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노인의 반찬통에 담긴 ‘82만원’의 정체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노인의 반찬통에 담긴 ‘82만원’의 정체

기초연금 모아 기부…“어려운 이웃 위해 써달라”

입력 2020-05-16 05:00
연합뉴스(영월군 제공)

“죄송합니다.”

지난 12일 강원 영월군청에 찾아온 노인이 건넨 손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몇 푼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사과의 의미는 노인이 편지와 함께 건넨 ‘반찬통’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반찬통에 들어있던 건 500원, 100원, 50원, 10원짜리 동전들과 지폐 몇장. 그러니까, 기부를 하고 싶은데 액수가 적어 미안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노인은 총 81만9880원을 기부했습니다. 500원, 50원…. 동전이 다양한 것을 보면 분명 오랜 기간 모아온 돈이겠지요. 기부를 하면서 지폐를 굳이 동전으로 바꾸지도, 그 동전의 종류를 마구 섞지도 않을 테니까요. 어제는 100원, 오늘은 500원. 한 푼, 두 푼 모아온 돈이었을 겁니다.

노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짧은 말만 남긴 채 황급히 군청을 떠났던지라 그가 어디에 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70대 정도로 보였다는 것 밖에는요. 손편지에도 별다른 내용은 없었습니다.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줘 고맙다며 “이 돈이 영월군민의 건강에 힘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라는 소망뿐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단서가 있다면 이 문장이었습니다. 이 익명의 기부자는 “정부에서 30만원씩 주시는 것을 조금씩 모았다”고 편지에 적었습니다. 30만원은 1인 가구의 기초연금 액수입니다. 노인이 기초연금 수급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쳐온 이후 평범한 시민들이 온정을 베푼 사례가 유명 인사의 고액 기부 소식만큼이나 많이 들려옵니다. 이 노인처럼요. 얼마 전에는 한 어린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써달라”며 용돈을 기부했고요, 자녀의 돌잔치 축의금 전액을 내놓은 부모도 있었습니다. 방역 사령탑마저 “정말 잔인하다”고 말한 이 바이러스. 그래도 이렇게 따스한 손길이 하나둘 더해지면 결국엔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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