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빈병 팔았어요” 지구대 앞 22만6천원의 정체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빈병 팔았어요” 지구대 앞 22만6천원의 정체

입력 2020-03-27 00:21
영주시 제공. 연합뉴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50대 남성 A씨는 지난 25일 경북 영주시에 있는 가흥1동 행정복지센터에 찾아와 “코로나19에 써달라”고 적힌 봉투를 직원에게 건넨 뒤 사라졌습니다. 봉투에는 현금 100만원이 들어있었죠.

직원은 급하게 A씨를 뒤쫓아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좋은 일이니 누구인지 밝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극구 사양하고 자리를 떴다는군요. 박종연 가흥1동장은 “자신을 밝히지 않은 뜻깊은 일을 한 기부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분들이 있어 코로나19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강원 태백지역 장애 부부의 손편지. 태백시 제공, 연합뉴스

강원도 태백에 거주하는 장애인 부부도 힘을 보탰습니다. 부부는 23일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종이가방을 전달하고 떠났습니다. 종이가방에는 현금 100만원, 마스크, 정성을 다해 쓴 손편지 1장이 들어있었죠.

부부는 편지에서 “장애가 있는 저희 부부가 딸과 아들 두 자녀를 기르며 복된 땅에서 편히 살 수 있는 것은 국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관계 기관들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가난하게 살면서도 마스크 몇 장과 성금을 내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 덕분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부부는 이어 “저희 가정도 그 따뜻한 마음을 배우고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가족의 정성을 모았다”며 “이 작은 정성이 이웃 사랑의 작은 불씨가 되면 좋겠다. 또 다른 불꽃이 되어 번졌으면…”이라며 글을 맺었습니다.

이에 정병운 장성동장은 “초등학교 앞 교통정리, 독거노인 돌봄 등 평소에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는 부부”라며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 부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강릉시 제공

B씨는 20일 오전 6시쯤 강원도 강릉경찰서 북부지구대 출입문 앞에 검정 비닐봉지를 두고 사라졌습니다. 직원들이 따라나섰지만 B씨는 이미 사라진 뒤였죠. 검정 비닐봉지 안에는 손편지와 함께 현금 22만 6000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B씨는 손편지에서 “힘드신 저소득 어르신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까 해 많은 이들의 손길로 빈 병을 수거해 모은 돈이다. 마스크나 소독제를 구매해 나눠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적었죠. 경찰은 B씨와 전화 연결이 됐지만 그는 이름이 알려지는 걸 사양했습니다. 북부지구대는 시민의 뜻대로 주문진읍사무소와 협의해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구매해 주변 저소득 어르신들께 전달하기로 했죠.

이외에도 “돈이 너무 적어서 미안하다”며 100만원을 기부한 기초생활수급자 80대 노부부와 퇴직금 168만원을 기부한 전북 전주의 택시 운전사 등 어려운 상황에 놓인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도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공동체를 위해 선뜻 자신의 것을 내주었습니다. 이 따뜻한 마음이 코로나19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합니다. 우리도 이분들처럼 자신의 것을 조금씩 내주면 어떨까요. 그럼,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준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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