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에 “내려놓고 떠나겠다” 빌던 감독… “안 때렸다”

국민일보

최숙현에 “내려놓고 떠나겠다” 빌던 감독… “안 때렸다”

입력 2020-07-03 14:55
고(故) 최숙현 선수(왼쪽 사진)과 그에게 가혹 행위를 한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감독. 연합뉴스

고(故) 최숙현 선수가 가혹 행위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감독이 과거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뒤늦게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3일 경주시체육회 관계자에 따르면 전날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감독은 “(최숙현 선수를) 트라이애슬론에 입문시켰고 애착을 가졌으며 다른 팀으로 간 것도 주선해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 2월까지 최숙현 선수로부터 받은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에 ‘고맙다’라거나 “죄송하다”란 글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5개월 전 그는 최숙현 선수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드린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가 다 내려놓고 떠나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용서를 빌던 감독은 고 최숙현 선수가 소송을 시작하자 태도를 바꿨다. 현재 그는 “나는 때리지 않았다. 오히려 팀닥터의 폭행을 말렸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숙현 선수의 유족이 공개한 녹취에는 감독이 고인을 폭행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팀 닥터가 무자비한 폭행을 가할 때 방조한 정황이 담겼다. 팀 닥터의 폭행이 벌어지는 동안 감독은 “닥터 선생님께서 알아서 때리는 데 아프냐” “죽을래” “푸닥거리할래” 등의 말로 고인을 더 압박했다.

또한 최숙현 선수의 체중이 늘었다고 감독이 “3일 동안 굶어라”라고 다그치는 목소리가 녹취 파일에 담겼다. 또 팀의 핵심인 베테랑 선수가 고인을 괴롭히는 걸 알고도 방조하고, 오히려 선배에게 괴롭힘 당하던 고인의 뺨을 때렸다는 의혹도 받는다.

감독은 한국 트라이애슬론을 대표하는 선수로, 최숙현 선수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지속적인 가혹 행위를 참다 못한 최숙현 선수는 지난 2월부터 법적 절차를 밟았다. 당시 감독은 최숙현 선수의 가족에게 사과했다.

그는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염치없고 죄송하다. 무릎 꿇고 사죄드린다”고 했다. 구체적인 행위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죄송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다 내려놓고 떠나겠다”고 사퇴 의사까지 밝혔다.

당시 감독은 “아내와 아이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 먹고 살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조금만 시간을 달라”며 “숙현이 힘들고, 치료되지 않은 부분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다.

앞서 최숙현 선수는 전 소속팀의 가혹 행위를 신고한 뒤 지난달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17·2019년 경주시체육회 소속 당시 감독과 팀닥터, 일부 선배들에게 지속적인 폭행과 폭언, 협박과 갑질, 심지어 성희롱까지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를테면 팀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는 이유로 20만원 정도의 빵을 먹는 ‘식고문’을 당했고, 복숭아 1개를 먹은 것을 감독에게 보고하지 않아 폭행당했으며, 체중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3일 동안 굶어야 했고, 슬리퍼로 뺨을 맞기도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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