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일재산 환수소송’ 민영휘 후손, 대법원 패소 확정됐다

국민일보

[단독] ‘친일재산 환수소송’ 민영휘 후손, 대법원 패소 확정됐다

입력 2020-02-17 15:09
민영휘

대표적 친일파인 민영휘의 후손이 대한민국 정부와의 ‘친일재산 환수소송’에서 최종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3월 1심 소송 시작 후 3년 만에 나온 결과다. 민영휘 후손 측은 1심에서 이겼지만 항소심에서 국가에 패소했다. 대법원은 “법리 오해가 있다”는 민영휘 후손 측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심 판단을 확정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최근 민영휘의 후손인 유모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영보합명회사(영보)가 “서울 강남구 세곡동 땅 1492㎡(약 451평)에 대한 소유권을 돌려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항소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을 때 본안 심리를 열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민영휘는 일제에 조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0년 조선총독부에서 자작 작위를 받은 대표적 친일파다. 그는 그 대가로 거부가 됐고 ‘조선 최고의 땅 부자’로 불렸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7년 그를 재산환수 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단했다. 세곡동 땅을 놓고 국가와 소유권 분쟁을 벌인 유씨는 민영휘의 셋째 아들 민규식의 의붓손자다.

민규식은 22살이었던 1910년 시행된 일제 토지조사령에 의해 문제의 세곡동 땅을 소유하게 됐다. 유씨 측은 1933년 민규식이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매매회사 영보에 이 땅을 출자했고, 그에 따른 소유권이 후손인 자신에게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이 땅은 1949~1950년 ‘유상몰수·유상분배’ 원칙에 따른 농지개혁법이 시행되면서 국가 소유가 됐다. 민규식은 그 직후인 1950년 7월 납북됐다.


민규식의 후손들은 세곡동 땅이 제대로 분배·상환되지 않았고, 이럴 경우 당시 농지개혁법에 따라 원소유자에게 소유권이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처음 소송을 제기한 건 유씨의 어머니 김모씨였다. 김씨는 2013년 소송을 냈으나 “영보 명의의 땅에 대한 소송제기권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그러자 유씨가 2017년 3월 “행정절차상 오류로 세곡동 땅이 국가에 잘못 귀속됐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며 반박했다.

1심은 유씨 측 승소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민규식이 세곡동 땅을 친일행위로 얻었다는 근거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민규식이 토지 소유권을 얻은 1910년 휘문의숙을 막 졸업해 친일 행적이 보이지 않고, 아버지 민영휘의 친일행위 대가로 얻은 재산을 증여받은 것이란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세곡동 땅이 영보에 출자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국가 승소로 판결했다. 토지 소유권의 전제가 되는 출자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과거 기록 사실조회 과정에서 유씨 측에 불리한 자료가 나왔다. 국가 측 소송대리인은 국가기록원·강남구청 등에 과거 자료를 탐문하면서 민규식이 납북되기 직전인 1949년 작성된 농지소표(농지분배 전 현황조사 자료)에 ‘경작자는 민규식’이라고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 유씨 측 주장대로 출자가 이뤄졌다면 영보가 소유자로 나와야 하는데 이를 뒤집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세곡동 땅이 친일재산”이라는 국가 측 주장에 대해선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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