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코로나 공포 이긴 대구의 ‘이상한 매진행렬’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코로나 공포 이긴 대구의 ‘이상한 매진행렬’

입력 2020-02-25 00:20 수정 2020-02-25 00:20
페이스북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공포로 얼어붙은 대구 시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음식점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 음식을 시키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재료가 모두 소진됐습니다.”

옆집 돈가스 집도, 앞집 케이크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대구의 ‘이상한 매진행렬’은 21일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 맛집일보’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식당들의 식자재를 소비해드리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페이스북 캡처

이날 대구맛집일보는 텅텅 빈 동성로 거리 사진을 올리며 “지금 동성로 상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면서 “많은 업체가 가지고 있는 식재료도 소비하지 못해 이중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도움이 필요한 업주님들 직원분들 메시지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알렸습니다.

게시물이 올라간 다음 날, 페이지 관리자는 재료가 많이 남았다는 쌀국수 가게와 김치찜 가게의 제보를 받고 이 가게들을 페이지에 소개했습니다.

페이스북 캡처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게 근처에 사는 대구 시민들이 가게를 찾아 남은 음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게시물에는 “주문을 완료했다”는 인증 댓글이 쏟아졌고, 멀어서 가게를 방문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멀리서나마 응원한다”며 댓글을 달았습니다. 뜻밖의 인기에 봉산동에 위치한 한 카페는 업로드 한 시간 만에 재료를 소진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매진행렬은 카페에서 닭갈비집으로, 육회집으로, 통닭집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지나가던 시민이 “과일 파시는 할아버지가 상해가는 과일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며 대신 제보하기도 했습니다.

페이스북 캡처

이에 자영업자들은 고마운 마음을 시민과 페이지 관리자에게 전했습니다. 대구에서 귤을 팔고 있는 한 상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귤이 80박스나 남았는데 처분을 못 해서 고민중이었다. 그런데 시민들의 도움으로 10분 만에 모두 팔았다”면서 “경제가 많이 어려운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카페 주인 역시 댓글로 “시민분들이 아니었다면 다 버려질 뻔했다”면서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놀랐고 감동이었다”고 감사 인사를 보냈습니다.

물론 이런 캠페인이 바이러스에 무너져가는 전국의 자영업을 모두 살릴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작고 따뜻한 마음이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바이러스 공포’에 대한 백신, 어쩌면 따듯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홍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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