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속옷 챙기고, 혈압 재고…‘여성비서’가 강요받은 일들

국민일보

박원순 속옷 챙기고, 혈압 재고…‘여성비서’가 강요받은 일들

입력 2020-07-17 00:10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벽 마라톤, 속옷 챙기기, 혈압 재기….

모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성 비서들이 떠안았던 업무들이다. 여성 비서들은 시장의 기분이 어떤지 확인하는 ‘기쁨조’ 역할 등 성 차별적 업무를 수시로 요구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불쾌한 신체접촉이나 성희롱은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는 16일 서면 자료를 내고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례를 공개했다. 지난 13일 고소 관련 기자회견을 연 뒤 두 번째 입장이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서울시 여성 비서들은 주말 새벽 박 전 시장의 마라톤에 동참하도록 요구받았다. 박 전 시장이 평소 1시간 넘게 달리기를 하는데 “여성 비서가 함께 뛰면 50분 안에 들어온다”면서 강요했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 일부 직원들은 시장의 결재를 받기 전 “시장님 기분이 어때요? 기분 좋게 보고하게…”라며 기쁨조 같은 역할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들 단체는 “시장이 구두로 긴급하게 결정하는 것이 많으므로 시장에게 원하는 답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비서에게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역할을 암묵적, 명시적으로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이 운동을 마치고 시장실 안에서 샤워할 때면 속옷을 챙기는 것도 여성 비서 몫이었다. 박 전 시장이 씻는 동안 새 속옷을 샤워실 근처에 가져다 줘야 했으며, 박 전 시장이 운동복과 속옷을 그대로 벗어둘 경우 이를 봉투에 넣어 공관으로 보냈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실시된 혈압 측정도 여성 비서들이 맡았다. A씨가 “가족이나 의료진이 하는 것이 맞다”고 의견을 냈는데도, 여성 비서의 업무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박 전 시장은 A씨에게 “자기가 재면 내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안 좋아” 등의 성희롱적 발언도 했다고 한다.

시장실 내 침대가 딸린 내실에서 오침 중인 박 전 시장을 깨우는 일 역시 여성 비서가 했다. 단체들은 “일정을 수행하는 수행비서가 깨워 다음 일정으로 가면 효율적이지만 (서울시 관계자 등이) ‘여성 비서가 깨워야 기분 나빠하지 않으신다’며 비서에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A씨는 ‘승진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는 박 전 시장의 인사 원칙을 근거로 2016년 1월부터 반기별로 전보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이 “누가 그런 걸 만들었느냐” “비서실은 해당사항이 없다”며 승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A씨는 지난해 7월에서야 근무지를 이동할 수 있었다.

이후 올해 2월 다시 비서 업무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A씨는 인사 담당자에게 “‘성적 스캔들’ 등의 시선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고사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어떤 문제인지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단체는 A씨가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후 서울시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별정직, 임기제 정무 보좌관, 비서관 등으로부터 압박성 연락이 온 것도 폭로했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들은 “지지한다”면서도 “정치적 진영론이나 여성단체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거나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심지어 “문제는 잘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거야”라는 압박성 전화도 있었다는 게 단체의 주장이다.

이들 단체는 “서울시청 6층에 있는 증거를 보전하고 수사자료를 확보하라”고 경찰에 촉구했다. 서울시, 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부를 향해서는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 등으로 호칭하는 이중적 태도를 멈추고 적극적인 성폭력 문제 해결과 성폭력적 문화 개선에 나서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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