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누명’ 20년 옥살이 윤씨 “용서는 국민들의 몫”

국민일보

‘이춘재 누명’ 20년 옥살이 윤씨 “용서는 국민들의 몫”

재심 무죄 판결시 보상금 20억~40억원 받을 듯

입력 2020-07-03 17:44 수정 2020-07-03 17:49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53)씨가 3일 오후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억울해서 하루하루가 미칠 것 같았어요. 누구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죠. 경찰, 검사, 판사, 언론 등 모두가 저를 범인으로 몰았어요.”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8차 사건의 누명을 사실상 벗게 된 윤모(53)씨가 통한의 세월을 돌이켰다. 그는 “내 인생은 아직 1988년에 멈춰 있다. 어딜 가나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바라볼까 두려웠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11월만 되면 늘 악몽에 시달렸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떳떳하지 못한 아들이라는 점이 늘 죄송했다”고 3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1988년 9월 16일 당시 22세 농기계 수리공이었던 윤씨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박모(13)양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씨가 상소를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20년간 옥살이를 한 그는 2009년 42세의 나이로 가석방됐다.

윤씨의 누명은 2019년 9월 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의 신원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벗겨졌다. 경찰은 지난 2일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종결하면서 화성 8차 사건의 진범을 이춘재로 지목했다. 이춘재는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8차 사건을 비롯해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씨에게 머리숙여 사죄한다”고 밝혔다. 당시 부실수사와 강압수사를 한 경찰관과 검사 등 8명은 직권남용, 감금 등의 혐의로 지난 2월 송치됐다. 이 중에는 윤씨를 가짜 범인으로 만들어 특진까지 한 경찰관도 있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 이춘재. SBS 제공

지난 1월부터 재심을 진행 중인 윤씨는 “아직 누명이 다 벗겨진 건 아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았다. 하루라도 빨리 누명을 벗고 11월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선고는 이르면 오는 11월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윤씨가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당시 경찰관과 검사 8명에 대한 형사책임은 물을 수 없다. 윤씨는 이들에게 ‘진정어린 사과’만을 바랐지만, 이들 대부분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강압수사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윤씨는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해준 경찰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당시 저를 수사한 경찰관들에게는 사과를 받지 못했지만, 이젠 괜찮다. 이제 와서 사과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 사람들을 용서하는 건 제가 아니라 국민이 해야 할 거 같다.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알게 모르게 피해를 봤을 테니까”라고 덧붙였다.

윤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에 따른 형사보상금이 지급된다. 형사보상금은 하루 기준 보상금을 산정한 뒤 구금일수를 곱한 액수로 책정되는데, 하루 보상금은 무죄가 확정된 연도의 최저일급(8시간 기준)의 5배까지 가능하다. 올해 최저시급(8590원)을 하루 최대 보상금으로 산정하면 34만3600원으로, 윤씨가 복역한 19년 6개월을 곱하면 최대 17억6000만원이 책정된다.

윤씨는 형사보상금 외에도 국가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불법 구금, 고문 등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신적 위자료인 셈이다. 윤씨는 또 민법상 소멸시효 여부에 따라 자신에게 고문 등을 가한 경찰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최종적으로 “적게는 20억원대에서, 많게는 40억원대의 보상 및 배상 금액이 점쳐진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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