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도 상인도 ‘벼랑끝’… 끝장난 대학, 절망의 사람들[이슈&탐사]

국민일보

교직원도 상인도 ‘벼랑끝’… 끝장난 대학, 절망의 사람들[이슈&탐사]

정해진 미래, 대학의 폐교 ④대학 폐교 그 후

입력 2020-09-12 00:09 수정 2020-09-13 10:22
한국에서 대학 폐교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어 사라지는 대학은 앞으로 더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실한 대학도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터입니다. 연쇄적인 대학 폐교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대학이 폐교되는 현장을 살펴보고 5회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네 번째 기사에서는 2년 전 문을 닫은 서남대의 현재 모습과 폐교 대학 교수·교직원의 삶을 전합니다.

주용기 전 서남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전북 남원 서남대학교 운동장에서 본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서남대는 2018년 2월 28일 폐교됐다. 남원=윤성호 기자

‘미래를 여는 젊은 대학 서남대학교’.

정문 앞 쉼터의 초록색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재질 지붕 아래 빛바랜 슬로건이 흔적만 남아 있다. 슬로건이 무색하게 서남대 남원캠퍼스는 폐교 대학이라는 과거에 잠겨 있다. 갈라진 아스팔트 틈새로 잡초가 성인 허벅지 위만큼 솟아 있었다. 주용기 전 서남대 교수가 “친환경이네! 친환경” 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 교수는 1997년 서남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이 문을 닫기 전 폐교를 막기 위해 국회와 교육부를 사방팔방 쫓아다녔다. 서남대가 폐교된 2018년 2월 이후에는 폐교 대학 교수들이 주축이 된 사회적협동조합 한국교수발전연구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25일 서남대 남원캠퍼스에서 주 교수와 동행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폐교 이후의 삶, 그리고 앞으로 가속화할 대학 폐교에 관해 이야기했다.

“교육자의 길 걷고 싶었어요”

2년여 만에 학교를 찾은 주 교수는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이젠 감정이 좀 메말라서 ‘뭐 잘 정리됐다’ 하는 느낌도 들긴 하는데…. 지나간 시간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아쉽죠.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고 싶었는데 그 길이 끊겼으니까.”

서남대는 2018년 2월 28일 폐교했다. 1991년 3월 문을 연 지 27년 만이었다. 이홍하 전 이사장의 교비 횡령 등 비리가 누적된 게 핵심적인 이유였다. 이 전 이사장은 교비 횡령 혐의로 2007년 구속 기소됐지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2012년에는 교비 1000억여원을 횡령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9년과 벌금 90억원이 확정됐다. 서남대는 2011년부터 5년 연속 부실 대학으로 지정됐다. 재정 지원이 끊기면서 학생 수가 급감했다. 2015년부터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아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주용기 전 서남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전북 남원 서남대 캠퍼스 운동장에 서있다. 주 교수 뒤로 녹슨 농구골대와 건물이 있다. 서남대는 2018년 2월 28일 폐교됐다. 남원=윤성호 기자

주 교수는 “학교에 문제가 있기 전에는 학생이 1만명 정도 있었어요. 축제 때는 상당히 붐비던 때도 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서남대 운동장은 약 190×180m 넓이에 축구장 2개, 농구코트 3개, 테니스코트 1개가 있다. 수많은 학생이 있던 운동장에 지금은 가느다란 갈색 식물이 사람 키만큼 빽빽하게 솟아 있을 뿐이다. 주 교수는 운동장 옆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무들이 엄청나게 자랐네. 이사장 이거 나무라도 팔 텐데 서남대법에 걸려서 속 쓰릴 거예요.”

