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A 폭로가 보여준 K팝의 그늘

국민일보

AOA 폭로가 보여준 K팝의 그늘

3일 전 멤버 권민아 “한 멤버의 괴롭힘이 있었다” 폭로

입력 2020-07-05 15:16 수정 2020-07-05 15:32
그룹 에이오에이(AOA)가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SBS 가요대전' 포토월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단은 그룹 에이오에이(AOA) 전 멤버 권민아(27)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장문의 글이었다. 3일 권민아는 이 글에서 AOA를 탈퇴한 이유로 한 멤버의 괴롭힘이 있었다면서 “날 싫어하는 사람 하나 때문에 10년을 괴롭힘당하고 참다가 결국 AOA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으며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고도 털어놓았다. 이후 권민아가 지목한 멤버가 AOA의 리더 지민(29)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난 주말 온라인상에는 네티즌들의 거센 비판이 줄을 이었다.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사건이기도 했다. 가요계 안팎에서는 이 사건을 세계적인 한류를 이끄는 K팝의 그늘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사건의 근저에는 K팝을 지금의 위상에 올린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결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FNC엔터테인먼트는 4일 오후 11시57분쯤 공식 입장을 내고 “지민은 이 시간 이후로 AOA를 탈퇴하고 일체의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면서 늦은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의혹을 받는 지민이 연예 활동을 끝마치기로 했음에도 대중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일종의 배신감 때문으로 보이는데 팬들이 지지를 보내는 이유로는 K팝 그룹의 노래와 외모만이 아니라 그룹 멤버 간의 우애도 함께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그룹의 팬덤과 비교했을 때도 K팝 팬덤은 특히 멤버들 간에 불거지는 불화를 싫어하는 편이다. 팬덤은 그룹의 일부분이 아닌 관계성을 포함한 전체 이미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멤버들 사이의 관계성에 기반을 둔 ‘팬픽’(연예인을 소재로 쓴 소설)이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소속사가 라이브 방송 등에서 멤버끼리의 친목을 마케팅 요소로 삼는 경우는 많은데 정작 불화에 대처하는 노하우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AOA는 데뷔 이후 멤버 변동이 유독 잦았던 팀이다. 특히 2017년에는 핵심 멤버 중 한 명인 초아가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잠적설과 탈퇴설 등이 여러 번 불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실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일부 팬들은 초아의 탈퇴와 이번 사건이 연관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는 상태다.

대중들의 분노는 아이돌 그룹 내 특정 멤버에 대한 괴롭힘 이슈가 꾸준히 되풀이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2년 당시 화제의 걸그룹이었던 티아라는 멤버 화영에 대한 따돌림 논란이 불붙으면서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요계에서는 멤버였던 화영이 탈퇴하는 과정에서 다른 멤버들이 화영을 따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룹 멤버 사이의 불화설도 잊을 만하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룹 시크릿은 멤버들이 솔로 활동이나 연기 분야에 집중하면서 불화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이 같은 분위기가 팀 활동이 지지부진해지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2016년에는 멤버들과 불화설에 휩싸였던 옛 비스트 멤버 장현승은 성격 차이를 이유로 팀을 탈퇴한 바 있다. 아이돌은 아니지만, 볼빨간사춘기의 원년 멤버 안지영과 우지윤이 지난 주말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자의 입장을 밝히며 지난 4월 팀이 쪼개지며 제기된 불화설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저마다 한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주목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인재를 발굴해 소개하는 형태가 아니라 국내에서는 어린 연습생들을 오디션을 통해 모으고 이들을 집단 생활과 경쟁 시스템을 통해 길러내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런 방식은 연습생들에 대한 쳬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이 가능한 방법이지만, 멤버들 간 갈등 요소도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특히 데뷔 이후 팀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리더와 멤버들 간 위계가 구축되고 스케줄이 눈코 뜰새 없이 이어지면 문제는 더 심화될 여지가 크다.

어린 나이부터 경쟁 시스템과 대중의 시선에 가감 없이 노출되는 연습생이 심리·정서 측면에서 체계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대형 기획사들 몇 군데를 제외하면 전무한 실정이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단순히 그룹을 상품으로 여기는 실태가 만연한 아이돌 시장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아이들에게 집단의식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어린 친구들이 가치관 형성을 할 때 사적인 영역이 필수적인 데도 군대식 문화에서 생활하다보니 관계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친목을 강요하고 합숙생활 등으로 묶어 놓으니 갈등을 피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경루 박민지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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