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슬럼가… 정부가 키운 ‘공공임대 혐오’[이슈&탐사]

국민일보

닭장·슬럼가… 정부가 키운 ‘공공임대 혐오’[이슈&탐사]

공공임대 정책 탐구 <상> 공공임대주택은 왜 혐오시설이 됐나

입력 2020-08-17 07:00 수정 2020-08-17 20:15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주변에 건설 중인 '역세권 청년주택'. 만 19세에서 39세 사이 청년이 입주 대상으로, 공공임대 323가구를 포함한 1086가구가 2개동에 입주할 예정이다. 하지만 좁은 전용면적과 높은 용적률로 '닭장' 논란이 불거졌다. 김지훈 기자

지난 6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 회의실. LH 관계자가 “사업지구 내 최대 126마리의 맹꽁이를 확인하였습니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지난해 5월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분당구 서현동 110번지 인근 주민들이었다. 한 주민은 “아까 맹꽁이가 126마리라고 그랬는데요, 126억 마리입니다”고 외쳤다. 다른 주민은 “우리 멸종위기종인 맹꽁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환경 단체들이)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맹꽁이를 걱정하기 시작한 건 서현동 공공택지지구에 공공주택 2500여 가구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된 뒤부터다. 서현지구는 문재인정부의 주거복지로드맵에 따라 신혼부부와 청년을 위한 공공임대·분양 아파트 설립이 추진되는 지역이다. 공공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맹꽁이가 서현동에 다수 서식하고 있으므로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에는 이곳에서 독성이 강한 세척제가 여러 통 발견됐다. 반대 측은 사업을 강행하려는 쪽에서 맹꽁이를 죽이기 위해 독극물을 풀었다고 보고 경찰에 고발했다.

서현동 주민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분당구 서현동 공공주택지구 지정 취소를 주장하며 배포한 전단. 소년범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해 치안을 해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잘못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서현동 주민 비상대책위원회 카페

서현동 주민 상당수는 이곳에 공공임대 아파트가 들어서면 학군이 파괴되고 교통이 마비돼 지역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해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 등 신원이 검증되지 않은 청년들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온다. 주민의 안전과 치안을 위협할 것’이라고 적힌 전단을 배포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LH 관계자는 17일 “구체적인 입주 자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국민 주거안정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서현지구 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뿌리 깊은 임대아파트 혐오

공공임대주택은 상당수 사람에게 혐오 시설로 받아들여진다. 정부가 ‘8·4 부동산 대책’에서 수도권 주택공급 방안으로 서울 마포구 상암DMC 미매각부지,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부지 등에 공공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하자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최근 장맛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건설 반대 시위를 벌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도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어떤 유형의 공공임대 주택이 들어설지, 임대주택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공공임대주택이 대거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만으로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들이 유별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접수된 전체 공공임대주택 관련 민원 가운데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민원은 1068건(29.8%)으로 가장 많았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서울 목동과 잠실 등 수도권 7곳을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지정했지만 목동에서 지역 주민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구 지정을 해제했다. 함께 시범지구로 지정됐던 잠실·탄천 유수지도 사업이 멈춰있는 상태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혐오는 이처럼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LH가 올해 초 펴낸 ‘공공임대주택 이미지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는 공공임대주택과 거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잘 보여준다. LH는 수도권의 공공임대주택 인근 주민 29명을 상대로 집단심층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임대는 ‘노후하고 층간 소음이 많음’ ‘기초생활수급자 같이 능력 없는 사람들의 주거지’ ‘슬럼가’ ‘사회적으로는 필요하지만 나는 절대 가지 않을 곳’이라고 여겨졌다.

공공임대주택 인근 주민들은 종종 불편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강북구의 영구임대아파트 인근에 거주하는 A씨(50대)는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동네에 많아져서 마트나 은행에 가도 대기시간이 길다”고 했다. 임대아파트 주변에 있는 학교를 나온 B씨(30대)는 “부모님 케어를 못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끼리 어울려 집단을 형성한다. 불량학생이 많았다. 지나다가 돈을 뜯기는 일은 되게 많다”고 했다.

지역의 인프라와 교육 환경에 대한 불만도 컸다. 강북구 주민 C씨(50대)는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안 오니 마을이 초고령화가 되고 있다. 동네 도서관 프로그램이 다 죽었다”고 했다. 강남구 임대아파트 인근의 학부모 D씨(30대)는 “고학년이 될수록 학급수가 줄고 아이들 교육환경 때문에 동네를 떠난다”고 말했다. 영구임대주택과 인접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E씨(50대)는 “한 구역 옆 아파트와 2억원 정도 차이가 난다. 속상함이 극에 달한다”고 말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공공임대에 사는 아이들을 ‘휴거지’(LH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를 합성한 말)로 부른다는 말도 나온다.

