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맨발의 90대 할아버지 업고 불길 피해 달린 청년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맨발의 90대 할아버지 업고 불길 피해 달린 청년

입력 2020-04-03 17:21
연합뉴스

갑작스러운 산불에 온 동네가 매캐한 연기로 뒤덮힌 날이 있었습니다. 불길은 점점 거세지더니 동네 주민들의 집 근처까지 쫒아왔습니다.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은 집에서 급히 뛰쳐나왔지만 집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거동이 불편한 90대 노인이었습니다.

지난 1일 오후 1시40분쯤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의 한 공장 가건물에서 큰 불이 일어났습니다. 불길은 인근 야산으로 퍼지더니 민가 방향으로 점차 이동했습니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주민들에게 “어서 빨리 집에서 대피하라”고 안내를 했습니다. 그 때 한 동네 주민이 경찰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산 중턱에 거동이 불편한 90대 할아버지가 살고 있어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 경찰관은 노인의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바로 고양파출소 소속의 양준철(29) 경장입니다. 그는 순찰차를 타고 할아버지가 거주하는 인근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화재 진압 차량이 가득해 더 이상의 진입이 불가능했습니다.

연합뉴스

양 경장은 차에서 내린 뒤 할아버지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방문을 두드리자 할아버지가 대피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양 경장은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를 업고 약 500m를 이동했습니다. 덕분에 화재 현장에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맨발에 얇은 패딩점퍼 차림의 백발 할아버지가 양 경장의 등에 업혀 이동하고 있네요. 이날은 바람도 거세게 불어 할아버지 집의 뒤편까지 불이 번졌다고 합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한 상황이었죠.

다행히도 이 동네에는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속한 대처로 할아버지를 비롯한 20여명의 동네 주민이 무사히 대피했습니다. 칭찬이 쏟아지자 양 경장은 연합뉴스에 이렇게 답변을 했는데요.

“인명구조는 경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 입니다. 신속한 대피가 이뤄져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

‘진짜 경찰관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멋진 답변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양 경장의 공로를 인정해 오는 6일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지은 객원기자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