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 없는’ 미국식 자유, 공포가 되다… 현지 격리기

국민일보

‘동선 없는’ 미국식 자유, 공포가 되다… 현지 격리기

캘리포니아 연수 중 국민일보 이성규 기자의 현장 소식

입력 2020-04-05 09:00 수정 2020-04-05 10:24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하늘. 맑은 하늘이지만 자택대기명령으로 즐길 수 없다. 생필품 구매 등 생존에 필요한 필수활동 외에는 외출이 금지됐다.

오전 10시 넘어 느지막히 눈을 뜬다.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따사롭지만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없다. 다시 눈을 감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발효된 자택 대기명령 13일째. 집안에 감금되면서 두 딸을 포함한 네 식구의 하루 일과는 단순해졌다. ‘아점-온라인수업(아이들)-간식-집 주변 산책(2~3일에 한번)-저녁식사-휴식-취침.’

아내와 나는 중간중간 휴대전화로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진자-사망자 수를 확인한다. 그때마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절망의 눈빛을 교환한다.

미국 샌디에이고로 1년 예정의 연수를 온지 8개월째. 연수 생활은 코로나19 전과 후로 극명하게 갈린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운전을 해서 학교에 데려다주는 주요 업무가 사라졌다.

방문학자로 몸담고 있는 대학 캠퍼스도 폐쇄됐다. 주말 등을 이용해 다니던 가족여행도 금지됐다. 동네 피트니스센터는 물론 집 앞 공원까지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호황을 누린다는 골프장도 이곳에서는 폐쇄 대상 업장이다.

코스트코 등 생필품 매장 외에는 갈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용인되는 건 자전거 타기와 집 주변 산책이다. 자전거가 없으니 산책이 유일한 운동수단인 셈이다.

산책을 나갔다가 마주오는 일행을 만나면 그쪽에서 먼저 피한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길을 건넌다. 6피트(약 2미터)라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보다 10배이상 먼 거리에서.

기분 탓일수도 있지만 동양인에 대한 최대한의 거리두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다. 뉴욕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테러가 빈번하다니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2일 이번 학기 내 초·중·고교의 등교 재개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온라인 수업을 한다지만 사실상 무기한 방학에 들어간 셈이다. 일단 이달 말까지 공포된 자택 대기명령도 연장될 공산이 크다.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감이 맑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반전의 3월
지난달 초, 미국에 놀러왔던 지인 부부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우리 부부는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고, 그들은 청정 지역에서 재미있게 지내다 오라고 덕담을 건넸다. 당시 한국은 ‘신천지 사태’가 터지면서 급속도로 코로나19가 번지고 있었다.

반면 미국의 확진자 수는 100명에도 미치지 않은 상태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감과 비슷하다” “15일 이내에 감염건수는 제로(0)에 근접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쳐댔다. 실제로 밤이면 동네 쇼핑몰에선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산책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일상은 천지 차이였다.

그러나 두 나라의 상황이 180도 달라지는 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5일 현재 미국의 확진자 수는 3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는 9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부동의 세계 1위다.

지난 2일 샌디에이고 한 지역에 나타난 방역요원.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부근을 소독하고 갔지만 확진자 위치 및 동선에 대해서는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

불투명의 공포
샌디에이고 시(County)는 매일 코로나19의 현황을 업데이트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5일 기준으로 약 300만명이 살고 있는 샌디에이고 시의 확진자 수는 1209명, 사망자는 18명이다. 지난달 7일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1000명을 넘어설만큼 무서운 속도다. 시는 매일 확진자 수를 성·연령별로 분류한 통계와 병원 입원환자 수, 위중한 환자 수를 공개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세부 지역별 확진자 분포도와 확진자의 동선은 공개하지 않는다.

이틀 전, 이 지역 카톡방에 한 지인이 사진을 올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하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소독하는 사진이었다. 그는 이 아파트에 확진자가 발생한 것 같은데 바로 옆 집인지 아닌지 알 방도가 없다고 했다.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미국에서의 코로나19 공포는 가파른 확산 속도가 주된 이유겠지만, 확진자 자택 위치나 시간대별 동선까지 공개하는 한국과 대조적인 불투명한 정보공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시가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한 5일(한국시간) 현재 코로나19 현황 그래프

이제야 마스크 쓰는 미국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샌디에이고 지역 한인들 사이에서는 예방 차 마스크를 쓰면 코로나19에 안 걸리더라도 총 맞아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스개 소리가 돌았다. 미국 문화에서 마스크는 아픈 환자거나 강도 등 범죄를 저지를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통용됐다.

미국 정부 역시 자택 대기명령을 내리면서도 외출 시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다는 지침을 내렸다.

그랬던 미국이 이젠 마스크가 없으면 스카프를 써서라도 코와 입을 가리라고 공식 권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쓴 채 일일 브리핑에 나서는 장면이 머지않아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뒤늦게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과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샌디에이고=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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