일명 ‘서남대법’(사립학교법 개정안)은 학교법인이나 사립학교 설립자·경영자가 비리를 저지르고 횡령액을 보전하지 않으면 잔여 재산을 다른 법인에 귀속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서남대 폐교 사태를 계기로 2018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학교법인 이사장이 횡령한 돈을 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만 폐교될 경우 남은 재산이 다시 비리 사학으로 흘러들어갈 수 없도록 막은 것이다. 하지만 ‘서남대법’에는 폐교로 직장을 잃은 교직원을 구제하는 방안은 없다. 주 교수는 “말이 서남대법이지 (잔여 재산을) 국고로 귀속하고 땡인 거예요. 그런 법을 만들 때는 최소한 교직원 보호책이나 혜택을 줄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하나도 없잖아요. 앞으로 어느 학교가 폐교돼도 똑같은 상황이 된단 말이에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교육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 임용령에서는 사립학교 폐교로 퇴직하는 교원을 특별채용 대상으로 규정하지만 초·중등 교원에게만 해당되고 대학 교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주 교수는 2018년 말 전 서남대 교수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조사했다. 연락이 닿은 62명 중 전공을 유지하며 다른 대학에 재직하던 교수는 5명뿐이었다. “근데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그것도(5명) 정규직으로 간 게 아니고, 일종의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어요. 폐교 교수들은 누가 물어봤을 때 선뜻 얘기할 수 없는 거죠”라고 말했다. 교수 간 연락도 점차 끊겼다. “단절이 돼요. 좋은 일이었으면 서로 만나 얘기도 하겠지만. 남원에 계신 분들이 10여명 되는데, 처음에는 다달이 한 번씩 만났는데 지금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서남대는 최근에야 체불된 교직원 임금 약 330억원을 완전히 청산했다. 임금 체불 약 4년 반, 폐교한 지 2년 반이나 지나서였다. 주 교수는 그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대출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냥 덤덤했어요. 후련할 것도 없고. 이미 탈진한 상태였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위로는 ‘아 이제 빚을 정리했다’ 이거죠. 어디서 돈 갚으라는 전화 안 받으니까 편하죠.”

그가 캠퍼스 건물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적어도 수십번, 수백번 접했던 건물이에요. 내가 서남대 교수였다는 생각은 쉽게 안 버려지죠.” 봉사관은 간호학과, 보건·사회복지 계열 학과가 쓰던 건물이다. 1층 바닥은 최근 장마로 들어온 빗물이 덜 빠져 신발 깔창 위까지 찰랑거렸다. 짙은 황색, 회색 곰팡이가 천장에서 지분을 넓혀가며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주 교수는 “여기가 마지막까지 강의를 해서 모양이 덜 흉측해요”라고 했다.

주용기 전 서남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전북 남원 서남대 캠퍼스 봉사관 110호 합동강의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주 교수는 폐교 전 이 강의실에서 교양강의를 했다. 서남대는 2018년 2월 28일 폐교했다. 남원=윤성호 기자

그는 봉사관 1층 110호 합동강의실에서 교양 강의를 했다. 강의실 책상 곳곳에 빗물과 먼지로 눅눅한 책과 시험지가 놓여 있었다. ‘2017년 11월 5일 교양과목 이미지메이킹’ 답안지에는 폐교 직전 흔적이 남았다. 옛 교단에 선 주 교수는 “갑갑하죠. 하아, 갑갑해. 지금도 이사장한테 ‘도대체 왜 그랬어요’라고 묻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 당국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대학 폐교는 대한민국 교육의 치욕스러운 날이기도 해요. 교육부가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거예요. 서남대도 설립자 비리가 처음이 아닌데 계속 내버려뒀잖아요. 교육부가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돼요. 폐교만 달랑 시켜놓고 성과만 챙긴 거죠.”

그러면서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은 교직원들을 위해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방대 소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부는 ‘강제 폐교를 시키진 않겠지만 알아서 하라’는 거잖아요. 알아서 문 닫으라는 얘긴데, 소속 교직원들이 알아서 뭘 하라는 말이에요”라고 했다. 이어 “다른 대학교수로 만들어 달라는 걸 100% 요청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연구라도 하면서 생계를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주변 가게 78곳 문 닫아

“이 동네만 당구장이 9개 있었는데 믿어져요?” 김용태(60)씨는 말했다. 그는 아내 장모(55)씨와 1996년 서남대 후문에 터를 잡고 중국음식점 ‘중국성’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남대 인근에서 영업 중인 곳은 중국성뿐이다. 9개였던 당구장 외에도 김치찌개집, 원룸텔, 만화방, 슈퍼, 복사집, 카페가 문을 닫았다. 해지고 갈라지고 빛바랜 간판의 흔적만 남았을 뿐이다. 전라북도에 따르면 폐교 직후인 2018년 3월 주변 상가 78곳이 문을 닫았다.

한때 일손이 부족해 주방장, 배달원, 설거지 담당 직원까지 고용했던 이곳엔 부부 두 사람만 남았다. 손님도 없다. 김씨는 “배달도 없어. 그냥 문 열어놓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도 팔리지 않아 버티는 중이다.