취재팀이 지난 10일 찾은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외관. 외벽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다. 방극렬 기자

싸게 많이…모두 꺼리는 저질주택 됐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이 같은 정서를 단순한 이기주의나 ‘님비(NIMBY)’ 현상으로 치부하고 탓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들은 지난 30여년간 정부의 공공임대 정책이 시민들의 혐오를 방치하고 키웠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공공임대아파트를 주로 취약계층의 주거복지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수혜자를 늘리는 데 방점을 찍다 보니 임대주택의 양적 성장만 중요시했다. 정부는 질적 관리에는 손을 놓았다.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이 밀집해 발생하는 낙인 효과를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소득층만 집단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든 대규모 임대단지는 누가 봐도 피하고 싶은 가난한 동네일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는다면서 투자는 하지 않다 보니 품질도 좋지 않고 관리도 안 된다”며 “취약 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잔여적’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장마가 이어지던 지난 10일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복도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복도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방극렬 기자

취재팀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를 찾았다. 1990년대 초반 정부가 도입한 공공임대주택 초기 모델 중 하나다. 2400여 세대가 있는 아파트 16개 동의 흰색 외벽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다섯 가구당 하나꼴로 외부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있지 않았다. 아파트 한가운데 놓인 놀이터의 벤치에는 노인 여러 무리가 장맛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여 있었다. 일부 노인은 비를 맞으며 담배를 태우고 막걸리를 마셨다. 2시간이 넘도록 놀이터를 찾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파트 한 동에 들어가니 15층까지 운행하는 엘리베이터 두 대 중 하나에 ‘고장, 수리 중’이라는 알림 종이가 붙어있었다. 4층 복도에는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쉼 없이 흘러내리는 물은 열린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빗방울과 함께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로비에 놓인 공용 시계는 건전지가 다했는지 11시44분을 가리킨 채 멈춰있었다.

오래된 임대아파트에서는 시설 노후로 인한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6월에는 강서구 임대아파트에서 부엌 찬장이 갑자기 떨어져 80대 노인이 사망했다. LH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공공임대주택에서 사망·상해를 비롯한 사건 사고가 644건 발생했다.


소형 주택이 모여 있는 공공임대주택은 공공연하게 ‘닭장’ ‘벌집’이라고 불린다. 좁은 공간에 수백수천 가구가 빽빽하게 들어찬 것을 비유한 멸칭이다. 현재 서울 용산구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건설 중인 역세권 청년주택이 단적인 사례다. 이곳에는 공공임대 323가구를 포함한 1086가구가 2개 동에 입주할 예정이다. 임대주택 전용면적 크기는 19.50~39.80㎡(약 5.9평~12평)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공공임대주택 유형별 주택 규모의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대다수 영구임대주택(94.2%)과 행복주택(97.0%)은 전용면적이 40㎡보다 작다.

강서구의 14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손자, 손녀를 키워낸 송모(78)씨의 소원은 ‘너른(넓은)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송씨는 “집이 좁아 냉장고 놓을 자리도 없다. 애들은 키가 크면서 간신히 가로로 끼여서 잤다”며 “17평만 돼도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고품질 임대주택 지어라”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온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양적인 성장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LH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2만3177명이 전국의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려고 대기 중이다. 국토교통부의 ‘2019년 주거실태조사’는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 수가 지난해 기준 106만 가구(5.3%)라고 밝혔다. LH 관계자는 “비좁은 쪽방촌이나 고시원에 사는 분들의 목소리는 지금 (고가 아파트 위주의) 부동산 담론에 소외돼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거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 덕택에 주거비 부담에서 벗어나 빈곤에서 탈출했다고 말했다.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방을 전전하던 한 남성 장애인(50)은 9년 전 동사무소의 도움으로 임대아파트에 당첨돼 입주했다. 그는 “원래 살던 곳은 보증금 700에 월세 25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임대료와 관리비 합쳐서 8만원만 내면 된다”며 “이사 온 이후로 피부병도 사라지고 훨씬 생활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면서도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좋은 임대아파트를 많이 짓기에 정부의 재정 지원은 늘 부족하다. 복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수익성이 낮아져 자체 투자도 쉽지 않다. LH 관계자는 “공공임대주택 한 호를 지을 때마다 1억2000만원 정도가 부채로 잡힌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에 관한 시민들의 오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임대주택과 해당 지역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럭셔리한 공공임대주택에 다양한 계층·연령의 입주자가 들어가고 주변 시설이 개선돼 혜택이 제공되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H 보고서도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과제로 ‘중산층까지 입주자격을 확대해 수혜자를 늘리고, 지역주민이 포용할 수 있는 적정 규모의 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제안했다.

[공공임대 정책 탐구]
▶<하>‘혐오를 파괴한다’ 호텔같은 임대아파트, 평생 사실래요?[이슈&탐사]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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