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배고파, 화장실’ 이 3가지만이라도 제발, 예지야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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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배고파, 화장실’ 이 3가지만이라도 제발, 예지야 [이슈&탐사]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② 25년간 몸속에 갇힌 예지씨 이야기

입력 2020-06-03 11:22 수정 2020-06-03 17:52
김미영씨(왼쪽)가 지난달 18일 인천 자택에서 시청각장애인인 둘째딸 김예지씨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주며 바라보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choijh@kmib.co.kr

올해 스물다섯 살인 김예지씨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무언가를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얼굴은 물론 엄마, 아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시각장애인과 비슷한데 그는 듣지도 못한다. 언제부터 못 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세 살 무렵 천둥이 친 어느 날 예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귀 옆에 냄비 뚜껑 두 개로 ‘쾅’ 소리를 냈을 때도 반응이 없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레오파드(LEOPARD) 증후군 진단이 나왔다. 피부의 이상과 청각장애 등을 동반하는 보기 드문 유전 질환이다.

예지씨는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25년을 살았다. 그가 ‘살았다’는 말보다 부모가 그를 ‘살게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예지씨는 아직 자신의 욕구와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손짓과 몸짓, 표정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취재팀은 지난달 11일, 18일 두 차례 예지씨 집을 방문했다.




화가 나면 자신을 때리는 예지씨
지난달 11일 취재팀이 인천의 예지씨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짙은 회색 티셔츠에 긴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거실 한 가운데 누워있었다. 예지씨는 누운 채로 거실에 앉아 있는 아버지 김자엽(67)씨와 어머니 김미영(53)씨를 오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으려 했다. 그러다 뭔가가 불만스러운 듯 부모를 꼬집고 때렸다. 아버지가 이를 말리자 자신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다시 이를 못 하게 하자 발로 바닥을 쾅쾅 굴렀다.

미영씨는 자해 행위가 예지씨가 불만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얘는 화가 나면 머리를 땅바닥에 그냥 들이받아요.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밤에도 그래. 말리면 오히려 강화되니까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데 집에선 그게 안 돼요. 이 건물 사는 사람들이 다 일어나야 하니까요. 나중에 보니까 내가 얘하고 주짓수라고 하나? 그걸 하고 있더라고요.”

“(예지) 머리를 보면 좀 튀어나왔어요. 하도 박아서요. 손도 지가 성질날 때마다 물어뜯고 꽝꽝 치니까 형편없어요. 마치 합기도 하는 사람 손이랄까 좀 그래요”(자엽씨)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도 있다. “한창 아동학대 문제가 심할 때였어요. 근데 (예지가) 한밤중에 난리를 피우니까 누가 신고를 했나봐. 애가 맞아서 그런 줄 알고.”(자엽씨) 집 거실에 어린아이 키우는 집에 있을 법한 두꺼운 층간소음 방지매트가 깔린 것도 그때부터다.

예지씨는 취재팀이 부모와 인터뷰하는 도중 계속 불만을 표출했다. 부부는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번갈아 가며 여러 시도를 했다. 화장실을 데려갔고, 예지씨가 요즘 갖고 논다는 큰 냄비를 갖다 줬다. 밖에 나가고 싶어서일까 해서 외투를 입히고 머리에 빗질을 해줬다. 빵을 데워줘도 사과를 깎아줘도 예지씨는 모두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라면을 끓여줬더니 그제야 양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1시간 반 동안 수수께끼를 풀던 부모도 마침내 한숨을 돌렸다.

“배는 고프고 라면은 먹고 싶고, 그러면 표시를 해야 하는데 그걸 표현해줬으면 나도 힘들지 않고 자기도 배고프지 않을 텐데, 이런 게 힘든 거야. 똑같아. 시행착오가 만날 똑같아요.”(미영씨)

정부 “알아서 해라”에 늦어진 교육
예지씨는 1995년 5월에 태어났다. 왼쪽 눈에 조그마한 초승달처럼 생긴 까만 흔적이 있었고 오른쪽 눈은 뿌연 유리창처럼 혼탁했다. ‘각막을 이식받으면 볼 수 있다’고 해서 부모는 서울의 대형병원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각막을 신청했다. 수술 전까지는 눈 상태가 괜찮은지 검사받기 위해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세 살 때부터 5차례 수술을 받았다.

