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께, 저는 못혀요” 할머니 건강검진 따라가봤다 [꿍딴지]

국민일보

“끙께, 저는 못혀요” 할머니 건강검진 따라가봤다 [꿍딴지]

입력 2020-08-01 07:30 수정 2020-08-01 07:30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 혼자 사는 노인분들께 일주일에 한 번씩 연락을 해서 말동무가 돼주는 일이었어. 그 때 한 할머니가 했던 말이 기억나.

“국가 무료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라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요.”

할머니를 돕기 위해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 10곳에 전화를 걸었어. 할머니가 보호자 없이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 도와줄 직원이나 코디네이터가 있느냐고 물었지. 그런데 가능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 대부분 답변은 비슷했어. “최대한 보호자와 와달라” “안내 직원은 있지만 1대1로 돕는 직원은 없다”….

약간 놀랐어. 보호자가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은 병원예약부터 방문, 문진표 작성, 건강검진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했던 거야.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뚝딱뚝딱 할 수 있지만 디지털 소외를 겪는 노인들에겐 어려운 일이야.

독거노인 700만명 시대. 노인들이 홀로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영등포구에서만 20년 넘게 홀로 살아온 할머니(76)을 모셨어. 우리는 할머니가 건강검진 가는 길을 멀리 떨어져서 지켜볼거야. 할머니 시선에서 세상을 보는 거지.


건강검진 예약 : 시작부터 쉽지 않다

병원 예약부터 난관이야. 할머니는 10년 넘게 폴더폰만 사용하셨대. 할머니가 네이버 포털창에 병원을 검색해서 연락처를 찾는 일은 불가능해보여. 걱정스런 마음에 계획을 물었어. 쿨내 나는 할머니의 답변. “내가 병원 알어. 기냥 택시타고 가믄 돼.”

할머니 입장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어. 연락처를 수소문한 뒤에 전화를 걸어서 예약까지 하는 것은 굉장히 귀찮고 어려운 일이거든. 우선 병원부터 가서 한번에 모든 일을 해결하는게 속 편하다고 느낀거지.

지난 24일 우리는 택시를 타고 금천구에 위치한 건강검진센터 앞에 내렸어. 할머니는 병원 입구부터 찾았어. 그런데 건물은 왜 이리 많고 높은지, 출입문도 여러개야. 두리번 두리번. 할머님은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사방을 둘러봤어.

이쪽 저쪽 한참을 헤매던 할머니는 우리를 쓰윽, 쳐다봤어. 이제는 알려줄 때 됐다는 느낌으로. 우리는 쓰윽, 눈빛을 피했지. 할머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건물로 직진했어.

할머님, 그런 눈빛으로 보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건물 엘리베이터 옆에는 층별 안내판이 붙어 있었어. 3층에는 병원 이름이 떡하니 적혀있었고. 그런데 눈이 어둡고 작은 글씨의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에게는 큰 도움이 안된 것 같아. 대신 할머니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택했지. 모를 땐 물어보기.

할머니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아저씨를 붙잡고 물었어. “아즈씨, 저 건강검진 왔는데 어디로 가야 혀요?” 약간 당황한 듯한 아저씨는 3층 버튼을 눌러주고 유유히 떠났어. 어찌어찌 병원에는 무사히 도착한 것 같아.

문진표 작성 : “전 못혀요, 못혀요”

할머니는 곧장 접수대로 향했어. 병원 직원은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더니 문진표를 주면서 작성해달라고 했지. 할머니, 복잡미묘한 표정이었어. 저는 글자가 안보여요. 안보여서 못혀요.”

병원 직원은 할머니 뒤만 졸졸 따라 다니는 우리를 의아한 듯 쳐다봤어. 그리고는 할머니 혼자 하시기 힘들거라고, 옆에서 도와주라고 당부했어.

무려 11페이지의 문진표. 할머님이 혼자 하실 수 있을까?

그제서야 문진표를 살펴봤는데 깜짝 놀랐어. 너무 많고 너무 어려웠거든. 병원방문일지, 인지기능장애, 구강검진, 개인정보동의서 등 서류만 무려 11쪽. 질문은 수십개가 넘어. ‘수검신고’ ‘이상지질혈증’ 등 낯선 용어도 많고. 또 체크할 부분과 체크하지 말아야 할 부분도 나뉘어 있어. 76세 할머니가 체크해야 하는 부분만 골라서, 질문 수십개를 완벽히 이해하고, 직접 작성을 한다? 절대 불가능이야.

병원 직원에게 보호자가 없는 노인은 어떻게 문진표를 작성하냐고 물었어. 다행히도 도움을 요청하면 직원이 돕는다고 했어. 그래도 대부분 ‘모른다’ ‘기억이 안난다’ 답하는 경우가 많아서 보호자와 오는게 좋다고 하더라.

우리는 할머니께 문진표 질문들을 쉽게 풀어 설명했어. 할머니가 ‘그렇다’ ‘아니다’ 대답을 하면 하나둘 채워갔지. 일반 성인남녀는 10분이면 완성했을거야. 우리는 그 두 배인 20분이 넘게 걸렸어.

할머니 얼굴을 슬쩍 봤어. 벌써 지친 것 같아. 초점 없는 눈빛과 급격히 줄어든 말수. 할머니 혼자였다면 얼마나 걸렸을까. 장담컨데 반나절은 걸렸을거야.

할머니께 쉽게 설명해드리면서 문진표 작성하는 중!

