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쌍둥이’ 54년전 대법 판결로 반전 노렸나

국민일보

‘숙명여고 쌍둥이’ 54년전 대법 판결로 반전 노렸나

입력 2020-08-12 15:22

‘숙명여고 시험답안 유출’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쌍둥이 자매는 선고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54년 전 대법원 판결문을 재판부에 냈다. 수험생이 우연히 채점기준표를 알게 돼 암기한 시험답안을 제출한 경우 업무방해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우연히 암기한 답을 입학시험 답안지에 기재해선 안 된다고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내내 혐의 자체를 부인해왔던 쌍둥이 자매가 선고 직전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죄가 안 된다’는 다른 취지의 입장을 재판부에 밝힌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12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현모 쌍둥이 자매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40시간을 명령했다. 이날 송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자매 측 변호인들이 선고를 일주일 앞둔 지난 5일 1966년 3월 22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문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9월 3일 서울 도곡동 숙명여자고등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시험답안 유출'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매 측이 제출한 판결문은 1965년도 서울 시내 사립·공립고등학교 전기 입학 연합고사 채점기준표가 유출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됐던 수험생은 우연히 채점기준표를 받아서 답을 암기했고, 외웠던 문제가 실제로 나오자 그에 따라 답안을 작성·제출했다. 이 수험생은 채점기준표가 유출되는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이 같은 행동에 대해 “수험생들의 일반적 심리상태로 보아 미리 암기한 답을 기입해선 안 된다고 기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쌍둥이 자매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검찰은 쌍둥이 자매에게 숙명여고 1학년이던 2017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이듬해 1학기 기말고사까지 숙명여교 교무부장이었던 아버지 현모씨가 다섯 차례 빼돌린 답안을 보고 시험을 치렀다는 혐의(업무방해)를 적용했다. 자매는 66년도 판결문을 내면서 자신들이 답안 유출 과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고 우연히 알게 된 정답을 답안에 적지 않는 것은 수험생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취지로 항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가 2018년 11월 12일 '숙명여고 시험답안 유출' 사건의 수사 결과 발표에서 숙명여교 교무부장 현모씨와 두 딸들에게서 압수한 압수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송 부장판사는 “사안이 다르다”며 자매 측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과 아버지 현씨의 관계를 비춰볼 때 이 사건에서 적법행위로 나아가는 게 전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자매들이 마지막 반전을 노리고 낸 대법원 판결문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송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은 공정한 경쟁 기회를 박탈하고 학교의 시험업무를 방해했다”며 “공교육에 대한 다수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려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그는 지난 3월 아버지 현씨의 업무방해 혐의에 징역 3년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자매에게도 유죄를 선고했다.

이날 쌍둥이 자매는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들고 꼿꼿이 선 채로 송 부장판사의 선고문 낭독을 들었다. 자매 측 변호인은 재판 이후 “(재판부가)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드러냈다”고 반발했다.

‘숙명여고 시험부정’ 쌍둥이 집유…“공교육 신뢰 무너뜨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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