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광풍’ 90년대 일본처럼 버블 붕괴될까…“한국은 다르다”

국민일보

‘부동산 광풍’ 90년대 일본처럼 버블 붕괴될까…“한국은 다르다”

입력 2020-08-10 10:00 수정 2020-08-10 10:14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1990년대 일본 버블 붕괴가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유동성 공급이 ‘부동산 광풍’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직장인 연 수입의 18배까지 가격이 오르던 일본의 부동산은 1991년 폭락하며 20년 장기불황을 불러왔다. 다만 과거 일본과 달리 현재 한국은 가파르게 금리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버블 붕괴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동산 거품이 오래갈 수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왕’ 나타나던 日 1991년 자산 폭락
일본 경제의 버블은 1986년부터 발생해 1991년에 터졌다. 버블을 촉발시킨 건 1985년 플라자 합의다. 주요국이 엔화 평가절상을 합의하면서 ‘엔고 현상’이 발생했다.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저하로 경기 부진이 오자 일본은 금리인하와 내수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시장에 자금은 과잉 공급 되기 시작했고, 가계와 기업은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했다.

1984년부터 도쿄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은 상승했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이후 5년간 2.7배 상승,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같은 기간 2.2배 올랐다. 전국 여기저기에서 ‘부동산 왕’이 나타났으며, 많은 대출을 받아도 금방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 갚을 수 있었다. 버블 경제 전성기였던 1990년에는 주택 가격이 직장인 연 수입의 8배, 수도권 신규 아파트 가격은 직장인 연 수입의 18배에 달했다.

그러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1991년 갑자기 꺼졌다. 일본도 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 세금 인상, 부동산 감정가 현실화 등을 시행했다. 그리고 뒤늦게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했다. 1989년 2.50%였던 기준금리는 1990년 6.00%까지 올라갔다. 그러자 부동산 가격은 1990년 10월부터 하락세로 전환했다. 1991년 4월 본격적으로 버블이 꺼지자 전국적으로 아파트와 토지 가격은 절반 이하로 추락했고, 대도시 주변에는 개발이 멈춘 유령 도시가 속출했다. 이후 일본 경제는 자산 거품 붕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20년’으로 진입했다.


韓 집값 치솟지만…금리 인상 어려움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30년 전 일본과 유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경기 부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시중에 풀린 많은 돈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서울 입주 5년 이내 아파트 평균 가격은 14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관건은 거품이 언제까지 유지될 지다. 우리나라도 갑자기 버블 붕괴가 나타나면 큰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다행히 일본과 같은 버블 붕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금리다.

일본의 자산 가격 추락에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금리 인상이다. 단기간 가파르게 금리를 인상한 정책 실수가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는 이른 시일 내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분위기다. 시중에 돈을 푸는 유동성 공급을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역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선제적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 수준의 저금리가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금리를 급격하게 올려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이어지는 일은 발생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과 한국의 부동산 거품 원인이 비슷하지만 경제 상황, 상승 폭 등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붕괴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부동산 광풍 장기화 가능성 “유동성 분산이 최선”
결국 한국의 부동산 시장 광풍은 일본과 달리 장기화 될 수 있다. 이에 금리를 건드릴 수 없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유동성 분산일 것으로 보인다. 과잉 공급되는 자금을 부동산 외 다양한 투자처로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과잉 유동성 시대를 처음 연 일본은 기축통화국 등의 장점을 이용한 해외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 시중에 풀린 풍부한 돈이 전 세계 각지의 부동산, 금융상품, 소비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큰 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유동성이 부동산 외 해외 투자처 등으로 분산되고 있다.

미국 또한 비슷하다. 초저금리로 시중에 넘치는 돈이 부동산 보다 주식 시장에 더 많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은 2015년 기준 1.00%인데, 주요국 평균인 0.38%, 한국 0.16% 보다 높은 편이다. 주택 보유에 대한 세부담과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대출 제도 등이 부동산 보다 주식 투자를 선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1990년 일본과 2020년 한국 부동산 상승세가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정책 금리 인상이다”며 “전 세계가 제로 금리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버블 붕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상승세가 장기화될 수 있는데, 유동성이 분산될 수 있도록 다른 물꼬를 터주는 방법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부동산 가격이 높지만 아직 과거 일본과 비슷한 수준은 아니고, 버블 붕괴의 금리 인상 같은 정책 실패도 나타나기 힘들 것”이라며 “한동안 유동성 공급이 유지될 수 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려면 실물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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