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 한국계 미국인의 탄원

국민일보

[기고] 한 한국계 미국인의 탄원

입력 2020-04-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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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반평생 여기 살다가 이후 미국에서도 반평생 가량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 국적의 코리안입니다. “이중국적자”는 아닙니다. 이 글은 “한국이 미국을 이번만은 두 말 없이 도와달라”는 탄원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눈 딱 감고 미국을 팔 걷어부치고 한번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미국을 도울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충분히 그 어느 나라도 아닌 미국을 도울 능력과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에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나라가 지금 한국입니다. 미국 없이도 끄떡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라는 것도 잘 압니다. 미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우리의 국익과 필요에 의해서 이때는 이렇게 하고, 저때는 저렇게 하라는 전문가들의 고견은 차고 넘칩니다.

다시 탄원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최근 국격(國格) , “나라의 격”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개인에게 가장 높은 점수가 있다면 인격이듯이, 나라에도 가장 높은 점수는 국격입니다. 근래 한국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자랑스러워 하는 각 분야에서의 탁월한 성과는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분야에서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이 이제는 미국을 도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돕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임을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절감합니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내 생명을 위해 내 대신 죽었다면 그 사람을 잊으면 사람이 아니지요.

남북분단과 통일에 누가 책임이 있고, 미국은 자국의 이익 때문에 한국에 와 있다는 설명도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저와 당신은 우리 눈에 대단히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꼭 살려야 할 그 누구도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걸고 도와본 본 적이 있는지요?

생명은 누구나 아무나 걸 수 없습니다. 여기에 보태지는 복잡한 정치적 판단, 군사 전략, 경제 논리 등 그 어떠한 계산도 생명과 맞바꿀 수는 없습니다. 지금 코로나 최일선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일하는 분들 (특히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의료진들)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갈 것 같습니다. 직업상 하필 이 시점에 할 수 없이 뛰어들어야 한다고 옆에서나 뒤에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6.25 때 한국에 왔던 미군 55만명과 죽었거나 신체 일부를 잃은 5만의 미군들은 명령 받고 온 것 뿐이었고, 죽었거나 몸의 일부를 잃고 평생 살아야 했습니다. 생명과 신체 파손 앞에는 그 어떤 설명도 변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지금 미국을 도와야 합니다. 오직 지금 뿐입니다.

미국은 지금 70년 전인 1950년 6.25 같은 최악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죽어가는 환자입니다. “미국이 언제부터 이 정도 밖에 안되었어?” 미국의 리더쉽, 의료 시스템, 미국민들의 형편 없는 인식 등 얼마든지 비교 조롱할 수 있습니다. 방위비 더 달라 한다고, 미국 이익 때문에 한국을 이용한다고 얼마든지 미국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교와 비판은 지금으로서는 코로나 대응 세계 최고의 한국 국격에 맞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자에게 “아직도 정신 못차리냐...”고 훈시하는 것은 비열하고도 잔혹한 도덕군자의 위선입니다. 오늘의 한국, 오늘의 평화와 번영, 지금의 자랑과 뿌듯함은 어떻게 가능했는지요? 다 알지만 최고법인 “국민정서상” 부인하고 싶은 사실이 아닌지요? 미국 아니었어도 우리는 세계 최고의 머리와 능력을 가졌기에 그 이상으로 더 잘 해낼 수 있었다는 것도 잘 압니다. 모든 정답이 다 정답은 되지 못합니다. 모든 애국심과 자긍심이 다 자랑스런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이고, 잘 사는 나라이고,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든데...?”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먹고 살기 힘든 분들에게 미국을 도우란 것 아닙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삶의 질을 대대로 아낌없이 누리면서도 피해자나 약자 코스프레 하는 이들이 진정 누군지 본인들은 잘 압니다. “우리도 힘든데 그 잘 산다는 미국을...?” “장삿꾼 트럼프의 미국을 왜?” 라는 궁색한 바위 뒤에 치졸한 애국심을 숨기지 마십시오.

다시는 오지 않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순수의 시대” “순전한 사랑”의 기회가 지금 한국에 왔습니다. 할 수 있으면 미국을 아무 말 없이 진심을 다해 이번만큼은 도와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미국을 돕는단 말인가? 말도 안되고 여론이 펄펄 끓을 것도 다 압니다. 한국이 죽어갈 때도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하고 숭고한 결단입니다. 한국민들이 지금 단 한번 눈은 감고, 가슴은 활짝 열어 미국을 도울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미국을 도울 기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살점을 떼어주라는 것도 아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죽음의 나라로 변해가는 미국 땅에 파병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군대를 몇십만 보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국고를 털고 공장을 풀 가동하여 물자를 보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몇십년 계속 물자를 보내고 군대도 보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코로나가 몰고온 폭풍 속에 가라앉아 가는 미국에 한번만이라도 구명정을 보내보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가라앉고 생명을 잃은 이들에게 그뒤의 수도 없는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IMF 금모으기, 최근의 동학개미운동이라고 미화하는 주식 투자 등 나라 살리고 돈버는 일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탁월한 한국이 “이게 세계 최강 미국이야...?” 하는 미국을 딱 한번만 도와보라는 것입니다. 국익과 논리와 감정을 지금은 잠시 휴전하고, 진심 어린 사랑의 참전을 한번 만이라고 할 수 있다면 한국은 또 다른 한국이 될 것입니다. 이미 한국은 온 세상의 주목과 선망을 받는 나라입니다. 세계적인 한국 기업들의 성과와 오스카상과 BTS와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숭고한 국격은 받은 것을 잊지 않고 사심 없이 죽어가는 환자를 돕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나라로 진정 한국이 존경받고 사랑 받는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도 쓰러지고 무너지는 데 미국을 돕는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지난 70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쌀 한톨 덕 본 것 없다는 분들이 지금 한국민의 몇 퍼센트가 될지요? 내 핏줄, 내 식구, 우리 가문, 우리 지역, 내 나라 챙기는 것은 누구나 다 하고 또 잘 합니다. 그러나 한국이 이제는 미국을 도울 수 있습니다. 단 한번 도울 수 있습니다.

한세대 기독학술원장 최상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