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향 “퀴리 부인 아닌 마리 퀴리를 연기했죠”[인터뷰]

국민일보

김소향 “퀴리 부인 아닌 마리 퀴리를 연기했죠”[인터뷰]

뮤지컬 ‘마리 퀴리’ 주인공 배우 김소향

입력 2020-08-22 07:37 수정 2020-08-22 08:16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마리 퀴리를 연기하는 배우 김소향이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마리 퀴리는 김소향이고, 김소향이 곧 마리 퀴리잖아요.” 제작사 관계자의 말에 스케줄 문제로 출연을 고사하던 김소향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예정된 공연이 있었고 뮤지컬 ‘마리 퀴리’까지 하려면 안 그래도 ‘헤르미온느’(영화 ‘해리포터’에서 타임머신을 사용하며 빠듯한 일정을 전부 소화하는 인물)로 불리는 그의 스케줄이 두 배로 빼곡해져야 했다. 김소향은 최근 인터뷰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 속 지금처럼 무대가 간절한 순간은 없었다”며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향은 폴란드 출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첫 여성 과학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삶을 담은 뮤지컬 ‘마리 퀴리’의 트라이아웃부터 초연, 재연까지 함께 하고 있다. 김소향을 위한 공연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그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고 다듬어왔기 때문이다.

김소향은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한 올해 19년 차 베태랑 뮤지컬 배우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모차르트’ ‘마리퀴리’ ‘루드윅’ 타이틀롤로 참여하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한 장면. 라이브 제공

‘마리 퀴리’는 제작사 라이브가 주관하는 창작뮤지컬 공모전 2017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2에 선정돼 1년간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거쳐 개발됐다. 지난해 창작산실에서 첫선을 보인 뒤 올초 서사를 대폭 수정하고 음악의 완성도를 높인 버전이 공개되면서 돌풍을 이끌었다.

코로나19 악재 속에서도 흥행에 성공을 거두면서 상반기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이례적으로 5개월 만에 몸집을 키워 지난달 30일부터 앙코르 공연에 돌입했다. 올 2월 공연은 약 300석 규모의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이번 재연은 700석 규모의 중대형 극장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으로 옮겼다.

김소향은 “지난 공연에 비해 과학자로서의 마리 캐릭터가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마음에 든다”며 “넘버 ‘라듐 파라다이스’의 경우 넓어진 극장 규모에 맞추다 보니 라듐 찬양 분위기가 더 극적으로 표현됐다. 그래서인지 그토록 찬양했던 라듐의 유해성이 밝혀졌을 때 느껴지는 허탈감이나 공포감이 더 부각됐다”고 말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마리 퀴리를 연기하는 배우 김소향이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마리는 20세기 초 이민자 출신의 여성과학자라는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라듐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발견 초기 스스로 빛을 내는 성질 덕에 라듐 시계, 라듐 매니큐어 등이 개발돼 큰 인기를 모았고 이후 암세포를 파괴하는 효능이 알려지면서 라듐 열풍은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라듐의 대중성은 얼마 가지 못했다. 방사선에 피폭당한 피해자들이 나오면서 마리는 고뇌의 여정을 걷는다.

‘마리 퀴리’는 라듐 발견이라는 위대한 업적 이면에 그 위해성으로 고뇌하는 마리와 동료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라듐시계 공장 노동자 안느 코발스키의 서사를 대폭 강화하면서 여성의 연대를 강조했다.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마리의 캐릭터를 분명히 하면서도 그 파트너로 여성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남성 서사와 남성 배우 중심의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사실상 대학로에서 선보이는 첫 여성 원톱극이라 의미가 깊어요. 지금까지는 남자 여러 명에 여자 한 명 정도였거든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여성 배우가 원톱으로 등장하고, 그 상대역도 여성 배우가 설 수 있는 이 변화를 느낄 수 있어 참 뜻 깊어요.”

뮤지컬 '마리 퀴리'의 한 장면. 라이브 제공

여러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무대에 섰던 김소향이지만 여전히 창작 뮤지컬을 사랑한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 덕분이기도 하지만,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싶은 선배의 마음도 담겼다. 그는 “해외 유수의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도 분명 능력이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도 나름의 희열이 있다”며 “내 공연을 보고 후배들이 ‘꼭 하고 싶은 캐릭터가 생겼어요’라고 말해줄 때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김소향은 마리 퀴리를 연기하면서 특히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마리가 누구의 도움 없이 능동적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라듐 실체를 앞에 두고 마리가 어떻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위기를 타개하며 진정한 과학으로 이끌어내는지 집중해 연기했다”며 “마리의 리더십을 녹이려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를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여성 과학자 그 자체로 표현하려고 했다. “이 위대하고 강인한 여성을 ‘퀴리 부인’이 아닌 ‘마리 퀴리’로 표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마리가 노벨상을 탈 때 사망한 남편 피에르 퀴리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졌어요. 그 때 마리가 이런 말을 해요. ‘노벨상은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지 과학자 남편의 사생활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마리는 숱한 장벽에 부딪혔어요. 여성이었고, 이민자였죠. 그런 장애물을 하나씩 허물고 그가 인간 자체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김소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암운이 드리운 공연계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어떤 방식으로든 예술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연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기도 하니까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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