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이 면죄부는 아니다” 박원순 사태, 청년들의 분노

국민일보

“당신의 죽음이 면죄부는 아니다” 박원순 사태, 청년들의 분노

입력 2020-07-16 00:05 수정 2020-07-16 00:05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연합뉴스

추모와 분노. 전직 비서실 직원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은 우리 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우호적인 쪽은 중장년층과 남성, 비판적인 건 젊은층과 여성들이다. 중장년층이 박 전 시장의 죽음 앞에서 떠올린 건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삶과 업적이었다. 이들에게는 혐의를 따지는 것보다 추모가 중요하다. 왜? 박원순이기 때문이다.

반면 2030세대에게 박 전 시장은 가해자다. 그는 ‘인권 변호사’가 아니라 성추행 혐의를 받는 ‘60대 현직 시장’일 뿐이다. 청년층에게는 추모보다 진실규명이 중요하다. 이들은 자칭 진보주의자들의 ‘추모 먼저’ 주장에 분노한다.

국민일보는 15일 세대와 성별에 따라 극단적으로 반응이 나뉘는 박원순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추모 논쟁에 대해 청년 10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답을 해준 20대들은 무엇보다 박 전 시장의 마지막 선택에 분노를 표했다. 박 전 시장은 성범죄 의혹만이 아니라 죽음으로도 피해자에게 가해 행위를 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청년들은 “죽음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① 정모씨(23·여·대학생)

(박 전 시장에 대한 생각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성추행 의혹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덮으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살아서 의혹에 대한 처벌을 받든지, 의혹을 벗든지 어느 쪽이든지 반드시 했어야 했다. 남은 피해자는 자신의 성추행 고발로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책임하게 자기는 나 몰라라 하고 갔다는 생각이 크다. 그게 가장 분노하게 되는 지점이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버렸다는 것.”

(조사는 하는 게 맞을까?)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이대로 덮어버리면 앞으로의 많은 성추행·성폭행 가해자들이, 혹은 의혹을 받는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을 거 같다. 오히려 남은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무조건 죽음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듯한 우리 사회의 태도도 문제다.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이니 그냥 넘어가. 지금 사람이 죽었는데’ 하는 태도.”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현규 기자

② 김모씨(24·여)

(이번 사태에 대한 생각은?) “피해자를 4년간 성추행했고 다른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걸 서울시가 은폐했다는 의혹도 있다. 죽음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박 전 시장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조사를 해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너 때문에 멀쩡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화살이 끊임없이 날아오고 있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이 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문제) “n번방 당시 수많은 청원이 있었고, 서울특별시장을 반대하는 청원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무시당했다. 사회뿐만 아니라 법과 행정부마저도 여성을 2등 시민으로 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모친상에 정치인들의 조문과 화환이 이어지는 걸 보면서 피해자의 일상을 무너뜨린 안 전 지사의 성범죄가 ‘그럴 수도 있는 일’쯤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서울특별시장은 피해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장례는 지지세력을 과시하고 전시하는 위협처럼 느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0일 오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가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이모씨(25·여)

(박 전 시장에 대한 평가는) “그가 서울시장이 되기 전에 누구보다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내왔다는 걸 알고 있다. 시장이 된 뒤에도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행동했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이번 미투 의혹과 죽음을 선택한 과정의 그는 그저 비겁한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박 전 시장이 자기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죗값을 치르지 않고 무책임하게 죽음을 선택한 것이 너무 분하다. 피해자가 어떠한 방법으로도 가해자에게 진실된 사과를 요구할 수 없게 됐고, 구제받을 방법이 사라져버렸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장례를 치른 것도 잘못됐다. 성범죄로 고소를 당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를 기릴 수는 없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이 13일 오전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박 시장의 지지자들이 운구 차량을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④ 신모씨(26·남·대학생)

(박원순 사태를 보면서) “도덕적 해이는 지난 10년 동안 보수 정권을 공격하는 잣대로 쓰이지 않았나.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이 국민의 뜻이었다면서 자신들이 그렇게 세워진 정권이라고 했다. 이제 민주당이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풍경이 좀 다른가? 일련의 사건을 보면 도덕적 해이는 특정 정치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박 전 시장에 대해) “박원순은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였고 서울시장 때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았나. 그의 죽음은 인지부조화 극복의 실패 같다. 본인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괴리감을 이겨낼 수 없었던 거다. 그리고 박원순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도덕적 우월감을 무기 삼던 정치세력은 큰 타격을 받을 것 아닌가. 박원순은 자신의 죽음이 갖는 여파와 의미를 몰랐을 리 없다. 책임감이 없었다.”

