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끝에 선 세 자매가 아빠에게 망치를 휘두른 이유

국민일보

절망 끝에 선 세 자매가 아빠에게 망치를 휘두른 이유

입력 2020-07-31 18:10
러시아 세 자매가 학대를 일삼은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맨 왼쪽부터) 크레스티나, 안젤리나, 마리아 카차투리안. CNN

2018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한 아파트 계단에서 5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숨진 남성은 미하일 하타투란(당시 57세)으로 그의 목과 가슴에는 30여개의 자상이 나 있었다.

미하일을 살해한 범인은 그의 세 딸 크레스티나와 안젤리나, 마리아였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각각 19, 18, 17세였다.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0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크레스티나와 두 여동생 안젤리나, 마리아는 지난 2018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에서 친부 미하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은 아버지 미하일이 세 자매에게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며 시작됐다. 당시 미하일은 집이 어질러져 있다는 이유로 세 자매를 나란히 세운 후 얼굴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에 천식을 앓고 있던 큰딸 크레스티나는 호흡 부전을 호소하며 기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미하일의 가혹 행위에 참다못한 안젤리나와 마리아는 크레스티나가 기절해 있는 동안 아버지 미하일을 살해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두 자매는 아버지가 잠든 사이 그의 후추 스프레이와 망치, 칼 등으로 그를 공격했다.

오후 7시쯤 정신이 든 크레스티나도 두 여동생이 아버지 위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곤, 이에 가담해 아버지를 공격했다. 이후 미하일은 절뚝거리며 아파트 계단으로 나갔지만 뒤따라 나온 안젤리나에 의해 숨을 거뒀다.

이들은 아버지를 살해한 후 먼저 공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자해한 뒤 경찰과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 날 심문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했으며, 수년간 아버지로부터 신체적·성적·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가정폭력 전문가와 여성단체들은 오랜 시간 학대를 받아온 세 자매가 법적·제도적 보호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자신들을 방어하거나 아버지 손에 죽는 것밖에 없었다며 이들을 변호하고 나섰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법정에서 나오는 마리아 하투랸의 모습. AFP 연합뉴스

러시아 인권단체는 세 자매와 면담한 후 “아버지가 딸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노예처럼 부리면서, 총칼로 협박했다”고 전했다.

자매의 변호사 알렉세이 파신은 “우리는 자매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는 “소녀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학대 증후군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포함한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매의 어머니 또한 미하일로부터 감금과 폭행해 시달리다 2015년 집에서 쫓겨나 자매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며 “미하일의 휴대전화에서는 그가 자매들과 이들의 어머니를 성폭행하고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는 메시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안젤리나와 마리아는 2016년 초 가족 휴가에서 있었던 일도 진술했다. 당시 휴가지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같은 방을 쓰던 언니 크레스티나가 성폭행 위협에 처하자 뛰쳐 나와 알약 한 움큼을 삼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자매는 미하일이 ‘과자를 너무 많이 먹는다’ ‘셔츠가 제대로 다려져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거의 매일 감금과 폭행을 했다고 세 자매는 주장했다.

크레스티나와 안젤리나의 심리는 31일 모스크바 법원에서 열린다. 막내 마리아는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이유로 별도로 재판을 받게 된다.

송혜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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