“계속 전신마취를 하는 거죠. 나중에는 마취과장이 ‘이제 안 된다. 1년에 몇 번씩 마취하면 큰일 난다’고 말리기도 했어요. 병원에선 잘못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책임 없다’ 각서를 받잖아요. 그거 쓰고 수술을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한쪽 눈만이라도 됐으면 저렇게 생활하진 않았겠죠.”(자엽씨)

수술이 더 이상 소용없게 됐을 때 예지씨는 6살이었다. “얘를 어디 보내야 할지 완전 깜깜했어요. 선생님도 몰라, 교육기관도 몰라, 아무도 몰라. 유치원, 어린이집 보내려고 해도 ‘우리는 못해요’ ‘받아줄 수 없어요’ 하니까 어떻게 해요. 갈 데가 없는데.”(미영씨)


8살이 되자 초등학교에 보내라는 통지서가 왔다. 부모는 시청각장애인인 딸을 맡길 수 있는 기관을 찾아보려 했다. “애 아빠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 계속 전화를 했는데 ‘부모가 직접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교육부, 복지부 쪽에서는 좀 잘 알까 했는데 우리만큼 모르더라고요.”(미영씨) 부모는 취학을 3차례 미룰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인천의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혜광학교에 입학했다. 예지씨가 11살이 됐을 때였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학교는 예지씨와 같은 데프블라인드 학생을 가르친 경험이 없었다. 예지씨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다만 학교에 다니면서 겨우 기저귀를 떼게 됐다. “지나고 보면 ‘어렸을 때 빨리 교육을 받게 했으면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깨닫게 되잖아요. 항상 뒷북을 치는 거야, 제가 항상…”(미영씨)

미영씨는 일기를 쓰고 있다. 미지의 세계인 딸을 이해하기 위한 관찰기다. 어렵게 들어간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 숙제로 일기 쓰기를 내준 일이 계기가 됐다. 미영씨는 ‘예지는 할 수 없는데 내주나 마나잖아’라고 생각했다가 ‘아니지. 예지의 하루하루를 적어보자’며 딸의 숙제를 대신 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26일의 일기는 ‘예지의 기분이 매우 좋다’로 시작한다.

“(예지가) 내 무릎에 앉아 가슴에 안겨 웃고 논다.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싸고 얼굴을 더듬기도 했다. 예지가 내 목을 만질 때, 예지 이름을 불러봤더니 웃는다. 목의 울림을 느끼고 웃는 것인지, 그냥 기분이 좋은 건데 우연히 반응을 보인 건지 알 수 없다. 예지가 내 입술을 만지면 나도 예지 입술을 만지고, 목을 만지면 나도 목을 만져줬다. ‘나는 엄마, 너는 예지’라고도 말해줬다.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영씨와 자엽씨는 딸의 기록을 다큐멘터리 영화 ‘달에 부는 바람’으로 남겼다. 사생활을 내보여야 하는 부담감에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에 TV에도 나가고 영화도 찍어놓은 거예요. 예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런 사례들이 또 있을 거란 말이죠. 이런 아이가 또 다른 사례에 연구도 되고, 시행착오를 좀 덜 겪었으면 해서였어요.”(미영씨) 하지만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김미영씨의 지난 1월 26일자 일기. 그는 시청각장애인인 딸 김예지씨가 초등학생 때 받은 숙제로 일기를 대신 쓰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미영씨는 지금도 딸의 일기를 쓰고 있지만 정작 써야 할 때는 못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너무 힘들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니까. 그나마 편할 때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기장에는 빈 부분이 많다. 그만큼 힘겨운 날이 많다는 의미다. 김미영씨 제공.

김미영씨의 2019년 1월 2일 일기. 김미영씨 제공.

