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회사랑 반반씩 섞여 앉아요”… 콜센터의 ‘꼼수 방역’

국민일보

“다른 회사랑 반반씩 섞여 앉아요”… 콜센터의 ‘꼼수 방역’

입력 2020-06-03 07:01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A씨는 지난 4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느닷없이 다른 회사 직원이 자신의 옆에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알고보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올 것을 우려한 회사의 ‘꼼수’였다.

A씨는 2일 “직원들이 모두 한 건물에서 일하다가 확진지가 발생하면 회사 전체의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에 서로 합의한 콜센터끼리 직원을 절반씩 섞어 근무하도록 한 것”이라며 “한 칸씩 띄어앉아도 불안한 상황에 회사가 직원들의 건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윤만 따지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시설점검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단 한번도 점검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서울 구로구의 한 콜센터에서 9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전국이 발칵 뒤집혔지만, 이후에도 콜센터 방역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콜센터끼리 직원을 교체해 배치하는 등의 ‘땜질식 처방’은 물론 방역의 기본인 발열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최근 경기도 부천 콜센터에 이어 서울 중구의 보험회사 전화영업점에서도 확진자가 나온 만큼 콜센터의 허술한 방역 체계에 대한 대대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구로구의 또다른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모(23)씨는 회사에서 단 한 번도 발열 체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다른 회사는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도 설치한다는데 우리는 그 흔한 체온계조차 없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A씨 역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도 발열 체크는 하지 않았다. 정부에선 시설마다 방역 책임자를 두라고 하는데 그게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정부는 그간 생활 속 거리두기 체계 하에서 시설별 방역 책임자의 역할을 거듭 강조해왔다. 방역 책임자는 보건소 같은 유관기관과 핫라인을 구축하고, 직원의 건강 상태를 기록해야 한다. 근무 특성상 단기 계약직 위주로 이뤄져있어 휴가를 내기조차 어려운 콜센터의 경우 방역 책임자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의 통신회사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B씨(30)는 “전국이 난리가 나도 옆 직원과의 거리가 1m 이상 벌어져 본 적이 없다. 손소독제를 이곳저곳 비치해두고 떨어지면 다시 채워놓는 정도가 방역 조치의 전부”라고 전했다.

서울의 한 콜센터에 근무하는 정모(31)씨는 점심시간이 가장 두렵다고 전했다. 정씨는 “회사에서 밖에서 사먹는 걸 자제하라면서 휴게실에 점심먹을 공간을 따로 마련해줬다. 그런데 테이블이 전부 칸막이 없는 원형 테이블이라 결국 마주보면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어 불안하다”고 했다.

방역에 소홀한 건 회사 뿐만 아니다. 콜센터 직원들도 점점 마스크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한 콜센터 직원은 “마스크를 쓰면 발음이 부정확해져 고객들의 항의가 들어와 업무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며 “어느순간 마스크를 벗거나 입 아래로 내리게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밀집된 업무 환경’을 바꾸지 않는 이상 콜센터의 집단감염 위험은 없어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올해 초 구로 콜센터의 코로나19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마스크 착용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며 “홀(Hall) 형태의 콜센터 구조를 개별 룸(방) 형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콜센터에서의 완전한 방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지웅 강보현 기자 woong@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