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헬렌 켈러’ 꿈꿨던 관주씨는 어디 있을까[이슈&탐사]

국민일보

‘한국의 헬렌 켈러’ 꿈꿨던 관주씨는 어디 있을까[이슈&탐사]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① 꿈이 사라졌다

입력 2020-06-02 16:07 수정 2020-06-03 09:21
듣고 보는 일이 모두 어려운 한국의 데프블라인드(Deaf-Blind) 장애인 12명이 2일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첫째줄 김예지 김지현 박재원 지용철씨는 전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두 번째 줄 왼쪽의 방성호 이규영 박관찬씨는 듣지 못하면서 시력은 약간만 남아 있다. 김남일씨와 셋째 줄 이철성 조원석 차승우 현금숙씨도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를 함께 겪고 있다. 국민일보는 동의를 얻어 이들을 실명으로 공개한다. 최종학 선임기자 윤성호 최현규 권현구 기자

듣는 일과 보는 일 모두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6월에 태어난 헬렌 켈러처럼 말이죠. 이들은 상상 이상의 고통과 불편함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정보를 얻는 일에서도 소외됩니다. 가족과도 거의 대화를 하지 못합니다. 가족에 의해 버려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장애에 맞는 지원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방치한 ‘데프블라인드’(Deaf-Blind)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단순히 두 가지 장애가 합쳐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장애가 생긴다는 의미에서 ‘시청각 장애’ 대신 ‘데프블라인드’로 이 장애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국내 데프블라인드 장애인 26명의 삶과 이들의 목소리를 8차례로 나눠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1994년 5월 21일 해가 질 무렵 20대 청년 한 명이 서울 노원구 한국맹인복지연합회관을 빠져 나왔다. 이곳에서 중학교 입학을 위한 검정고시를 치른 스물다섯 살의 이관주씨였다. 그는 한 살 때 청력을 잃고 여덟 살 때 한쪽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 열두 살에 양쪽 시력을 잃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관주씨는 교사가 손바닥에 글씨를 써 주면 그걸 암기하는 방법으로 4년 동안 공부했다. 이날 치른 중입 검정고시의 결과는 ‘합격’이었다.

1994년 6월 8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이관주(오른쪽)씨와 지도교사 이영미 한국경진학교 교감의 모습. 시청각 장애인으로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씨 소식에 두 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다. 한겨레신문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못 보고 못 듣지만 유학이 꿈… 시청각 장애 청년 손바닥 공부’ (동아일보 1994년 5월 23일자 30면)

‘한국판 헬렌 켈러 후보’를 소개하는 옛날 신문 속 관주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기사는 관주씨가 중학교 2학년 과정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추고 있고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관주씨를 가르친 이영미 당시 서울맹학교 교사(현 한국경진학교 교감)도 함께 소개됐다. 이 교감의 손가락은 관주씨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이 교감은 지난달 15일 국민일보 취재팀과 만나 “관주는 ‘애플’ 하면 손가락으로 알파벳 apple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6년이 지난 지금 관주씨는 어디에 있을까.

유학 꿈꾸던 청년은 50대가 됐다
‘딩동’. 오후 2시30분이 되자 간식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여주의 시각중복장애인 복지시설인 라파엘의집 1층 직업재활센터 작업장이 술렁였다. 장애인 35명이 스테이플러 심을 상자 안에 담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벨 소리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작업장을 빠져나갔다. 소리를 듣지 못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움직였다. 오직 한 사람이 자리에 앉아 스테이플러 심을 만지고 있었다. 26년 전 신문에 나왔던 관주씨였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시각과 청각 장애를 함께 갖고 있는 이관주씨가 경기도 여주 라파엘의집에서 스테이플러 심을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주=최현규 기자

직업재활센터 직원이 관주씨의 손바닥을 펴고 손가락으로 ‘간식’이라고 썼다. 관주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뿌리쳤다. 직원은 “먹기 싫다는 뜻이에요.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일 수 있으니까 한 번 더 물어볼게요”라고 말했다. 이날 간식은 찐만두였다. 그릇에 담긴 만두를 관주씨 코에 바짝 갖다 댔다. ‘물어본다’는 건 언어가 아닌 후각을 통해서였다. 관주씨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간식도 먹지 않고 작업을 하던 관주씨가 오후 3시30분쯤 의자에서 일어났다. 왼쪽 벽에 설치된 봉을 잡으며 걷더니 건물 밖을 빠져나갔다. 관주씨는 바로 옆 건물 1층 ‘기쁨방’으로 갔다.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방으로 들어간 관주씨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쭈그려 앉았다.

경기도 여주 라파엘의집 직업재활센터 작업장에서 지난달 13일 이관주(왼쪽)씨 손바닥에 센터 관계자가 '간식'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여주=최현규 기자

관주씨는 20분 넘게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기쁨방 생활재활교사를 맡고 있는 이용제씨가 손에 블록을 쥐여줬다. 그러자 관주씨는 블록이 담긴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닫았다. “하기 싫다는 뜻이에요.” 이씨가 다시 이면지 석 장을 건넸다. 관주씨가 이를 받아들고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종이는 금세 딱지 모양이 됐다. 이씨는 “그래도 오늘은 종이를 접으면서 시간을 보내겠네요. 종이를 줘도 싫다고 하는 날에는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요”라고 말했다.

