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 무서웠다” 증언… ‘죽음의 항해’ 미스터리 풀릴까

국민일보

“그 배, 무서웠다” 증언… ‘죽음의 항해’ 미스터리 풀릴까

2017년 3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 전직 항해사 선체 결함 등 주장

입력 2020-03-31 00:30 수정 2020-03-31 09:04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연합뉴스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해 선원 22명(한국인 8명·필리핀인 14명)이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 사건과 관련해 두 차례나 사고 선박에 탔던 항해사가 선체 결함과 화물 적재 실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두 달여 뒤 쌍둥이배를 타고 같은 항구에서 동일한 화물을 싣고 ‘죽음의 항해’를 경험했다고도 증언했다. 미궁 속에 빠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원인을 밝힐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0년대 초반 스텔라데이호에 승선했던 전직 항해사 A씨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배에 올라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갑판 위는 완전히 녹으로 덮여 있었다”며 “평형수 탱크 내부도 모두 낙엽처럼 바스락거렸다”고 밝혔다. A씨는 “녹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고 평형수 탱크에 해수를 넣었다 뺐다 하니까 염분 때문에 녹이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며 “철판이 갈수록 약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A씨는 두 차례에 걸쳐 총기간 1년 넘게 이 배에서 일했다.

1993년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유조선으로 건조된 스텔라데이지호는 2009년 1월 중국의 한 조선소에서 광탄선(광물 운반선)으로 개조됐다. 이후 브라질에서 철광석 26만t을 싣고 남대서양 심해에 가라앉기까지 총 25년을 운항했다. A씨는 개조 직후 해당 선박에 승선했는데도 배의 상태가 놀라울 만큼 열악했다는 것이다.

상갑판에 균열이 생겨 긴급 용접 작업을 벌인 일도 있었다. A씨는 “화물창 위에 있는 갑판이 1∼2m가량 ‘쩌억’ 그대로 찢어진 적이 있다. 그런데 찢어진 부분만 잘라내고, 용접해 그대로 운항하더라”며 “바닷물이 닿는 곳에 균열이 가기라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아찔하다”고 말했다.

사실 스텔라데이지호 선체에 균열이 있었다는 증언을 한 게 A씨가 처음은 아니다. 스텔라데이지호에 탔던 또 다른 관리직 선원은 2010년에도 2번 좌현 갑판이 찢어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와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유죄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침몰 사고 두 달여 뒤 스텔라데이지호와 규모·내부구조가 비슷한 쌍둥이선박을 타고, 같은 항구인 브라질 구아이바 아일랜드 터미널에서 철광석을 싣고 항해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당시 화물 적재에 큰 문제가 있었는데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직후여서 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터미널 운영사이자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브라질 발리(vale)가 철광석을 앞쪽 화물창에 ‘때려 박듯이’ 실었고, 배는 앞으로 1m가량 기울었다. 출항을 위해 급하게 앞뒤 균형을 맞춰야 했던 선박은 결국 뒤쪽 화물창에 허용 범위를 초과한 철광석을 실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러한 행위가 선체에 무리를 주고, 균열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한번 실은 화물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시간이 생명인 해운업계에서 출항 지연은 곧장 돈으로 연결되기에 선체에 큰 문제가 없는 이상 그대로 항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관리 잘된 선박에 탔지만 불안감이 극심했다”던 그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기간 스텔라데이지호에도 같은 실수가 있었다면 약한 선체에 하중이 더 가중됐을 것 같다”고 추정했다. 현지 항만 운영사 측의 실수 여부는 침몰 원인 규명 과정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부분이다.

두 달 전 사고가 난 스텔라데이지호의 화물이 동일한 방식으로 선적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항만 운영사가 동일한 항구에서 똑같은 광물을 운반하는 선박을 상대로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을 개연성은 따져봐야 한다.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000일,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연합예배'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결함과 화물 적재 실수가 침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자료 없이 침몰 원인을 추측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익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정책개발팀장은 “당시 하역계획서나 항해 자료 등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며 “침몰 전 화물 적재 기록과 당시 기상 상태를 종합해 분석하면 배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윤곽은 파악할 수 있지만 자료가 모두 소실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이기도 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은 아직도 미궁 속이다. 지난해 2월 심해수색 끝에 블랙박스인 항해기록저장장치(VDR)를 회수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데이터 복원에 실패했다. 여야는 지난해 7월 2차 심해수색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사고 책임을 놓고도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김완중 폴라리스쉬핑 회장은 선박안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이 구형됐지만 지난달 18일 1심 공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선체 결함과 결함 미신고가 인정됐지만 이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1심 판결문은 실종 선원 가족에게조차 공개가 금지됐다. 이들은 “사고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에게조차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항의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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