너무 늦게 만난 설리번 선생님
‘누군가의 도움’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찾아 왔다. 예지씨는 2018년 9월 ‘몸짓 언어’를 연구하는 주혜선 박사를 만났다. 대구대 특수교육과 박사과정에 있던 주 박사는 중도·중복장애 학생을 위한 몸짓 언어인 ‘손담’과 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204개 단어를 연구·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손담은 자폐성 장애를 포함한 지적장애, 시각중복장애, 청각중복장애, 지체중복장애인 등 모든 연령대의 중도·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개발됐다. 주 박사는 이를 예지씨에게 적용하고 싶었다.

낯선 손길을 싫어한다는 예지씨는 처음 만난 주 박사를 유독 반겼다고 한다. 주 박사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예지는 제가 처음 만나보는 시청각장애인이라서 두려움을 안고 갔는데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처럼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마음이 놓였어요”라고 말했다. 자엽씨는 “주 선생님이 가려고 하면 못 가게 하려고 껴안고 있을 때도 있어요”라고 했다.

이후 지난한 손담 교육이 시작됐다. 미영씨는 주 박사가 기 싸움에서 예지를 제압했다고 말했다. “예지가 처음에는 호기심을 갖고 좀 하다가 뭘 시키면 안 해요. 선생님은 예지가 꼬집어도 가만히 있고, 절대 화도 안 내시고, 예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냥 보세요. 솔직히 엄마는 그거 안 되거든요.”

주 박사는 예지씨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식판을 가져온 뒤 숟가락을 잡아만 주고 자기가 한 손으로 가져가게 하는 과정’을 6개월 동안 익히게 했다. “선생님이 오시면 2~3시간씩 있거든요. 거의 씨름만 하다가 끝나기도 해요. 예지가 말 듣는 게 한두 번인데, 그걸 6개월을 하니까 식판을 들 줄 알더라고요.”(미영씨)

미영씨는 딸이 주 박사를 늦게 만난 게 너무 아쉽다. “제가 계속 기대한 게 설리번 같은 선생님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어요. 근데 만났잖아요. 문제는 얘가 받아들이지 않아요. 나이가 너무 많아요. 자기 고착화가 다 된 상태라서 이 나이에 뭘 배우고 받아들인다는 게 안 돼요. 어릴 때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그 시기에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주 박사는 예지씨와의 손담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박사 논문을 썼다. 그는 “이미 성인이 됐으므로 기존에 하던 방식을 인정해줘야 해요. 꼭 손담을 익힐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일관성 있게 적용하다 보면 나중에 자연스럽게 습득해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저하고 예지하고의 만남은 평생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주 박사는 이어 “우리나라에도 보이진 않지만 또 다른 시청각 중복장애인이 많이 있어요. 예지 한 사례만 집중해서 손담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없을까에 집중하기보다는, 또 다른 김예지가 우리나라 어디에 있고 그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시청각장애인 김예지(왼쪽)씨와 아버지 김자엽씨가 지난달 18일 인천 자택의 거실에 함께 앉아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choijh@kmib.co.kr

“세 가지 욕구 표현만 했으면”
미영씨와 자엽씨는 딸을 돌보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 특히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예지씨의 생활의 그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예지씨는 졸리면 자고 안 졸리면 깨어 있다. 부부는 그가 깨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선잠을 잔다. 취재팀이 방문하기 전날 밤에는 예지씨가 부엌에서 칼을 꺼내 갖고 놀아 기겁을 했다고 한다.

부부는 정체된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쯤이면 자녀들 결혼 생각할 나이인데 예지는 행동이 유치원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아이가 정신적으로 크지 않으니까 거기에 우리 생각이 멈춰있어요.”(미영씨) 사회생활은 사실상 없어진 상태다. “그냥 요렇게 셋이 만날 붙어사는 거예요.”

부부는 딸이 헬렌 켈러처럼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예지씨가 3가지 표현만 익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프다’ ‘먹고 싶다’ ‘화장실 가고 싶다’ 3가지만 하면 돼요”라며 “욕심 같아선 손담으로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진짜 좋죠. 근데 다른 거 바라는 건 욕심이고 그 3가지만 하면 좋겠어요.”(미영씨)

자엽씨는 다른 소원을 이야기했다. “제가 (하늘나라) 갈 적에 (예지도) 같이 갔으면 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제가 집사람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먼저 가겠죠. 나 갈 때쯤 (예지도) 가야 집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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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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