미국 유학을 꿈꾸며 손가락으로 영어 필화를 했다는 관주씨는 없었다. 반나절가량 지켜보는 동안 그의 의사표현은 ‘얼굴 찡그리기’ ‘고개 가로젓기’가 전부였다. 손바닥 글씨를 이해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최근 수년간 자신의 의사를 다른 사람의 손바닥에 쓴 적이 없다고 했다. 2000년부터 관주씨를 지켜본 이충근 라파엘의집 사무국장은 “갈수록 이야기를 걸어도 거부하는 횟수가 늘어나는데, 조금 남아있던 바깥 세계와의 소통도 거부하고 자꾸만 의욕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업재활센터 작업을 중단하고 방에 들어온 이관주씨에게 종이를 건네자 이씨가 딱지접기를 하고 있다. 여주=김유나 기자

‘헬렌 켈러’ 양성을 꿈꾼 사람들
서울에서 농학교를 다니던 관주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을 무렵이었다. 그 뒤 관주씨는 온종일 집에서 지냈다. 눈이 보일 때까지 배운 한글과 수어가 그가 받은 교육의 전부였다.

그러다 1987년 당시 서울 영등포구에 있던 라파엘의집에서 정지훈 교사(그는 이후 라파엘의집 원장을 지냈고 2016년 말 퇴직했다)를 만났다. 본인도 시각장애인인 정 전 원장은 관주씨를 비롯해 시청각 장애를 갖고 있던 4명과 1년 동안 시설에서 함께 지내며 점자 교육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농학교에 다녔던 관주씨는 한글과 수어를 알고 있었고, 점자를 가르치자 곧잘 이해했다. 정 전 원장은 “관주랑은 라포르(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신뢰관계) 형성이 잘 됐다”며 “특히 영어 점자를 가르치면 정말 빠른 속도로 배웠다”고 기억했다.

라파엘의집이 여주로 이전하면서 관주씨의 교육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관주씨 부모는 아들이 여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 전 원장은 아내인 이영미 교감에게 관주씨를 부탁했다. 이 교감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 관주씨 집을 찾아가 특별 과외를 했다. 서울 맹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뒤 성북구 종암동 관주씨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가 밤늦게까지 수업을 했다. 영어 점자 수업을 하면서 관주씨의 의욕이 높아졌다. 이 교감은 “‘너처럼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가 미국에 있다’고 설명해 준 뒤로는 미국에 가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경기도 고양 한국경진학교에서 만난 이영미 교감이 시청각 장애인 이관주씨를 가르치면서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고양=김유나 기자

데프블라인드 청년의 검정고시 합격 기적을 만들어 낸 건 정 전 원장과 이 교감의 열정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여건이 어려워지자 관주씨 교육은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이 교감은 관주씨를 가르치는 동안 같은 방에서 어린 아들을 놀게 할 정도로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 육아에 어려움을 겪자 더 과외를 이어갈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관주씨는 세상과의 끈이 끊어졌다. 헌신적인 두 교사의 빈자리를 채울 교육 기관이나 복지 시설은 없었다. 관주씨는 이미 학령기를 지난 성인이어서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데프블라인드 장애인을 위한 교육 기관은 없었다. 일상이 방 안에 갇히는 동안 대학 진학의 꿈도, 미국 유학의 꿈도 스러졌다. 아들을 시설에 보내기 원치 않았던 어머니는 밤낮으로 관주씨를 돌봤지만 점자를 가르치거나 손 글씨를 연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시 시간이 지나 2000년 초반 정 전 원장이 관주씨를 여주 라파엘의집으로 불렀다. 정 전 원장은 “수저도 직접 들지 않을 정도로 일상생활의 기본이 전혀 안 된 상태였다”며 “특수교육을 전공한 직원을 전담으로 붙였지만 기본이 되지 않으니 점자 교육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오래 했지만 과거 알던 것을 다 까먹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여주 라파엘의 집에서 이관주(오른쪽)씨가 활동지원교사 이용제씨의 안내를 받아 걸어가고 있다. 여주=최현규 기자

몇 해 전 라파엘의집에 관주씨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이 사무국장이 관주씨의 손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썼다. 관주씨는 그저 무표정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빈소로 그를 데려갔지만 어머니의 사망을 인지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취재팀과 만난 이 교감은 관주씨의 상황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의미를 묻자 “(계속 교육하지 못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 교감은 “관주는 헬렌 켈러보다 훨씬 더 많은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고 (교육) 상황도 좋았는데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관주씨의 사진을 보여주자 이 교감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는 데) 무슨 재미가 있었겠어요. 관주를 전문적으로 교육할 기관이 있었다면 더 재밌게 살지 않았을까요. 보통 사람처럼 직업도 갖고 꿈도 가질 수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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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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