CCTV에 마지막을 잡힌 박원순 전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된 9일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마련된 지휘본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⑤ 윤모씨(27·남·사회초년생)

(가장 분노하는 지점) “무책임하다는 것. 박 전 시장은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했던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죄가 있다면 가장이자 1000만 서울시민의 수장으로서 죄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죗값을 받는 게 나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받는 것과 피해자의 용서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박 전 시장의 행동은 가족에게도, 지지자에게도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죄가 없다면 억울함을 풀면 된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언행과 불일치한다는 점, 위선에 속았다는 부분에서도 분노했다.”

(이 문제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문제) “힘 있고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성인식이 문제. 전 세계에서 미투 운동이 벌어졌음에도, 여전히 힘에 의한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14일 오전 서울시청사 정문 앞에 설치된 안내 팻말 위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문구가 붙어있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게시물 캡처, 연합뉴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이 15일 서울시청에서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⑥ 김모씨(24·여·취업준비생)

(이번 사건에 대한 생각) “그가 인권 변호사로서, 서울시장으로서 여성인권 보호에 앞장섰던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배신감이 더 컸다. 본인이 의혹을 직접 풀지 않고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고 죽음을 선택한 것 또한 피해자와 같은 여성으로서 화가 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정치인들 믿을 구석 하나도 없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 전 지사, 박 전 시장까지…. 참 한숨밖에 안 나오더라. 안 전 지사 성폭행 피해자가 쓴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는데 정치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느낄 수 있었다. 건배사를 ‘조배죽’이라고 한다던데 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는 뭐 그런. 정치판 싹다 갈아치워야 한다.”

⑦ 나모씨(25·남·대학생)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아무 말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여러 의혹에 혼란만 생기지 않았나. 정치적으로 이용될 게 뻔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엄청 생길 것을 몰랐나. 무책임했다. 또 안 전 지사와 오 전 시장에 이어 박 전 시장까지 미투 사건에 공직자가 또 연루됐다. 이런 성추행이 정치에만 있겠나. 사회 곳곳에 있을 거다. 이번 사건을 통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평등 교육을 형식적으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효과 있는 교육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사람이 죽는다고 사건이 끝나는 건 아닌데. 미투 운동으로 쌓아오던 크고 작은 노력들이 무너질까 걱정이다.”

(성추행 조사를 해야 할까) “이번 사건으로 고소인을 비난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이 있지 않나. 이런 의혹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성추행 사건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소권이 없어서 명명백백하게는 밝혀내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조사를 통해 밝힐 수 있는 건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⑧ 윤모씨(20·여·대학생)

(성추행 의혹을 조사는?) “사실 성추행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답답함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족들 동의 하에 성추행 의혹에 대한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 죽음으로 인해 공소권이 없어졌을지 몰라도 각종 의혹과 지라시들이 유족과 고소인 모두를 괴롭히고 있다. 훗날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수사가 필요하다.”

⑨ 서모씨(28·남·사회초년생)

(분노하는 지점) “인권변호사, 약자를 보호하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권력을 내세워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었다는 것. 수많은 사례가 있었음에도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현재 사회적으로 만연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잘못됐다. 피해자의 신상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은 상식 아닌가.”

⑩ 조모씨(25·여·대학생)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여성 인권에 힘썼던 그가 성추행 파문이라니? 믿기지 않고 실망감이 크다. 한국 정치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졌다. 정치판에 만연한 저급한 성 인식이나 죽음을 기회로 헐뜯는 야당 의원들에도 반감을 느낀다. 미래통합당 배현진 의원의 아들 병역 의혹 제기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보궐 선거 얘기는 굳이 지금 해야 하는 건가. 왜 지금 진흙탕을 만드나. 그들도 똑같이 추악하다고 느낀다.”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수치심을 이겨내고 용기 있게 발언을 했는데 그게 화살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지 않나. 이런 점에서 여성 인권과 성범죄에 대한 국민 인식이 점점 개선됐다는 것도 느낀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지원 유승혁 이화랑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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