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과 17년, 헌옷 주워다 입는 여배우 용녀씨[영상 인터뷰]

국민일보

유기견과 17년, 헌옷 주워다 입는 여배우 용녀씨[영상 인터뷰]

입력 2020-08-01 07:00 수정 2020-08-01 11:26
이용녀씨는 경기도 포천 한 시골마을에 80여마리의 유기견·유기묘와 함께 산다. 주변은 산과 들 뿐인 이곳에 정착하게 된 건 3년 전이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마음껏 소리칠 수만 있다면 이정도 불편함은 이씨에게 별 것 아니었다. 최민석 기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밤새 아픈 아이가 없었는지 살핀다. 그다음 비워진 그릇들에 사료와 물을 가득 채워둔다. 여기저기 남겨진 배변 흔적들도 쓸고 닦는다. 이불 위에 담뿍 쌓인 흙모래도 탈탈 턴다. 대충 이런 기본적인 일을 하고 나면 반나절 이상이 훅 가버린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할 일은 두 배가 된다.

홀로 유기견·유기묘 80여마리를 돌보는 배우 이용녀씨의 하루는 바쁘다. 세수조차 못 하고 며칠을 넘긴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어느 골짝에 있는 그의 집을 지난 27일 찾았다. 이씨는 이날 카메라 앞에 서면서도 꽃 모양 핀 하나를 머리에 꽂고 말았다. 대신 아이들의 헝클어진 털을 연신 손으로 빗겼다.

배우로 살던 삶의 중심이 유기견들에게 옮겨진 지도 벌써 17년. 그에게 동물과의 동행이 가져온 변화를 물었다.

30, 60, 120… 자꾸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유별난 애견인이었다. 이씨가 어릴 적 집에는 13마리의 반려견이 있었고 온 가족이 무한한 사랑을 주는 대상이었다. 개들에게 먹일 생선 같은 특식 재료를 사는 일은 하굣길 이씨의 즐거운 몫이었다. 식구와 다름없는 개들을 학대하거나 버리는 일은 당연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보소호 내 아이들에게 줄 간식은 시간을 내 미리 잘라둔다. 인터뷰를 하는 이씨 대신 인근 주민이 방문해 이 일을 맡아줬다. 김다영 기자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이씨는 17년 전 어느 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첫 유기견을 만났다. 연극 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시츄 한 마리가 한쪽 눈이 터진 채 떠돌고 있었다. 고름과 피가 흘러 엉겨 붙은 상태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이씨는 인근 주민에게 “주인에게 빨리 연락해야 할 것 같아요. 병원 가야 할 것 같은데”라며 SOS를 쳤다. 그러자 돌아오는 말. “버려진 개예요. 초등학교 애들이 돌을 던져 눈이 저렇게 됐다고.”

이씨는 “그 애를 안고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이 개를 주인이 버렸다는데 말이 돼요?’라고 했더니 의사가 시보호소라는 곳에서 유기견들을 모았다가 한 달 후 안락사를 시킨다고 하더라”며 “처음에는 안 믿었다. 믿을 수 없었다”고 그때의 충격을 떠올렸다. 그는 그길로 시보호소 이곳저곳을 찾아 버려진 아이들을 품기 시작했다. 첫날 다섯 마리, 둘째 날 열일곱 마리… 어느새 120여마리가 모였다.

“안 아픈 애만 주세요” 비겁했던 그 말

고민이 많았고 마냥 행복하지도 않았다. 처음 맞닥뜨린 위기는 세를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난 거였다. 재개발로 텅 빈 동네를 찾아 나섰고 통장에 남은 돈을 긁어모아 겨우 보금자리를 구했다. 잠깐의 안정을 찾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아픈 아이들이었다. 동물병원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빚까지 생겨났다.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을 묻자 이씨는 “데려온 아이 중 네 마리가 한꺼번에 아팠던 적이 있다”며 “이미 병원비 외상이 너무 많이 쌓였고 방법이 없어서 개를 붙잡고 며칠 밤을 울었다”고 대답했다. 당시 그는 TV 동물 프로그램을 비롯한 여러 곳을 찾았으나 ‘이슈가 되지 않기 때문에 도와주기 어렵다’는 말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사진 속 개의 이름은 윌리엄. 이곳에 모인 유기견들의 서열 정리부터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일까지, 반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 내내 이씨 옆에 누워 자리를 지켰다. 최민석 기자

그런 생활이 몇 년간 계속되자 첫 마음가짐과는 다른 말들이 이씨의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안 아픈 애들만 넘겨주세요. 병원 갈 일 별로 없는 애로요.” 속이 상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시보호소에 들어가 ‘얘랑 얘만 데려가겠다’고 하려니 그 옆에 있는 아이들이 ‘나도 데리고 가 달라’는 눈빛을 보낸다”며 “그걸 무시한 채 돌아서면 한동안 우울증이 시작된다. 스스로가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고 내 무능력이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언니, 정말 배우 그만두려고 그래?”

