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다던 대구 사장님, 이제 돈 대신 마스크 받아 기부해요” [인터뷰]

국민일보

“죽고싶다던 대구 사장님, 이제 돈 대신 마스크 받아 기부해요” [인터뷰]

대구 ‘식재료소진운동’ 시작한 파워블로거 하근홍씨

입력 2020-02-26 09:06 수정 2020-02-26 10:54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맛집일보 캡처

“대구가 힘듭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식당들의 식자재를 소비해드립시다”

대구지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500명을 넘어서면서 대구는 바이러스 공포증에 휩싸였다. 동네 약국의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순식간에 동났고, 대구 봉쇄론이 나오면서 라면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감염 공포에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자 사람들로 북적이던 동성로 식당가는 텅비어 대구는 며칠 만에 유령도시가 돼버렸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대구에도 온기는 있었다. 21일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맛집일보’ 관리자 하근홍(38)씨가 “코로나 불황으로 쌓인 재료를 팔아주자”고 제안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개점휴업 상태인 식당들을 찾아 자발적으로 재료를 사가는 일종의 재료소진운동이 퍼진 것이다. 남은 귤 80박스가 10분 만에 동나고 쌓인 고기 500인분이 한 시간 만에 소진됐다. 연이어 올라온 닭갈비, 돈가스, 쌀국수집 모두 완판 소식을 알렸다.

시민들의 따뜻한 위로에 상인들은 선행으로 답했다. 음식값 대신 마스크를 받아 기부하는 상인이 있는가 하면 대구에 파견된 의료진의 도시락이 부실하다는 소식에 직접 음식을 해서 나르는 상인도 있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응원이 쏟아졌다. 대구에서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는 평도 있었다.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재료소진운동 기획자 하씨에게 25일 기획 의도를 물었다. 하씨는 2013년부터 대구의 맛집과 가볼 만한 가게를 소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파워블로거다. 페이지를 받아보는 사람은 약 50만명이다.



- 대구 식당 경제상황이 어떤가요

“전화가 오더라고요. 죽고 싶다고. 번화가 기준으로 월세가 1000만원 정도 하는데 손님이 뚝 끊기니까 매출은 없지, 월세랑 인건비는 계속 나가지. 제가 맛집 페이지를 운영하니까 하루에 만나는 사람들의 70%가 식장 사장님들인데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제 소강상태로 접어들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다음 주면 괜찮을 거다, 언제 끝난다 이런 기약이 있으면 참을 수 있는데 기약이 없으니까 그게 진짜 힘들다고 합니다.”

- 재료소진운동 아이디어가 기발하다는 평이 많은데

“부모님이 식당을 하셨어요. 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마음 아플 때가 만든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거든요. 다른 사장님들도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큰 매장 같은 경우에는 냉장고에 쌓여있는 음식 재료가 한 달 월세에 맞먹는 경우도 많아요. 그 많은 음식을 버릴 바에야 원가에 팔아보자 이런 생각이었죠. 손님들은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살 수 있고 사장님들은 손해를 줄일 수 있고. 서로서로 좋잖아요.

페이스북 캡처

그렇게 해서 21일 페이지에 ‘식재료를 팔아드리자’라고 올린 거였어요. 다음 날 몇몇 분들이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쌀국수집 사장님이랑 김치찜 사장님이랑. 1만2000원에 판매하던 국수를 만원에 배송까지 해드리고 이런 식이었죠. 근데 이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회운동처럼 번진 겁니다.”

- 반응이 폭발적인데
“사회운동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힘든 사장님들을 조금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시민들이 나서주실 줄 몰랐죠. 지금은 글을 올리면 맘카페나 커뮤니티에서 퍼가셔서 엄청나게 빨리 팔려요. 평균적으로 게시물이 올라가면 한 시간 이내에 그 많은 재료가 소진된다고 합니다. 줄을 서면서까지 팔아주시는 시민분들도 있고요. 해물칼국수집 같은 경우에는 바지락이 남아서 재료를 소진해달라고 글을 올렸는데, 원재료값의 몇 배를 주고 가시는 분도 많다고 해요. 일종의 기부활동처럼 된 거죠. 기사가 나가고 다른 지역의 맛집 페이지들도 재료소진 운동을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산 포항 광주 여기저기서 다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따뜻한 시민들 덕입니다.”

상인들의 감사인사. 페이스북 캡처

- 상인들 반응은 어떤지
“긍정적인 에너지가 돌고 있는 것 같아요. 죽전동에 있는 쌀국수집 사장님은 음식값 대신 마스크를 받아 대구시에 기부를 하고 계십니다. 마스크 3개를 가져오면 양지쌀국수로 바꿔주세요. 다른 지역도 그렇겠지만 대구는 마스크 품귀 현상이 더 심하거든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주저앉고 싶다고 하셨는데 신나셨는지 아예 재료를 더 사서 기부활동을 이어간다고 하신답니다. 대구에 파견된 의료진들 도시락이 부실하다는 기사를 보고 직접 음식을 해서 가져다드린 음식점도 있어요. 힘든 분위긴데도 오히려 으쌰으쌰하는 분위를 보면 괜히 뭉클하고 흐뭇합니다.”

음식값 대신 마스크를 받아 기부한다는 쌀국수집.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맛집일보 캡처

-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식당들이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다 하지만 사실 발병 이전부터 경제가 많이 안 좋았거든요. 코로나 사태를 이겨낸 후에도 재료소진운동을 계속해서 어려운 사장님들을 돕고 싶습니다. 식당뿐만 아니라 제조공장도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운동 범위를 넓힐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이 대구국채보상운동 공원 바로 앞에 있습니다. 공원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려운 상황일수록 시민들은 뭉치는구나. 이런 시민들이라면 코로나도 이겨낼 수 있겠다. 재료소진운동도 예전 금모으기 운동처럼 전국적으로 퍼지길 기대합니다.”

이홍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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