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원주 조각공원을 지키는 고사리손 삼총사”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원주 조각공원을 지키는 고사리손 삼총사”

입력 2020-07-25 00:24 수정 2020-07-25 00:24
길고양이에게 비를 피할 집을 지어준 아이들 (사진 제공=북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단계조각공원은 강원도 원주시가 조성한 공원입니다. 도심 속 오아시스와 같은 휴식 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마스크와 플라스틱 컵을 비롯한 쓰레기들이 심심찮게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이 공원이 한 달 전부터 깨끗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숲속 요정이라도 다녀간 걸까요.

지저분한 공원을 청소한 요정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치원생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인근 북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해반의 고사리손 삼총사로, 매일 아침 공원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사라진다고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대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수 개월간 집에만 있었던 아이들이 5월 말부터 늦게나마 등교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한창 뛰어놀 나이인 6세 아이들이 좁은 교실에서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유지하며 놀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역시나 등교 이튿날부터 바깥에서 놀자고 조르는 아이들. 선생님은 고민 끝에 조각공원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조각공원과 연결된 숲길에서 길고양이를 만났고, 이때부터 아이들의 고양이 걱정이 시작됐습니다.

“야옹이가 쓰레기를 먹고 아프면 어떡하지?”
“우리가 쓰레기를 치우자.”

마스크를 쓰고 공원의 쓰레기를 치우는 아이들 (사진 제공=북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그날부터 아이들은 공원으로 산책하러 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작은 손으로 공원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길고양이에게는 ‘예쁜이’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먹이도 가져다주었습니다. 비가 내리던 날 아침에는 비를 맞을 고양이가 걱정돼 우산을 씌워 만든 종이 상자 집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고양이도 알았던 걸까요? 이제는 아이들이 “예쁜아~” 하고 부르면 고양이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고양이는 마침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을 본 어른들은 “어른들이 버린 걸 애기들이 줍네. 아이고 미안하고 기특하다”고 말합니다.

직접 만든 푯말을 공원에 심는 아이들 (사진 제공=북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쓰레기는 매일 치워도 이튿날 아침에는 또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직접 푯말을 만들어 공원에 세웠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고양이가 먹으면 배가 아파요. 마스크, 과자 봉투, 커피통을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마세요”

고양이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아침 청소는 어느덧 아이들에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고양이와 공원을 위해 아이들은 또 어떤 걸 하게 될까요?

아이들이 고양이에게 하고 싶은 말 (사진 제공=북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아이들의 자발적인 아침 공원 청소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이들의 선행이 알려지자 지저분하던 공원은 점차 깨끗해졌고 이제는 담배꽁초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양이가 쓰레기를 먹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산책도 한결 상쾌해졌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한 지도 벌써 몇 개월째.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는 점점 높아지고 마음은 지쳐갑니다. 우울한 상황이기 때문일까요. 해반 아이들의 작은 손길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쓰레기는 사라지고, 고양이는 마음을 열고, 사람들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단계동 조각공원에 나타난 건 진짜 숲속 요정이었던 모양입니다. 고사리손을 한 삼총사 요정 말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황금주 인턴기자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