건강검진 시작 전 : 5447 미로에 빠지다

문진표를 겨우 제출했어. 그러자 직원은 따발총처럼 따다다다 해야할 것들을 설명했어. 할머니와 우리는 얼빠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들었어.

“이름이랑 생년월일, 주소 모두 맞으시죠? 네, 문진표 확인됐고요. 건강검진 결과는 2주 뒤에 나와요. 할머님, 저기서 직진하고 오른쪽으로 쭉 이동하면 탈의실이 나와요. 547번 번호키 들고 사물함 가서 옷 갈아입으면 됩니다. 그리고 투명한 통에 소변을 반절 담아서 선반에 올려주세요. 면봉에 대변을 조금 묻혀서 함께 제출해주세요.”

따다다다ㅡ 따발총처럼 말해주는 직원. 그리고 집중하는 할머님

띠ㅡ잉. 머리에 버퍼링이 걸린 기분이었어. 잠시 주춤하던 할머니는 느린 발걸음으로 무사히 탈의실에 도착했어. 이제 547번 사물함을 찾을 차례. 그런데 우리 할머니, 5분이 지나도 547 숫자를 못 찾고 계셔. 사물함이 많지도 않았는데 이쪽 저쪽을 다니면서 한참을 돌아다녔어. 마치 미로에 빠진 사람처럼.

“할머니 여기예요!” 엇,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어. 5분 넘게 지켜보니 답답했거든. 할머님은 눈이 어두워서 547을 5447로 헷갈리셨대.

"할머님 여기에요!" 나도 모르게 외쳤던 순간.

할머니 머쓱한 웃음을 짓더니 화제를 전환했어. “아, 이거 그거네, 그거. 목욕탕에서 옷갈아입는 그거. 그거랑 똑같네”

그 때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5447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야. 탈의실에서만 벌써 15분이 지났어. 할머님은 가운을 대충 걸치고 허둥지둥 나왔어. 투명한 통에 소변도 담고 면봉에 대변을 묻혀서 제출도 했지.

분홍색 가운 입고 건강검진 받는 할머님

건강검진 시작 : 혼돈의 카오스

드디어 검진 받을 차례야. 할머님은 초음파검사, 복부검사, 기초검사, 흉부X선검사, 채혈검사, 구강검사까지 약 6가지 검사를 받아야 했어. 검사 1개가 끝나면 또 다른 방으로 이동하고 기다리고 다시 검사를 받고. 이 과정이 반복됐지.

검진을 받을 때는 순조로웠어. 옆에서 간호사가 설명해주고 도와줬거든. 그런데 문제는 간호사의 손길이 닿지 않을 때야. 워낙 진료실이 많다보니 검사방을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

우리 할머님 두 손 꼭 잡고 약간 긴장하신 표정이야

여기서부터 혼돈의 카오스야. 할머님은 3번 방으로 가야 하는데 2번 방으로 잘못 들어갔어. 대기실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검진을 안하는거야. 이상함을 직감한 우리는 간호사에게 물었어. 간호사는 2번 방이 아니라 3번 방으로 가야 한다고 안내했어.

3번 방에 다시 도착했어. 마찬가지로 대기실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어. ‘아잇, 이번엔 제대로 찾아왔는데 왜 또 검진을 안하는거야’.

또 다시 슬픈 예감을 직감한 우리는 간호사에게 찾아갔어. 검사방에 도착했으면 간호사한테 진료표부터 보여줬어야 한대. 우리도 그때 처음 알게 된 내용이야. 이 상황에 할머니만 혼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할머니를 스윽 쳐다보니 자리에 앉아서 멍하게 진료실만 쳐다보고 계셨어.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멍하게 진료실만 바라보는 할머님

건강검진 마치고 : “혼자는 못 올거 같혀”

1시간 30분 만에 모든 검사가 끝났어. 일반 성인의 경우 40분이면 끝난다는데 두 배 이상이 걸린 것 같아. 할머니께 오늘의 소감을 물었어.

“할머니, 병원에 혼자 오니까 어떠셨어요?”
“의사 선상님들이 잘 해중께 그래도 오늘은 수월했셔. 근디 혼자는 못 올 것 같혀. 나같은 노인네들은 혼자 오면 무섭고 외로웅께. 누가 말동무 돼주고 옆에서 도와주는 게 좋지.”

독거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건강검진 도움 서비스는 없을까.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여러 곳의 노인복지회관에 문의한 결과, 아직까지 그런 지원은 없다는 답을 들었어. 의료급여세대인 65세 이상 노인들은 보건소 쪽에서 도움을 받기도 해. 하지만 여기에 해당이 안되는 어르신들은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거야. 혼자서 이 모든 걸?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것 같아. 특히 요즘 병원에는 키오스트나 디지털 기기가 많이 도입돼 노인들이 우왕좌왕하는 상황도 연출된다고 하더라.

오늘 하루 할머니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나니 세상이 노인들에게 얼마나 불친절한지 알 거 같아.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하고 편한 것들이 할머니 눈높이에서는 온통 낯설고 어렵고 어리둥절하더라고. 모든 게 너무 빠르기도 했고. 사람들의 말도, 보폭도 모든 게 그렇더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어. 오랜만에 전화를 했지. “할머니, 잘 지내시죠? 최근에 건강검진을 잘 받으셨어요?” “응, 그랴 우리 강아지. 보고싶다.” 그 순간 마음 한 켠이 몽골몽골해지더라.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어.

김지은, 양재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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