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중보다 상대팬들로 찬 게 낫죠” KBL 무관중 경기 현장

국민일보

“무관중보다 상대팬들로 찬 게 낫죠” KBL 무관중 경기 현장

입력 2020-02-27 15:53
26일 고양체육관에서 울산현대모비스와 고양오리온의 2019-2020 프로농구 정규시즌 무관중 경기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무관중보다는) 당연히 모두 상대팀 팬들로 관중석이 꽉 찬 게 낫죠.”

프로농구(KBL)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26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KBL 2019-2020 정규시즌 고양 오리온과의 경기 직전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이 일방적인 상대방의 응원에 압박감을 느낀다는 게 스포츠계의 정설이지만 그마저도 아예 관중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였다.

KBL은 25일 긴급 이사간담회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대표 휴식기 이후 26일부터 재개되는 시즌 잔여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여자농구(WKBL)와 한국배구연맹(KOVO)은 일찌감치 무관중 경기를 시행 중이었다.

98년부터 프로농구 감독을 맡은 현역 최고참 유 감독도 사상 초유의 무관중 경기를 앞두고 “이런 적은 처음이네. 선수들도 낯설어한다”고 전했다. 이날이 사령탑 데뷔전이었던 김병철 오리온 감독 대행도 “선수들이 독려되게 감정을 전달 해줘야한다”며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박수를 쳐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색한 기류는 경기 개시 시간인 오후 7시가 다가오자 더욱 짙어졌다. 경기 시작 전 현명호 고양체육관 장내 아나운서가 홈팀 오리온 선수들의 이름을 힘껏 외쳤지만 이에 호응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평소 팬들의 선호도가 높은 1층 관중석은 소수 KBL 관계자들의 모습만 드문드문 보였다. 현 아나운서는 장내 방송으로 “팬분들이 TV로 보고 계십니다”라고 선수들에게 격려를 전했다.
2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전자랜드와 안양 KGC인삼공사의 2019-2020 프로농구 정규시즌 무관중 경기 모습. 한국농구연맹 제공

이윽고 함성 없는 경기가 시작됐다. 공이 바닥을 두들기는 소리가 텅 빈 경기장을 채웠다. 애매한 판정이 나와도 야유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오리온이 경기 막판 승부를 확정짓는 3점 플레이에 성공했을 때도 장내 음악만이 흘렀다. 오리온의 득점, 리바운드 때마다 선수명을 부르는 현 아나운서의 목소리만이 그나마 체육관에 크게 울려 퍼졌다.

현 아나운서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대행님이 지휘하시는 첫 경기인데 팬들이 안 계셔서 아쉬웠다”며 “관중이 들어차야 스포츠가 완성되는 것 같다. 선수들이 힘이 날 것 같지 않아 걱정이 됐다”고 염려했다. 그러면서도 “관중석이 비어 마이크 소리가 잘 뻗어나간다”며 “앞으로도 오리온 선수들이 힘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진수(오리온) 선수는 경기 시작 전 기록원들에게 ‘관중이 안계시니 홈팀 응원해주세요’라고 농담하더라”는 비화도 전했다.

오리온이 68대 64로 승리를 거둔 직후 기자회견에서 본격적인 무관중 경기 소감이 나왔다. 김 대행은 “내 목소리가 하나하나 다 들리겠더라”며 “더 목소리를 크게 내도 되나 헷갈렸다. 혹여 상대편에게 들릴까 걱정돼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다”고 돌아봤다. 또 “경기가 풀릴 때나 안 풀릴 때나 관중들이 호응해주시면 동기부여가 되는데 오늘 그게 많이 생각났다”고 아쉬워했다. 유 감독도 “확실히 너무 어색했다. (무관중이) 경기력에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조용해서 지시 전달은 잘 되지 않느냐는 질문엔 “지시 전달은 관중들 계셔도 잘 된다”고 답하기도 했다.

생소해도 선수들은 적응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오리온 주장 허일영은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신경쓰지 말자’고 독려했다”고 전했다. 이날 13득점 8어시스트로 오리온 승리에 기여한 한호빈은 “무관중 경기가 낯설었지만 집중하다보니 모두 잊었다”고 돌아봤다.

고양=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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