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를 선택할래, 예수를 선택할래” 목사 된다는 말에 아버지, 작두 앞까지 끌고가

국민일보

“애비를 선택할래, 예수를 선택할래” 목사 된다는 말에 아버지, 작두 앞까지 끌고가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의 ‘꽃씨 목회’

입력 2020-04-0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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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뒤쪽)가 1979년 군산제일고 3학년 시절 전북 용화산 기도원 기도굴에서 주일학교 어린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교회 생활에 열정을 다했다. 군산제일고 3학년 때 주일학교 교사, 학생회장도 도맡았다. 그러나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될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1979년 고3 여름방학 때 전북 용화산 기도원에서 열렸던 수련회가 내 인생의 대격변을 일으켰다.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은 다 방언 은사를 받는데 나만 받지 못했다. 주일에 부모님이 주신 헌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아이들도 방언 은사를 다 받는데 학생회장인 나만 못 받으니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마지막 날 밤은 기도 동굴에 들어가 철야를 했다. “하나님, 제가 누구보다 열심히 믿었고 은혜를 사모하는 데도 왜 저를 내버려 두십니까.” 자정이 넘도록 계속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정이 넘고 한 시가 넘도록 기도하고 있었는데 새벽 두 시쯤 됐을까. 갑자기 동굴 안이 빛으로 환하게 둘러싸였다. 그 어떠한 서치라이트보다 더 눈부시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종아, 모세를 부른 것처럼 이 빛 가운데 너를 부르노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크게 쓰리라.”


순간 마음에 황홀한 기쁨이 넘치면서도 두려움과 당혹감이 겹쳐왔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혀가 구부러지면서 다른 말로 기도가 나온 것이다. 지난날의 모든 죄악이 영화필름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눈물 콧물이 뒤범벅됐다. 특별히 열심히 교회를 섬긴다고 했지만 내 의와 공명심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까지 회개했다. 이것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영적, 소명의 체험이었다.

어린 마음에 두렵기도 했지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은 주체할 수 없었다. 담임목사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반드시 목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루는 예배당에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저희 집은 불신 가정이고 유교 가풍이 강해서 절대로 허락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신학을 해도 부모님이 아주 연로하신 이후에 하겠습니다.”

그래서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 그러나 시력검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 하나님께서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전율을 느끼게 해 주셨다. “나는 너의 젊음을 받고 싶다. 한 번밖에 없는 너의 젊음, 청춘의 때를 받고 싶다.” 결국 하나님의 소명의 부르심 앞에 굴복해 부모님께 신학교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노발대발하셨다. “자식이 예수 믿는 것도 못마땅한데 목사가 된다니, 우리 가문에 무슨 저주란 말이냐. 그렇게 밥 먹고 살 직업이 없어서 하필 내 자식이 목사가 되려고 하다니….”

아버지는 분을 못 이기시고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모가지를 썰어 죽인다”며 작두 앞까지 끌고 가셨다. 또 하루는 부모님이 내 이름을 호적에서 지워버린다고 하시면서 면사무소에 갔다. 마음대로 못 지우니까 분이 나서 메주를 달아놓는 곳에 나를 묶어 놓고 매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결단을 요구했다.

“너는 애비를 선택할래, 예수를 선택할래?” 그러면 나는 마음이 더 뜨거워져서 눈물로 호소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부르셔서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훌륭한 목회자가 돼서 아버지를 잘 섬기고 효도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가 신학교에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그러면 아버지는 더 화를 내시며 세차게 매질하고 발로 걷어찼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 보기도 창피하다고 바깥출입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 역시 회초리로 때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로 회유도 하셨다. 어느 추운 겨울 눈보라가 심히 몰아치던 날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매를 맞고 집을 나오고야 말았다. “이 웬수같은 놈, 예수가 밥 먹여주냐. 이 썩을 놈아, 뼈 빠지게 농사지어서 가르쳐 놓으니까 목사가 된다고. 꼴도 보기 싫으니 아예 나가버려!”

매를 맞다가 엉겁결에 집에서 쫓겨났다. 양말도 못 신은 채 봄 점퍼 하나만 걸치고 나왔다. 그 추운 날, 한 푼도 없었다. 손에 든 것은 오직 성경, 찬송뿐이었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날씨가 춥고 눈보라가 거세게 부는지. 그 매서운 눈보라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두 볼에 얼어붙으려고 했다. “하나님, 한 번밖에 없는 청춘을 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시고 사용하여 주옵소서.”

막상 집을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읍내로 가는 도중 전북 남원 요천수 다리에 잠시 앉아 눈물을 훔치며 성경을 펼쳤다. 시편 121편이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하얀 눈송이가 성경책 위로 떨어졌다. 눈물도 흘러내려 시편 121편이 기록된 종이를 적셨다.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노래를 읊조렸다. “몸에 걸친 단벌옷이 내게 족하고/ 들고 나선 주의 말씀이 넉넉하여라/ 눈보라와 찬 바람은 나를 때려도/ 주님 따라서 가는 이 길은 기쁘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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