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괜찮아] 더크로스는 계속 노래한다, 그러니 Don’t Cry

국민일보

[달라도 괜찮아] 더크로스는 계속 노래한다, 그러니 Don’t Cry

입력 2020-07-19 06:30 수정 2020-07-19 11:29
지난 15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밴드 '더크로스' 멤버 김혁건, 이시하. 이들은 좌절을 이겨낸 힘으로 서로의 존재를 꼽았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도전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지나간 유행가를 소환해준다는 한 TV 프로그램에 두 사람이 등장했다.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그 휠체어를 밀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들의 벅찬 표정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2000년대 초반 그 시절 우리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던 록 밴드 ‘더크로스’의 김혁건, 이시하다. 예전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그들 앞에 관객들은 밀려든 반가움을 눈물로 대신했다.

보컬 김혁건은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경추손상으로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어깨 아래로는 감각이 없었고 말을 조금만 해도 숨이 찼다. 그런 친구를 바라보던 이시하는 ‘혁건이가 이제 정말 노래를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어나라, 기다릴게, 다시하자”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렇게 8년, 지난 2일 이들은 신곡 ‘송곳’을 세상 밖에 내놨다.

국민일보는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 엠제이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단정한 양복을 나란히 맞춰 입고 나타난 그들의 표정은 환했다. 또 한 번의 호우시절을 맞은 듯한 더크로스의 지난 이야기를 들었고, 5년 만에 선보인 신곡 최초 라이브를 카메라에 담았다.

라이벌 그놈과 팀이 됐다

둘은 20년도 더 지난 첫 만남을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MBC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한 20살 때였다. 김혁건은 보컬과, 이시하는 작·편곡과에서 각각 공부했는데 쉬는 시간마다 운명처럼 만났다. 당시 김혁건은 거의 매일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다녔고 이시하는 하얀 정장 차림이었다. 이시하가 “복도에서 마주치면 묘하게 기분 나쁜 애가 있잖아요. 그게 얘였어요”라며 웃자 김혁건은 “네가 더 나빴어”라며 받아쳤다.

사실 이들을 진짜 자극했던 건 서로의 출중한 실력이었다. 김혁건은 “이 친구가 작·편곡과에서 조교를 할 만큼 뛰어났어요”라며 “내심 속으로는 ‘쟤랑 팀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죠”라고 회상했다. 이시하 역시 “혁건이가 워낙 탁월했어요. 100~200명 사이에서 톱클라스였으니 눈여겨보게 되더라고요”라며 “학원에서 나와 오디션을 보는데 노래가 안 돼서 자꾸 떨어지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그 기분 나빴던 놈이 생각나는 거예요”라고 했다. 결국 이시하가 먼저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랑 팀을 하지 않을래?”라고.

2003년 데뷔 후 더크로스의 모습. 이하 김혁건, 이시하 제공

더크로스는 정규 1집 ‘Melody Quus’를 내놓은 뒤 음악성이 돋보이는 락발라드의 진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더크로스는 2003년 정규 1집 ‘Melody Quus’로 데뷔했다. 서로에게 내렸던 평가는 정확했고 대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시하의 멜로디가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고 김혁건의 목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타이틀곡이었던 ‘Don’t Cry’는 록 발라드와 고음의 상징으로 불렸다. 그 시절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미국에 스틸하트의 ‘She’s Gone’이 있다면 한국에는 더크로스의 ‘Don’t Cry’가 있다고 추억할 정도다.

이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잠시 이별했던 이들은 재결합 의지를 다진 후 입대했다. 전역 후 팬들 앞에 서자는 약속에 신곡 작업에 돌입했다. 마지막 녹음이 있었던 2012년 3월 26일. 절망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김혁건은 돌연 자취를 감췄고 사정을 모르던 이시하는 사라진 친구의 행방을 물으며 두 달을 보냈다. 그 끝에 들려온 소식은 ‘혁건이가 다쳤다’는 거였다.

나는 노래를 포기했다

그날 김혁건은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다가 신호위반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스스로도 죽음을 예감할 정도의 큰 사고였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응급대원이 가족에게 전화하는 걸 들었다. 20분 내로 오지 않으면 아들을 다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부모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11시간의 대수술 끝에 깨어났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그에게 앞으로의 삶이란 ‘살아있는 지옥’에 불과했다.

