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막 내린 ‘대선주자 원순씨’의 정치 여정

국민일보

비극으로 막 내린 ‘대선주자 원순씨’의 정치 여정

입력 2020-07-10 08:52 수정 2020-07-10 11:54
지난 9일 공관을 나와 연락이 두절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이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기념촬영한 모습.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10일 정치권은 물론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인권변호사로 시작해 시민운동가를 거쳐 세 차례 서울시장을 역임한 그는 잠재적인 대선주자로 꼽혀온 정치인이다.

성실한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달리 정치인 박원순의 여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시민사회진영 후보로 출마했던 그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단일화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어 범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돈도, 조직도 없던 그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고 당선, 시민들의 지지를 발판삼아 중앙 정치 무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박원순(왼쪽) 서울시장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한 달 앞뒀던 2011년 9월 안 전 대표는 박 시장과 후보 단일화를 합의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일보 DB

서울시장 재임 동안 ‘소셜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경험과 혁신 마인드를 앞세워 꼼꼼하고 성실한 시정을 펼쳤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메르스 대응으로 주목받으며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로 나설 것을 놓고 고심했으나 당시 문재인 후보의 높은 벽을 실감해 중도 포기하는 시련도 겪었다.

2018년 그는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심했다. 서울시장 3선 도전과 경남지사 출마, 국회의원 도전이었다. 그는 서울시장 3선 도전을 선택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해 8월 강북구 삼양동에서 옥탑방 한달 살이를 하고 강남·북 균형발전 기치를 내걸면서 한층 강해진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에 힘입어 반짝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의원의 독주가 시작되면서 박 시장의 지지율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는 최근까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각종 논쟁거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존재감 경쟁을 펼쳐왔다. 이 지사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등 국민이 갈증을 느끼는 이슈를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것과 달리 박 시장은 늘 꼼꼼하고 지적인 방식으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일벌레로 불리며 서울시장 임기 동안 다양한 업무를 추진했음에도 굵직한 업적이나 간판 상품이 없다 보니 선명하고 강력한 이미지가 형성되질 못했다. 이 때문에 실제 실력보다 이슈를 선점하고 주도하는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에 ‘박원순계’ 의원들이 대거 당선된 후, 민주당 의원들과 활발하게 접촉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지난 6일 취임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권 도전 여부를 묻는 말에 그는 이런 답변을 내놨다. “(대통령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 생각한다.” 대선 도전의 열망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누구 못지않게 대선 도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그는 9일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2022년 차기 대선으로 향하던 그의 정치 여정도 갑작스러운 결말을 맞았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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