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그날 그 참외 트럭 아저씨, 이 글을 봐주세요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그날 그 참외 트럭 아저씨, 이 글을 봐주세요

입력 2020-05-01 00:10
게티이미지뱅크

여러분은 정말 외롭고 힘들 때 뜻밖의 위로를 받아본 기억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아실 겁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참외 세 알을 받아들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는데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준 누군가에게 띄운 감사 편지를 대신 전합니다.

주인공 A씨는 지난 27일 늦은 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썼습니다. ‘참외 하나에 이렇게 눈물이 날 수 있네요’라는 제목으로요. 시작은 이랬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 장녀로 태어났고, 아빠 없이 자랐으며, 대학에도 가지 못한 채 공장을 전전하다가 그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리를 잃었다는 자기소개. 고작 23년 산 인생인데 왜 이리 기구하고 힘든지 원망스러웠다고요.

그러다 집 근처 빵집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된 건 최근이었습니다. 일자리를 마련해 준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이날도 출근을 했답니다. 한참 일을 하는데 밖에 참외 트럭 한 대가 멈췄습니다. 달콤한 참외 냄새가 솔솔 나는데, 속으로 ‘우리 엄마도 참외 좋아하는데 갈 때 한 봉지 사갈까’하다가 ‘아니야. 빨리 빚 갚아야지’하는 생각에 슬퍼지던 그때였습니다.

참외 트럭 아저씨가 급하게 빵집으로 뛰어 들어온 겁니다. 아저씨는 단팥빵 하나와 완두 앙금빵 하나를 계산하더니 매장 옆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빵을 급하게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A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그걸 보는데 왜 마음이 아팠을까요? 아빠라는 존재를 모르고 컸는데 왜 아빠 모습이 보였던 걸까요. 만약 우리 아빠가 나와 엄마, 동생들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힘들게 일하셨을까…”

그러다 문득 ‘내가 감히 뭐라고 저분 인생을 불쌍히 여기나’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솟았다고 합니다. 죄송한 마음에 A씨는 조용히 우유 하나를 결제했고 아저씨에게 다가가 내밀었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우유랑 같이 천천히 드세요”라는 말도 건넸습니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A씨는 재빨리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잠깐의 해프닝을 거치고 다시 일을 하는데 잠시 후 참외 트럭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손에는 예쁘게 생긴 참외 세 알이 들려있었습니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A씨에게 아저씨는 “아가씨 또래의 딸이 있어요. 일하느라 고생이 많죠. 우유 답례라고 생각하고 받아요”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그 순간 A씨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손에 참외를 꼭 쥔 채 가만히 서서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계속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집안의 가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이렇게 울어본 게 언제인가 싶어 더 슬펐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저씨 역시 눈물을 글썽이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갈 때쯤 다시 오셔서 “힘냅시다”라는 응원을 또 한 번 전했다고 하네요.

A씨는 그날 받은 참외 한 알을 빵집 사장님께 드리고 나머지 두 알을 집에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동생과 함께 깎아 먹었다고 합니다. 그는 참외 하나로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더 열심히 일해서, 더 성공해서 엄마와 동생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A씨는 글 말미에 “이 글을 못 보실 가능성이 크지만 부끄러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려 죄송합니다”라며 “언젠가 먼 훗날 또 엄마와 동생 셋이 참외를 깎아 먹으며 ‘그때 그랬지’하며 추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라는 고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또 다른 따뜻한 마음이 만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듯합니다. 이날 두 사람이 나눴던 말들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된 것을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참외 트럭 아저씨가 이 글은 보실까요? 혹시 모르니 A씨 대신 남겨보겠습니다. 그 참외, 정말 달고 맛있었다고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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