2012년 교통사고 후 병원에서 지내던 김혁건의 모습. 그런 친구를 보고 이시하는 "일어나라, 다시 함께하자"며 용기를 심어줬다.

이시하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김혁건은 병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다가가 손을 잡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큰일이 났다는 짐작이 머릿속을 스쳤다. 함께 무대를 호령하던 멤버의 낯선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시하는 김혁건의 사고 1년 전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암울한 일들의 연속이었고 그 역시 우울증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하지만 마냥 모든 걸 내려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제가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혁건이 덕분이에요.” 이시하는 가장 힘들었을 그때를 생각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입으로는 ‘얼마가 걸려도 괜찮으니까 내가 기다릴게. 너는 일어나. 더크로스 다시하자’라고 했어요”라며 “그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누워있던 혁건이가 일어났고,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저는 그걸 부여잡았기 때문에 앞으로 갈 수 있었던 거에요”라고 말했다. 김혁건은 사고 후 노래를 포기했다. 친구의 말이 그저 나를 위로하려는 것임을 알았지만 어느 순간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병원 복도에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의지보다 높은 현실의 벽

다시 노래를 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다. 김혁건에게는 녹음실로 향하는 길부터가 험난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죠.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도착했는데, 시하와 여러 지인이 휠체어를 들고 녹음실 계단을 올랐어요. 굉장히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들에 부딪힐 때가 많죠.”

휠체어에 앉은 김혁건의 재활 모습. 그는 노래를 다시 시작했고 복부를 누르면 목소리가 커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와 멤버 이시하가 들숨날숨에 맞춰 배를 눌러줬고, 지금은 본인 조작이 가능한 복부 압박 제작기구를 착용한 채 노래를 한다.

한번은 김혁건이 미용실에 갔을 때였다. 그는 “예전에는 미용실 의자가 박혀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두 의자 사이에서 머리를 깎는데, 거울을 볼 수 없더라고요”라며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울적한 마음이 소용돌이치는 순간. 밥을 먹는 것, 잠자리에 눕는 것, 외출 전 세수를 하는 것 그 무엇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그를 버티게 한 건 곁에 있는 동료와 다시 노래한다는 사실이었다. 김혁건은 표정을 밝게 바꿔 말했다. “노래할 때 가장 자유로움을 느껴요. 노래할 수 있다는 거 하나로 너무 감사해요.”

그런 두 사람에게 마지막 꿈은 자신들을 거울삼아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거다.

“우리가 이제 나이도 많고 멤버 중 한 명은 장애가 있는데, ‘어? 저런 사람들도 하니까 뭐가 되는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누군가 쓰러지고 좌절할 때 우리를 한번 생각해주면 좋잖아요. ‘그래 걔네도 하는데 내가 왜 못하냐’ 이런 생각을 한다면 저희는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이시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그게 세상에 나와 음악 하고 가는 보람”이라고 확신했다.

‘더크로스’의 이름으로 노래한다는 것

이들이 지나온 날들을 단순히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서로가 있기에 할 수 있었고 더크로스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두 사람에게 더크로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다는 것이 주는 의미를 물었다. 김혁건은 “저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요”라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술 취한 아저씨가 옆에 지나만 가도 무서워요. 저항을 할 수 없으니 여러 상황이 너무나도 무서워요. 하지만 친구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은 거예요. 함께하면 무섭지 않으니까.”

이시하는 ‘슈가맨’ 녹화 당시를 떠올렸다. ‘Don’t Cry’를 부르던 순간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봤는데 무대 중앙에 김혁건이 있었다. 2003년 그때와 같은 자리에. “제가 20대 때 너무 많이 보던 그림이에요. 보컬은 살짝 앞에 가 있으니까 그 시절 내내 저는 혁건이 엉덩이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그런데 그걸 다시 보는데 너무 행복하고 힘이 나는 거예요. ‘아 나한텐 얘만 있으면 뭐든 또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김혁건과 이시하가 함께하는 모습. 이시하는 김혁건의 손과 발이 되어줬다. 그는 "혁건이로 인해 얻은 깨달음이 많다"며 자신의 변화를 고마워했다.

