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연기 허탈함에도 다시 신발끈 묶는 두 노장 김정환·박완용

국민일보

올림픽 연기 허탈함에도 다시 신발끈 묶는 두 노장 김정환·박완용

매년 떨어지는 체력, 누구보다 치열하게 준비해온 올림픽…“허탈하지만 유종의 미 거두겠다”

입력 2020-03-26 17:37 수정 2020-03-27 12:24
펜싱 사브르 대표팀 김정환(오른쪽)이 지난해 11월 15일 열린 이집트 카이로 월드컵 개인전 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상대로 공격하고 있다. 김정환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2020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됐다. 선수 생활 막바지에 접어든 30대 후반의 선수들에겐 ‘1년’이란 숫자가 무겁기만 하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한 차례 은퇴까지 번복하고 돌아온 펜싱 사브르 대표팀의 ‘맏형’ 김정환(37·국민체육진흥공단)과,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36·한국전력)은 허탈한 심정을 뒤로한 채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있다.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정환은 2016 리우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펜싱 사브르 유일의 올림픽 개인전 메달리스트다. 각종 국제대회 메달을 휩쓸며 2015-16 시즌엔 세계랭킹 1위를 고수했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한 검객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검을 잡은 그는 국가대표 13년차였던 2018년 세계선수권 2관왕,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매일 훈련장과 숙소만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 지쳐서다.

선수 겸 지도자로 소속팀에서 11개월을 쉬면서 그는 처음으로 편하게 지냈다. 친한 지도자·동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동안의 펜싱 인생을 돌아보며 오히려 마지막 올림픽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고 한다. “쉬는 동안 편한 마음으로 국내 대회에 나갔는데 동메달을 땄어요. 재충전 기간을 가지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경기 흐름도 잘 보였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자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으로 3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딴 펜싱 선수가 되자는 목표를 세운 그는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 사브르는 강한 체력을 요하는 펜싱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부딪치는 종목. 특히 랭커들 간 대결에선 조금만 지쳐도 승부를 내주게 된다. 보통 하루 4경기만 뛰어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스파링을 12경기까지 늘려가며 그는 체력 보강에 힘썼다. “아무래도 국제대회에 나가면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껴요. 실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려고 훈련을 더 많이 소화했죠.”

펜싱 사브르 대표팀 김정환이 2016 리우올림픽 경기 도중 집중하고 있다. 김정환은 이 대회에서 사브르 종목 첫 개인전 동메달을 따냈다. 김정환 제공

1년 간 그의 랭킹은 세계 14위까지 올랐다. 풍부한 경험으로 후배들을 이끌고 한국의 단체전 최강자 자리를 연거푸 지켜내던 중이었다. 단체전 금메달로 선수생활 마지막을 장식한 뒤 은퇴할 계획을 세우던 찰나, 올림픽 연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이날 인터뷰 단 몇 시간 전까지 올림픽을 포기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10월 결혼 예정인 그의 4살 연하 여자친구다.

김정환은 “나이도 많고 매일같이 붙어사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꿨던 터라 모든 걸 다 끝내고 결혼하고 싶었다”며 “여자친구가 ‘이 기회를 포기하고 TV로 올림픽을 보면 아쉽지 않겠냐’며 고맙게도 마음을 잡아줬다”고 밝혔다.

1년 뒤 올림픽을 위해 김정환은 다시금 치열한 일상을 보낼 계획이다. 그는 “이제야 펜싱을 알았고, 즐기게 됐는데 은퇴할 나이가 됐다”며 “그동안 한국이 유럽 팀들에 분석이 많이 됐다는 걸 느꼈는데 올림픽 연기를 오히려 기회라 생각하고 금메달을 굳힐 수 있도록 확실히 준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이 지난해 11월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경기 중 힘차게 그라운드를 질주하고 있다. 대한럭비협회 제공

박완용은 2010·2014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한국의 동메달을 이끈 선수다. 그러다 부상과 세대교체 여파로 2014년 이후 5년간 대표팀을 떠났다. 은퇴 후 맡게될 회사 일을 배우기 위해 소속팀 주무 생활에 집중한 기간이었다. 다시 대표팀에서 럭비공을 든 건 럭비 열기가 뜨거운 일본에서 열릴 올림픽에 나가 실업팀 4개(상무 포함), 선수 980명에 불과한 럭비 불모지 한국에 종목을 알리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스크럼 하프 포지션인 그는 노련함을 앞세워 공격수들에 패스를 넣어주고 경기를 조율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인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우승을 이끌며 한국 럭비에 첫 올림픽 출전권을 안겼다. 발목 바깥쪽 인대가 아예 없는 상황. 훈련과 재활을 병행하며 이룬 쾌거였다.

박완용은 “힘들기도 했지만 주장으로서 내색할 순 없었다”며 “제가 한 발 더 뛰어야 선수들도 따라오기에 부족한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신경을 더 많이 썼다”고 밝혔다.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이 지난해 11월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말레이시아와의 경기 중 상대 수비를 돌파하고 있다. 대한럭비협회 제공

한국 럭비의 수준은 아직 올림픽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다. 박완용은 올림픽 연기를 오히려 기회로 보고 남은 1년간 주장으로서 팀을 더 견고히 만들겠단 목표다.

“기대를 많이 해서 연기된 게 허탈하고 공허하기도 해요. 하지만 세계 수준을 따라갈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하고 디펜스와 경험을 더 강화하는 기간으로 삼겠습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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