고단한 일상에 자신을 챙기는 일에도 소홀해졌다. 옷을 사 입는다든가, 새 화장품을 쓴다든가, 미용실을 찾아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건 꿈도 못 꿨다. 42년차 배우 이씨는 지금도 남이 버리려 내놓은 옷을 주워다 입는다. 지금도 가족들은 “왜 그러고 사느냐”는 말을 볼 때마다 했고, 무대에 함께 오르던 동료들은 일부러 더 쓴소리를 뱉었다. “언니 배우 그만둘 거야? 지금 꼬락서니가 어떤지나 알아? 창피해서 어디 부를 수가 없어!”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린 탓에 작은 몸집의 강아지들은 집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이씨가 간식을 들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최민석 기자

이씨는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아픈 말들을 맞아가면서도 이상하게 멈추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컸고 극단 생활을 하면서도 선생님과 선배들이 예뻐해 줬다. 지금껏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았는데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까 고민했다”며 “사람을 입양해 키울 능력과 조건은 안 되니 사람들이 버린 개들을 내가 대신 돌봐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유기견들과의 교감도 큰 원동력이 됐다. 이씨는 “주워오고 얻어온 이불을 아무렇게나 깔아주는데도 얘들은 아무 불만이 없다. 집도 따로 없고 자기들끼리 포개서 자지만 서로 양보하고 편안하게 잔다”며 “그 모습이 너무 고맙다. ‘내가 조금 움직여서 너희가 이만큼이나 좋아한다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그가 새로운 가족을 찾아준 유기견은 지금까지 1500여마리. 이씨는 자신의 품을 벗어난 아이들이 보호소에서의 기억을 잊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지금의 주인과 마냥 행복한 모습을 볼 때면 주변의 만류를 이겨낸 보람이 가득 차오르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씨는 지난해 겨울, 하루 4시간씩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개 식용 금지 4대 법 통과를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일명 ‘트로이카 3법’으로 불리는 ▲축산법 개정안(개를 가축에서 제외) ▲동물보호법 개정안(동물의 임의 도살을 금지)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음식물 쓰레기의 개 사료 사용금지)과 민법 98조 개정안(동물을 물건 아닌 생명으로 인정)을 묶어 4대 법으로 일컫는다.

동물권 운동에 직접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에 대해 그는 “내가 참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유기견들을 돌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농장을 알게 됐다. 그곳 아이들은 삶이 지옥이다. 용서가 안 됐다.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며 “법이 바뀌어야 했다.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국회 앞에 갔다”고 말했다.

이용녀씨는 지난해 초부터 1년 반동안 국회 앞에서 동물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그는 "말 못하는 아이들 대신 얘기해줘야 한다"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용녀씨 페이스북

이씨는 현재 전국동물활동가연대를 통해 관련법 개정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정부도 국회도 개식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무책임하게 미루는 모습에 실망스럽다”며 “반려인구가 1000만을 뛰어넘었고 관련 산업도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들에게 얻는 것만큼 최소한의 의무를 행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동물 학대에 관한 법 역시 처벌 수위의 하한선을 정해야 한다. 최대 벌금만 오르면 뭐하나, 재판에서는 고작 벌금 몇 만원 혹은 집행유예에 그친다”며 “말 못 하는 아이들 편에 서서 얘기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르고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 혼자서는 힘도 능력도 없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키워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에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나를 바꾼 아이들

이씨는 “내가 이런 깡촌까지 들어와 산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며 웃었다. 그는 이 일을 하기 전만 해도 유행에 민감하고 좋은 집에 살며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직접 쇠파이프를 용접해 기둥을 세우고 비닐로 아무렇게나 천막 친 집에서, 마당에 코스모스 한 송이 심는 게 유일한 사치라는 지금의 그와는 딴판이다.

이씨 집 입구에 걸린 '친절한 용녀씨네' 문패. 처음에 이곳은 그저 휑한 공터에 불과했으나 울타리며 기둥이며 모두 이씨가 직접 사와 설치했다. 김다영 기자

누군가 '왜 이 일을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이씨는 "내가 아이들에게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대답을 하겠다고 했다. 최민석 기자

이씨가 바라보는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지 궁금했다. 욕심을 버리게 됐고 훨씬 평화로워졌다고 말하는 이씨의 표정에서 편안함이 묻어났다. 그는 “작품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악이 올라 집으로 돌아온다. 문을 딱 닫고 들어가면 개들이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는 앞에 와서 눈을 쳐다봐 준다”며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나면 ‘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끙끙댔구나’ 싶고, 지나치게 예민해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옆에 앉은 한 아이를 쓰다듬으며 “내 정신과 주치의” 하고 웃었다.

누군가는 이씨를 보며 희생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얻은 게 훨씬 많다”고. 버림받은 존재이지만 작은 손길에 행복해하고 변화해가는 유기견들의 모습에 이씨는 자신의 지난날을 투영했다고 한다. 속상함, 후회, 미련, 분노 속에서 피 끓이며 살던 습관이 사라진 건 거쳐 간 많은 아이 덕분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러면서 “말하지 못해 당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졌다.

*입양·후원·봉사 문의는 jymoon@kmib.co.kr

▼ 이씨와 유기견 80여 마리의 ‘행복한 동고동락’ 인터뷰 영상



문지연 기자, 촬영·편집=최민석 전병준 김다영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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