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아파트 갑질’… 샌드위치 연휴 휴가 썼다고 시말서

국민일보

또 ‘아파트 갑질’… 샌드위치 연휴 휴가 썼다고 시말서

입력 2020-06-04 16:31 수정 2020-06-08 20:42
지난달 12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경비노동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붙어있다. 고(故) 최희석 경비원 사망 이후 전국 아파트에 만연한 갑질을 제도적으로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뉴시스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소 직원에 대한 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입주자대표회장이 관리소 직원에게 샌드위치 연휴에 휴가를 붙여 썼다는 이유로 시말서와 해당 직원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경남 창원의 아파트 관리소 관리과장 A씨(61)와 관리소장 B씨(50)는 지난달 초 입주자대표회장 C씨(62)로부터 시말서 제출을 요구받았다. 사유는 A씨가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5월 4일에 휴가를 사용해 주말·공휴일 등을 합쳐 6일간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었다.

A씨는 당시 규정에 따라 상급자인 B씨에게 휴가 사용을 승인받은 상태였다.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닌 C씨에게 이들이 A씨의 휴가 사용을 보고할 의무는 없었다. “6일간 자리를 비웠다”는 C씨의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A씨가 휴가 사용 전의 연휴에도 사흘간 출근해 단지 점검, 소방 감지기 교체 등 업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시말서를 썼다. 더 나아가 C씨는 B씨에게 A씨를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근무 태만, 입주민 간 분란 조장’을 이유로 들었다. C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A씨가 근무에 소홀해 5년간 민원이 누적됐고, 시말서를 내라고 한 뒤엔 음해 목적으로 ‘동대표들이 주민 돈으로 술을 마신다’는 헛소문을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관리소 관계자는 1년 넘게 같이 일하면서 A씨의 근무태도와 관련된 민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A씨도 “지인과 얘기하다가 동대표들과의 술자리 대화 내용을 잠깐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악의적 소문은 일절 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B씨가 “교체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하자 C씨는 이들을 고용한 관리업체에 똑같은 요구를 했다. 이후 업체 관계자들은 수 차례 A씨를 찾아가 교체를 권고했다.

A씨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면 증상 등을 호소하고 있다. A씨는 “마음 같아선 내가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주민투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사직을 거부하자 일부 동대표는 CCTV를 열람해 나를 감시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이미 자진해 사직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을 법적으로 막긴 어렵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실질적으로는 사용자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에 수반하는 책임은 피해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고용주가 아닌 제3자’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권두섭 법무법인 ‘여는’ 대표변호사는 “공동주택관리법만이라도 개정해 입주자 회의도 사용자로 명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4일 “현행 근로기준법은 괴롭힘 행위자를 사업장 내의 사용자와 근로자로 한정한다”며 직장 내 괴롭힘 범위 확대 적용을 권고했다. 사업장 바깥에 있지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 관계자, 회사 대표의 친인척, 소비자 등의 괴롭힘에 대해서도 보호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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