이시하는 이 사진의 제목을 '모래를 느껴봐'라고 정했다.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과정에서도 서로의 존재는 빛났다. 이시하가 하나를 제안하면 김혁건은 끊임없이 연습해 그 이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자극받은 이시하가 또 하나를 요구하면 김혁건은 그걸 한 번 더 능가한다. 이시하는 노래를 길게 하지 못하는 김혁건을 위해 호흡 구간을 고려한 멜로디를 꼼꼼하게 짠다. “이런 게 반복되면서 서로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한 팀이라서 난 그게 좋은 것 같아.” 이시하가 고개를 돌려 웃자 김혁건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여명 64세? 내일모레 죽어도 노래합니다”

김혁건이 다친 지 8년이 지났다. 그는 항상 누워있으니 고작 8개월쯤 지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제 기대여명을 64세로 이야기하는데, 20년 더 산다고 해봤자 마음속으로는 2년4개월 사는 정도일 것 같아요”라며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저 편하게 있는 것보다 내일모레 죽더라도 노래하고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친구의 고백을 듣던 이시하는 김혁건의 또 다른 속마음을 대신 전했다.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길을 가면 이후에 비슷한 사람들이 걸어오기 편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혁건이가 몸을 다친 후에 ‘불편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임무가 내게 있구나’하는 의무감을 가지더라고요. 저도 자연스럽게 동화됐고요.” 공인으로서 전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2015년 나왔던 디지털싱글 '항해'를 녹음하며 찍은 사진. 김혁건의 사고 후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곡이다.

그런 마음은 신곡 ‘송곳’에 그대로 표현돼 있다. 노래를 통해 세상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았다. “그냥 들으면 나를 떠나려는 연인에게 하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사회 약자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시선에서 보면 달라요. 운영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쓰고 버리기 쉬운 카드죠. 그걸 알면서도 떠날 수 없고 붙잡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 그걸 송곳처럼 뾰족하게 묻는 거예요.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도대체 당신에게 난 뭐야?’라고요.”

가사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던 이시하는 과거 경험담을 하나 떠올렸다. “혁건이가 다친 후에 밥 한 끼 먹자고 김밥집을 가려는데 저는 몰랐어요. 모든 곳에 계단이 그렇게 많은지. 그런데 고작 그것 때문에 혁건이랑 저랑 그곳을 포기해야 하는 거죠. 마이클 잭슨이 ‘Man In The Mirror, 거울 속에 있는 사람부터 변화하면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누구나 다 자기가 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은 어떤 입장에서는 갑이 되곤 하고 그럴 땐 을에게 되게 무신경하죠. 사람들이 이런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릴 보세요, 절대 지치지 마세요

두 사람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한 번 용기를 전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건네 달라는 부탁을 하자 김혁건은 “저희 모습과 음악을 통해 절망 속 희망을 잃지 마시고 꿋꿋하게 이겨내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계속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도 덧붙였다.

더크로스는 이후 여러 강연 무대에 올랐고 작은 콘서트도 열었다. 두 사람은 늘 함께였다.

5년 만에 내놓은 신곡 '송곳'을 발매하며 새로 촬영한 프로필 사진.

이시하도 “요즘 힘든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주 가까이에 있는 후배 가수들에게도 이 얘길 하고 싶어요.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운이 없고 배경이 없어서 안 되는 사람들 너무 많거든요. 사실 저희가 지금 그래요. 매니저도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저희끼리 해요. 그런데도 뭔가를 해내는구나 라는 걸 봐줬으면 좋겠어요”라며 동의했다.

긴 시간 버틸 힘을 만들어준 팬들에게도 진심을 드러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팬들 덕분”이라며 입을 모은 두 사람은 “그 사랑에 보답하는 일은 계속 진화된 음악,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 말고는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또 “예전처럼 노래를 들려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늘 있어요. 하지만 다시 불러드릴 거예요. 꼭!”

▼ 인터뷰·신곡 ‘송곳’ 최초 라이브 무대 영상



문지연 기자, 영상=전병준 김다영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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