해교실 제1회 졸업식…기쁨의 눈물 흘린 14명의 졸업생

입력 2020-02-12 16:37
12일 강원 춘천시 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인정 성인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졸업장과 꽃다발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글을 배우니 엄마에게 제일 먼저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엄마”

강원 춘천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 인정 성인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울려 퍼진 김복순 할머니의 시 중 일부다. 김복순 할머니는 14명의 졸업생을 대표해 시를 낭송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처음으로 쓴 편지였다.

“나 아장아장 걸었을 때 예쁜 이불을 덮어주시던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종일 이불만 뜯는 치매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서는 이불을 뜯지 마세요. 한글을 배우니 엄마에게 제일 먼저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엄마…”

12일 강원 춘천시 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인정 성인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표창장을 받은 뒤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강원 춘천시 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인정 성인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강원 춘천시 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인정 성인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복순 할머니의 편지에 동기들은 함께 눈물을 훔쳤다. 자녀를 임신한 채 남편을 떠나보낸 뒤 억척스러운 삶을 헤쳐 온 사연,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찍 식모살이를 한 인생, 피난길에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들을 건사해야만 했던 삶 등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살아온 13명의 동기들은 김복순 할머니와 함께 울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늦은 나이에 배움을 시작한 어르신들은 성인 문해교실에 모여 부지런히 한글을 공부했다. 졸업생 14명은 12일 열린 제1회 졸업식에서 난생처음 졸업장을 받아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거나 밝은 미소를 지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오며 손에 새긴 주름들을 보상받듯 졸업장과 함께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어르신들은 넘치는 기쁨을 표현했다. 자녀와 손자들도 한아름 꽃다발을 품에 안기며 함께 기뻐했다.

12일 제1회 초등학력인정 성인 문해교육 졸업식이 열리는 강원 춘천시 교육문화관 입구에 졸업생들의 시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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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문해교실을 마치며 각자 한 편의 시를 썼다. 서신방 할머니는 다른 어르신들도 배움의 길로 초대한다는 내용의 시를 쓰고 “이제는 책을 조금씩 읽을 줄 알고 동화책의 재미도 이젠 알아요. 우리 같이 중학교 동창생도 되었으면 해요. 조금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아요”라고 한글을 깨우친 행복을 드러냈다.

“높은 산 고목처럼 살아온 내 인생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도 받지 못하고 남편의 사랑도 바람같이 날아갔네”라며 시의 운을 뗀 이승훈 할머니는 “글 몰라 가슴치고, 돈 없어 가슴치고. 80년 인생길 돌아보면 후회도 많아 아들 딸 5남매 잘 키웠으니 내 얼굴에 주름살 굽이굽이 접혔네. 세월 따라 흐르는 인생길 허무해도 기역, 니은 배운 공부 내 마음에 가득하네”라고 적어 늦은 나이에라도 한글을 배운 기쁨을 표현했다.

이날 졸업생 14명 모두는 졸업장과 함께 초등학력 인정서를 받았다. 어르신들이 2년 동안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교육을 마쳤다고 교육부가 인정한 것이다.

12일 강원 춘천시 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인정 성인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박봉훈 관장이 졸업생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고령 졸업생인 이영애(81)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피난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 셋을 돌보느라 배울 때를 놓쳤다”며 “자녀가 자랄 때 (공부를) 못 도와줬는데 이제 간판을 읽을 수 있고, 교회 가서 성경책도 볼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몇몇 졸업생은 내친김에 중학교 과정까지 밟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봉훈 춘천교육문화관장은 “어르신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오늘이 또 다른 시작이ㅣ 돼 다시 한 번 배움의 열정을 지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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