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한테 맞아 피흘리던…” 아들 재판서 오열한 엄마

국민일보

“아빠한테 맞아 피흘리던…” 아들 재판서 오열한 엄마

가정폭력 아버지 살해한 아들,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집유

입력 2020-04-01 10:54
국민일보 DB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아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숨진 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아내와 자식을 폭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마성영)는 전날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된 이모(31)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존속상해치사는 5년 이상의 징역이 최소기준이나 재판부는 형을 한 차례 감경한 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10일 함께 술을 마시던 아버지의 가슴과 옆구리 등을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아버지가 쓰러지자 소방당국에 신고했고, 폭행 흔적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 덜미를 잡혀 같은 달 12일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체포됐다.

재판장에서 증인으로 나선 이씨의 가족들은 눈물로 선처를 부탁했다. 이씨의 어머니인 김모(54)씨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남편이 저에게 폭행을 가하고 하는 것을 다 봐왔다. 저 때문에 아들이 대신 벌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소리 내 울었다. 이어 “아들이 잘못한 건 맞지만 사실을 다 떠나서 아들이 저렇게 된 데 대해 남편이 너무 밉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여러 차례 학대를 당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딸이 ‘오빠가 아버지에게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다’고 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니 아들이 무릎을 꿇은 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애 아빠는 술에 취한 채 빨랫방망이로 아이 머리를 계속 쥐어박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아들이 성장해 아버지보다 체격이 좋아진 이후에도 아버지가 폭력을 가하면 그대로 맞고 있었다”면서 “아빠가 그래도(때려도) 말대꾸하거나 대든 적이 없고, 속 한번 썩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동생인 이모(29)씨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이씨는 “중학교 때 늦게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쇠자를 가지고 오라고 해 가져다드리니 갑자기 종아리를 대라고 했다”며 “피멍이 들 때까지 맞았다”고 말했다.

이씨가 기억하는 오빠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였다. 그는 “오빠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와 저를 지키려고 애썼다”며 “집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나가서 살라고 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이 ‘폭행당하는 게 보기 안 좋아 그런 것이냐’고 묻자 이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날 9명의 국민배심원단 중 6명은 집행유예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폭행을 가해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한 점에서 범행 자체가 패륜적이고, 죄질이 중하며 반인륜적이라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이씨의 아버지가) 폭언·폭행을 일삼았고, 이후 이씨가 홀로 아버지를 돌본 점, 범행 후 119에 신고하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응급조치 한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홍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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