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VIEW] 트럼프 ‘중국 때리기’, 흑인 사망 ‘덫’에 걸렸다

국민일보

[워싱턴 VIEW] 트럼프 ‘중국 때리기’, 흑인 사망 ‘덫’에 걸렸다

입력 2020-05-31 06:41 수정 2020-05-31 15:53
‘중국 때리기’ 기자회견, 항의 시위로 모양새 구겨
“흑인 죽이면서, 중국의 홍콩 강경진압 욕할 수 있나”
코로나에 항의 시위까지 덮쳐…‘중국 압박’ 동력에 의문
트럼프, 위기 탈출 위해 ‘중국 압박’ 수위 높일 것 반론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경제·무역·비자 발급 등의 특별지위를 폐지하는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생중계하면서 화면을 분할해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같은 시간에 진행됐던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장면을 동시에 내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 체면이 구겨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CNN방송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가 갑작스런 난관에 부딪혔다.

백인 경찰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흑인 사망 항의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대형 악재다.

특히 항의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압박 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경찰이 흑인을 죽이는데,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것을 비난할 수 있는가’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 옥죄기’를 시도하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미국 내에서 민주적 가치를 공격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민심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더욱 차가워진 것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그로 인한 높은 실업률도 엄청난 고민거리인데, 설상가상으로 항의 시위까지 더해진 형국이다.

미국 내 이슈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옥죄기’라는 경제·외교 이슈를 밀어붙이기엔 동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 탈출을 위해 중국 압박 수위를 오히려 높일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이 무릎으로 위조 수표 용의자라는 의심을 받았던 비무장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눌러 숨지게 만들고 있다(왼쪽). 데릭 쇼빈의 모습(오른쪽). AP연합뉴스

모양새 구겨진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 발표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경제·무역·비자 발급 등의 특별지위를 폐지하는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 처리에 대한 보복조치다.

하지만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중국 때리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수다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 사망 항의 시위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을 우려해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지적했다.

또 CNN방송 등 뉴스 채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면서 화면을 분할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장면을 함께 전했다. 화면을 쪼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시위 장면을 생중계하는 화면을 동시에 내보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적으로 꺼내든 중국 압박 조치가 흑인 사망 항의 시위로 모양새가 구겨졌다.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도로를 점거한 뒤 불을 지르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미국 민주주의 결함 역공 펼칠 것”

중국은 미국에서 번지는 흑인 사망 항의 시위를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반격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 내 여론도 변수다. 그러나 항의 시위 확산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궁지에 몰렸다. 코로나19로 미국 경제가 대공황과 같은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미국 경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신(新)미국안보센터(CNAS)’의 리처드 폰테인 소장은 WP에 “중국 지도자들은 아마 미국 내의 시위들을 미국이 위선적이며 미국의 민주주의가 결함이 있다는 그들의 오랜 선전선동의 증거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지냈던 대니 러셀은 WP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중국 대중과 맺었던 신뢰를 약화시키면서 오래전에 루비콘 강을 건넜다”면서 “트럼프가 취하는 국내 정책과 대(對) 중국 조치 모두 문제를 해결시키지 못하고 악화시킨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30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백악관의 경호 초소 위에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서도 시위를 벌이자 백악관은 한 때 출입을 폐쇄하는 봉쇄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AP뉴시스

“홍콩은 민주화 시위대고, 미국 시위대는 폭력배냐”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도 자기 발등을 찍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니애폴리스에서 불붙은 시위가 약탈로 이어지자 “폭력배(THUGS)들이 (경찰에 의해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기억에 대한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면서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를 ‘폭력배’에 비유한 것이다.

다만, 시위대를 향한 군과 경찰의 총격 대응을 시사한 발언이라는 논란이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시민들 사이의 총격 사태를 우려했던 표현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중국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언사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역공에 나섰다. 중국 관영 언론인 차이나 데일리의 유럽지국장인 첸 웨이후아는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

웨이후아는 이어 “미국 정치인들과 언론이 화염병을 던졌던 홍콩의 폭도들을 민주화 시위대로 지칭했던 것을 기억하라”면서 “지금 트럼프는 미네소타주 트윈시티에서 경찰의 만행에 항의하는 시위대들을 ‘폭력배(THUGS)’라고 불렀다”고 비꼬았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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