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박사가 된 ‘미국판 흙수저’, 그가 말하는 배움의 발견

국민일보

케임브리지 박사가 된 ‘미국판 흙수저’, 그가 말하는 배움의 발견

[서효인 박혜진의 읽는 사이]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열린책들/ 520쪽/ 1만8000원

입력 2020-03-25 13:20 수정 2020-03-25 14:13
‘배움의 발견’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 1986년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공교육을 불신하는 아버지를 둔 탓에 16년간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는 독학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케임브리지대에서 2014년에는 역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난해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뽑혔다. 열린책들 제공

자신의 인생을 써 내려간 이야기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회고록의 방식. 그중에서도 새파랗게 젊은 2030세대의 회고록을 발견하면 일단 구매 버튼을 누른다. 비약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젊은이들의 회고록엔 은퇴자들의 회고록에 없는 진행형의 고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흙탕물 튀지 않는 안락한 곳에 앉아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현존하는 고통이 다 어리석은 각축장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더욱이 지난날의 고통은 시간에 희석되어 의미 있는 경험으로 미화되기 일쑤다. 요컨대 완료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지나간 고통을 되새기는 글을 읽는다는 건 타인의 사진 앨범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타인의 추억에 동참하자고 책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회고록이라기보다 비망록에 가까워 보이는 이 책은 1986년생, 그러니까 나와 동갑인 30대 중반의 여성 타라 웨스트우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자기 삶의 과제들을 써 내려간 이야기다. 일단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 책을 추천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홈스쿨링으로 명문대 간 얘기 아냐? 순식간에 이 책의 위치는 회고록도 비망록도 아닌 자기계발서 어디쯤으로 이동한다. 대입 성공기냐고 물어본다면 뭐, 조금은 맞다. 표지에 쓰인 것처럼 이 책은 “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 본 적 없던 소녀가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기적의 성공기’다. 합격기라면 나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에서 ‘7막 7장’에 이르기까지 성장 환경과 입학한 대학별로 줄줄 읊을 수 있다. 자기계발서의 번창과 시대를 함께한 세대로서 이런 냉소적인 반응은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더욱이 불우한 환경을 딛고 빛나는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는 스토리로 주목받기에 오늘날 대학은 그다지 고귀하지 않고 오늘날 가난도 그다지 희소하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는 흔해 빠진 성공기를 다른 성공기와 다르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진행형 고통이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에도 ‘7막 7장’에도 앞으로 출간될 어느 성공기에도 없을 실패가 ‘배움의 발견’에 있다.

‘배움의 발견’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의 어린 시절 모습. 열린책들 제공

타라는 대학을 정복했지만 끝내 가족만은 극복하지 못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기존에 속해 있던 세계를 부정하고 거기서 탈출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부정해야 하는 세계가 비록 잘못된 방법일망정 나를 보호하고 나를 사랑하는 가족일 때 단절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타라는 “가족에 대한 의무가 다른 의무(친구, 사회,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신념에 빠져 딸을 교육시키지 않고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방조했던 부모는 시간이 흐른 지금 마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둔 고용주가 되어 번창한 사업을 이끌고 있다. 비상식적인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에 가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새로운 삶을 얻음으로써 가족에서 탈출했지만 ‘나’를 옭아매었던 가족이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성공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나’의 탈출은 ‘나’만의 탈출일 뿐이다. 타라에게 ‘나’만의 탈출은 충분한 결과가 아니다.

대학은 진짜 ‘배움’으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배움은 자기 삶을 바꾼 자기만의 성장이 아니다. 자립한 다음에도 끝내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 가족에 대한 깊은 고민은 자신만을 바꿀 수 있었을 뿐인 배움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 한계를 인정한 다음 시도하는 새로운 자아와의 만남은 ‘대학’이라는 교육을 넘어서는 또 다른 교육일 것이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교육이다. 정해진 점수에 도달하는 것도 교육이지만 도달한 장소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자아를 갖는 건 더 큰 교육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타라의 배움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고통이 있다. 거기 우리가 발견해야 할 배움이 있음은 물론이다.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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