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정치·이념화… 과격한 선동은 선교에 부작용”

국민일보

“한국교회 정치·이념화… 과격한 선동은 선교에 부작용”

[목사, 정치를 말하다] <2> 김요한 새물결플러스 대표

입력 2020-04-02 13:37 수정 2020-04-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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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에 교회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교회 안까지 들어온 이념 갈등을 극복하고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정치 참여를 모색하기 위해 보수와 개혁의 목소리를 내 온 4명의 목사를 연속 인터뷰했다. 정주채 사단법인 여명 이사장, 김요한 새물결플러스 대표,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김형국 하나복DNA네트워크 대표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싣는다.



김요한 목사(전 새물결교회 담임)가 대표로 있는 새물결플러스는 벽돌책이라 불리는 진지한 신학 서적 붐을 이끌어 낸 곳이다.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의 군목 출신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개혁적인 글을 써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4.15총선에 기독교인은 어떻게 투표하면 좋을까요.
먼저 한국교회가 너무 정치화되고 이념화돼 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합니다. 특정한 정치 입장을 중심으로 신앙과 삶이 재단됩니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죽음 , 부활에서 신앙고백이 일치하면 그 외에 다른 부분은 입장 차이가 있어도 관용하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게 다 같아도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매도하고 공격하고 또 증오합니다. 교회가 반지성주의로 흐르다보니까 결과적으로 가짜뉴스의 온상, 슈퍼전염지가 되고 있습니다. 반지성주의와 이념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 위에 첫째로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약자를 아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할 사람을 국회로 보내야 합니다. 두번째는 지속가능한 성장, 생존을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북간의 공존 평화 협력 그리고 더 크게는 동아시아 전체에 평화 벨트를 구축하는 그런 전문가들도 필요합니다.

