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아닌 ‘피해호소인’ 고집하는 민주당…여론 싸늘하다

국민일보

‘피해자’ 아닌 ‘피해호소인’ 고집하는 민주당…여론 싸늘하다

입력 2020-07-15 18:07 수정 2020-07-15 23:12

더불어민주당이 사망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15일 공식 사과했다. 이해찬 당 대표는 지난 13일 대리사과에 이어 이날 처음으로 직접 공개 사과했다.

박 전 시장에 제기된 성추행 의혹을 언급하는 대신 추모 분위기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나온 것이지만,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한 전직 비서가 일방적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아놓은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형사사법절차에서 엄연히 ‘성추행 피해자’ ‘성범죄 피해자’라는 표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데도 여권이 이번 사건에만 유독 ‘피해 호소인’ ‘피해 호소여성’으로 부르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또다른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대표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드릴 말씀이 없다. 다시 한번 국민에게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당 대표로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틀 전 강훈식 수석대변인을 통한 사과에서도 ‘피해 호소인’ 표현을 썼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전날 성명에도 같은 단어가 사용됐다.

이는 과거 다른 성범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민주당 태도와는 극명히 대비된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직후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성범죄 피해자에게 인사 불이익을 남용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고 주장했다.

같은해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 비서 김지은씨의 성폭행 피해 인터뷰 직후 당시 추미애 당 대표는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지난 4월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윤호중 당 사무총장은 “피해자 고통을 덜어낼 수 있다면 모든 조치를 다 하겠다”고 했다.

서울시도 이날 ‘직원 인권침해’ ‘피해 호소인’ 표현을 사용했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이전에는 이런 말(피해 호소인)을 쓴 적이 없다”면서도 “해당 직원이 아직 시에 피해를 공식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유독 ‘피해 호소인’ 표현을 쓰는데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비판은 거세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단체 인사는 “박 전 시장 행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망,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지적했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혐의 사실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려는 것”이라며 “그 단어에 여당 생각이 함축돼 있다”고 지적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피해자 말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뜻”이라며 “우리가 언제 김지은과 서지현을 피해 호소 여성으로 불렀나”고 주장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 여성 의원은 “당 내에선 피해자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사건 진상 규명에도 민주당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고인의 부재로 당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 서울시에서 사건 경위를 철저히 밝혀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권이 없는 진상조사단이 얼마나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이가현 이현우 이상헌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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