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자녀와 경계를 만들라

국민일보

[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자녀와 경계를 만들라

부모는 자녀의 놀이에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

입력 2020-05-20 12:51

L과 M은 7살, 5살 형제다. L은 태어난 이후 줄곧 까다롭고 잘 자지도 먹지도 않으며 부모에게 매달린다. 고집이 세고, 통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둘째인 M은 순하며 수월한 아이였다. 그러나 자랄수록 점 점 더 형처럼 말을 듣지 않는 아이로 변해 갔다.

처음 만났을 때 부모는 몹시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관심 요구에 한시도 쉴 수가 없다고 하였다. 실제로 두 아이는 진료실에서도 부모가 상담을 하는 중에도 계속 자신들의 놀이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원했다. “내가 만든 게 뭔지 알아?” “M이 장난감을 뺏어가” “형이 놀려”라는 식으로 부모 주의를 맴돌고, 부모가 상담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부모 또한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그 자동차는 벽에 부딪히면 안 되지...”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어 보자”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간섭하고 있었다.

이 가족의 부모와 자녀 간에는 ‘경계’가 없었다. 서로 방해하고 간섭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자연스럽게 형제간도 경계가 없어진다. 서로의 물건을 빼앗고, 놀이를 방해하고, 상대는 혼자서도 놀고 싶을 때도 같이 놀아 달라 요구하고, 안되면 놀리고 괴롭혔다.

나아가서 외부에서도 친구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지 못하고 경계를 침범한다. 친구들의 놀이를 방해하고, 놀기를 거부하는 친구에게 집적이는 행동을 해 ‘인기 없는 아이’가 된다. 또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기 힘들다.

부모는 자녀의 놀이에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하다. 부모의 끊임없이 지켜보는 감시나 간섭이 있을 때 진정한 놀이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이들의 상상과 자유는 방해 받는다. 부모가 아이들의 경계를 침범하게 되는 거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아이들 놀이를 지속해서 지켜보고 감시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들이 싸울까봐 그런다는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며..... 그들의 시간은 아이들로 꽉 차 있어, 부부간에는 둘만의 시간은 없었다. 그들은 ‘엄마’ ‘아빠’일 뿐 ‘아내’ ‘남편’일 수 없었다. 부모의 역할 만으로도 지치고 힘들었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서로 위로하고 사랑해 주지 못한 채 지쳐가고 있었다. 남편은 때로는 아빠로서의 역할에 지쳐 일부러 아이들이 잠든 이후에 퇴근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고, 엄마는 가출해 도망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고 하였다. 부부가 가족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자녀들의 놀이에는 간섭하지 말자. 자녀간의 다툼에도 개입하지 말자. 개입을 해 봤자 양측 모두에게 원망을 들을 뿐이다. 아이들을 감시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부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방해할 때는 단호하게 늦은 음성으로 ‘안 돼!’하고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말 만하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관심을 요구하는 말썽이나 행동에 휘말리면 모두 허사가 될 거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는 미안하게도 평등(?)하지 않으며, 부모는 아이들의 행동을 다룰 수 있는 힘과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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