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과 사는 것

국민일보

죽는 것과 사는 것

요한복음 묵상노트 (17)

입력 2020-05-19 21:51 수정 2020-05-2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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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 교회

본문 : 요한복음 11장 1~57절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이 들어서 죽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그의 누이들입니다.

사람은 언젠가 한번은 다 죽게 되지만,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나사로의 죽음이 억울하기만 합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계시기만 하셨어도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텐데….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나사로가 위독하니 빨리 와주시기를 부탁했던 나사로의 누이들은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죽은 게 아니라 잔다”고 하십니다. 육체의 죽음이 진짜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죽음 이후에 죽음과 사는게 또 있다는 것인가요?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개념입니다.
죽음이 무엇이고 생명은 무엇인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실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구원의 믿음이 있었던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마지막날 부활의 생명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이 어느정도 까지 인지는 몰랐습니다.

부활생명이 어떤 것인지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죽음 이후의 사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너무나 관념적인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며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한번 죽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이 있는데 그때 죽는 게 진짜 죽음입니다.
삽화=국민일보 그림창고.

육체의 죽음은 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우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 11:11)

예수님은 이것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서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 다 썩어서 냄새나는 시체인 나사로를 만나러 가십니다.

무덤의 돌을 치우라 명하시고 무덤밖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때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나사로, 아니 그 죽었던 시체가 무덤에서 성큼 성큼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얼굴과 손발이 매여진 채로 죽은 모습 그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주변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탄성과 놀라움으로 웅성거립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무덤에서 일어나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분은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 이십니다.

나사로의 사건을 보고 듣고 믿는 자들은 이제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알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무덤에 들어가는 게 마지막인 허무한 인생이 아닙니다

육체의 죽음은 죽음 이후에 갖게 될 진짜 생명을 소망으로 삼고 이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진짜 종료는 육체의 죽음 이후에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내가 그 생명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