-전광훈 목사의 정치 발언이 거칠지만 맞는 소리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 내용물보다 그 그릇 자체가 깨끗한지 여부에 더 관심을 두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메신저가 잘못되었는데 메시지는 괜찮다는 말은 기독교인이 쉽게 할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전광훈씨나 그를 따르는 분들의 행동이 세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목사 개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대규모의 세를 이루어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둘째, 민주공화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매우 과격한 방식으로 정권을 타도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셋째, 가장 큰 문제는 신학적 오류입니다.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그를 단지 정치적 지향점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면 이것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분들이 지금 당장은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미처 다 깊이 생각을 못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런 행위는 훗날 교회 역사가들에 의해 호된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실상 전광훈씨가 주도하는 정치적 행동에 동조하는 기독교인들은 한국교회 전체를 놓고 볼 때 다수가 아닙니다. 여러 설문 조사들을 보면 한국 개신교인들 상당수가 시민사회의 정치의식과 비슷한 비율을 띠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마치 자신들이 한국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 다원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교회가 극우성향의 정치적 언행을 일삼는다면 이는 시민사회의 반감을 부추겨서 오히려 전도와 선교의 문을 스스로 차단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점들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럼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는 안 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지요. 교회에서 괜히 정치 이야기를 했다 분란만 일으킨다고요. 하지만 인간의 삶 자체가 정치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교회가 ‘정치적’으로 되는 것이지,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경우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수님은 이른바 예수 운동에 헌신한 제자 공동체를 통해서, 또 바울은 에클레시아라 불린 교회를 통해서 당시 유대-그레코-로만 사회의 사탄적 질서에 맞서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 운동을 펼쳤거든요. 그래서 굳이 교회의 정치적 역할을 따진다면 오늘 한국교회도 특정한 이념에 편향된 정치적 언행이 아니라, 한국사회 안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이루어져갈 수 있는 대안적 운동 공동체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력과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긍정의 역사인데 지금은 서로를 부정하고 이념적으로 양극화돼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모습만 봐도) 한국은 국외에서 볼 때 대단한 나라입니다.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단 기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을뿐 아니라 반도체, 철강,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주요산업을 모두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슬기로움을 합하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럼에도 내부적으로 이념, 세대, 계층, 지역 간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보니 한국이 가진 가능성이 사장되고 소실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갈등의 벽이 존재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지난 100년 동안 식민지, 전쟁, 분단, 독재,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등 굵직굵직한 사회적 격변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내면서 격동의 시기를 보내다 보니 생존 그 자체에 급급한 나머지 '자기 성찰'과 같은 심리적, 문화적 힘을 배양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사소한 사회적 이슈조차도 자기 이해관계에 위반된다고 생각하면 극단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이런 정서들이 사회라는 틀 안에서 강하게 충돌하면서 그 파열음이 가공할 형태로 나타나는 경항이 큽니다.
둘째, 지난 100년 간 한국사회가 수차례 급변을 겪는 과정에서 정치-경제 권력을 누가 장악하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가해자와 피해자 그룹이 나뉘었는데 이들이 여전히 동 시대에,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상호 불신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시대의 아픔과 분노, 증오를 다음 세대에게 계속 대물림 교육을 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한국사회가 겉으로는 굉장한 성취를 이룩했지만 속으로는 과거의 사슬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 지점에서 교회가 할 역할이 있을텐데요.
그렇습니다. 종교뿐 아니라 정치, 언론 등이 사회적 통합을 위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이 세 가지 영역이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대표적 요인들입니다. 이 점은 정치, 언론, 종교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에 국한지어 생각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에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사랑 대신에 혐오와 배제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과거에는 한국 기독교가 '한국전쟁'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이념적 부분에서 배타적 성격이 강했는데 2천년대 접어들면서는 (보수 우파 교회를 중심으로) 정치, 인종, 민족, 종교, 성, 계급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투적-공격적 성격을 띠는 경향이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 일반의 강한 반발과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 통합에 일익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한국사회를 두 갈래로 찢어놓는 투쟁과 갈등의 모판 역할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극복해가려면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가 지나치게 정치화, 이념화되는 것을 피하면서 진영을 초월하여 한국사회의 공공선을 증진시키는 데 필요한 사회적 상상력을 배양하고 또 이를 실천하는 힘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과 성령의 능력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초창기 한국 개신교는 예배당 안에서조차 반상의 구분이 심해서 양반들이 서민 혹은 상놈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는 대신 따로 교회를 분립해서 자기들끼리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1907년 평양대부흥의 주역이었던 길선주 목사가 1910년에 서울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는 데 그때 양반들이 자발적으로 하층 계급의 교인들과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큰 은혜를 받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둘로 막힌 담을 하나로 만든다'고 했듯이,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런 십자가 정신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한국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일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목회자로서 충고를 한다면.
저는 이른바 문빠는 절대 아닙니다. 비판적 지지 정도가 제 입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우파 기독교인들이 문 대통령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중 상당부분은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을 가리켜 공산주의자 등으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런 선동과 비난을 통해 어떤 사람들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보면 교회가 이런 프레임에 쉽게 미혹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약점이나 문제점은 대통령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87년 체제라 해서 5년 단임제를 고수하는 현행 헌법의 약점에 기인하는 측면이 더욱 큽니다. 쉽게 말해 87년 체제하에서는 어떤 정치인, 정당도 집권 3년차부터는 극심한 레임덕이 시달리며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 리더십을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으로 87년 체제가 갖고 있는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여전히 45~5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 정치 현실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문 대통령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동시에 호감과 응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이 대통령이나 여당에게는 굉장한 정치적 자산이라고 봅니다.
굳이 대통령께 당부를 드린다면, 87년 체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지는 않은데다, 더욱이 이제 임기가 2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그동안 벌여놨던 일의 경중을 가려 꼭 필요한 국가적 아젠다를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또 한 가지는 아무래도 어느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시니까 보다 더 많은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스킨십을 나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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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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