지난 8월 25일 전북 남원 서남대학교 후문 주변 상가. 2018년 2월 28일 서남대가 폐교한 뒤 인근 상점들은 1곳을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남원=윤성호 기자

부부는 폐교를 막기 위해 2년여간 시위를 쫓아다녔다. 김씨는 “아이고 뭐 그땐 시위만 있으면 쫓아갔지. 서울(국회)로도 가고, 세종(교육부)으로도 가고”라고 회상했다. 장씨는 “우린 여기가 삶의 터전인데. 몇 년을 뉴스만 봤어요. 눈만 뜨면 (폐교 관련 기사) 뭐 없나”라고 했다.

김씨는 교육부를 성토했다. 그는 “아무리 민주주의고 어쩌고 간에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지. 이홍하가 (비리로) 세 번째 때 잡혀갔단 말이에요. 교육부는 비리 저지를 만한 사람한테 왜 계속 허가를 내주느냐고. 교육부도 썩었단 얘기지”라고 말했다. 장씨는 “저희는 딴 거 없고 여기 학교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거 하나 바라보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서남대 폐교의 여파는 남원시내 전체 상권으로도 미쳤다. 서남대 학생이 남원시에서 소비하는 돈이 연 100억원에 육박했었다는 보도도 있다. 남원시 도통동에서 17년 전 호프집을 열었다는 홍모(46)씨는 “저는 완전 허허벌판일 때부터 했던 사람이라 알죠”라고 말했다. 145㎡(44평) 호프집엔 손님이 가득 차 문밖에 긴 줄이 늘어설 때도 있었다. “그때는 완전 대학생들, 젊은층이 많이 왔으니까요. 지금은 너무 한가해요. 장사할 맛도 안 나고. 다른 분들도 매출 반토막 났다고 그래요.”

인근에서 무한리필 고깃집을 운영 중인 윤모(43)씨도 “가장 힘든 건 학교 근처겠지만 도통동이 핫한 상권이라서 다들 타격을 입었죠. 대학 하나 없어지는 건 그 지역 상권 전체가 다 흔들리는 거거든요”라고 했다.

스트레스로 실명… 무기력한 삶

경북외대가 2013년 폐교되기 전 이 대학에서 교수로 영문학을 가르쳤던 교수 A씨(59)는 취업 시장을 전전하고 있다. 폐교 직후 인근 대구대와 영남대에 시간강사로 나갔지만 오래 다니진 못했다. 대학 평가에 국제화 지수가 중요해지면서 학교 측은 A교수 대신 외국인 강사를 고용했다. 그는 교직을 단념하고 한 재취업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베이비붐세대를 대상으로 전자상거래 창업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가족의 생계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아내가 간신히 이어갔다. 둘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구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A교수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등록금을 줄 수 있었으면 어떻게든 대학에 가라고 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내 죄가 크다”고 했다. 그는 2년 전 만성신부전 수술을 받았다. 가족력은 없었다.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스트레스 탓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A교수는 “폐교 이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생활이 불규칙했다”고 말했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교수와 직원들은 교문 밖으로 떠밀린다. 이들은 곧 사회의 잉여인력으로 전락한다. 무능력한 폐교 대학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덤으로 붙는다. 비리나 횡령과는 무관하게 성실히 살아오던 사람들이 폐교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지게 된다. 교육부는 폐교대 출신 구성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희 옛 성화대 교수가 2017년 폐교대 교수 29명을 추적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그중 27명이 우울증 등 병을 앓고 있다. 9명은 조사에서 ‘무직’이라고 응답했다. 어린이집 차량 운전이나 탁송 업무, 농사일로 먹고사는 이들도 있었다.

김 교수의 조사에 응한 B씨는 “폐교 이후 생활비가 부족해 사학연금을 전액 수령해 썼다. 지금은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월 회비를 낼 돈이 없어 동창 모임도 나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C씨는 폐교 이후 받은 스트레스로 잇몸이 망가지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집을 팔고 더 작은 집에 세 들어 산다. 자식과 가족까지 사회의 낙오자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폐교된 대학의 교수 34명은 사회적협동조합 한국교수발전연구원을 만들었다. 이곳의 이덕재 원장은 자신들에게 폐교 대학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화대 폐교 이후 젊은 전직 교수 10여명이 인근 대학의 임용 지원했는데 한 명도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며 “학위와 경험을 갖춘 고급 인력들이 사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운영에 몸 바친 교직원들도 갈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안모(52)씨는 1995년 동해전문대에 입사했다. 대학 이름이 동해대를 거쳐 한중대로 바뀌는 동안 안씨는 교무 파트에 몸담으며 학생들을 맞았다. 하지만 학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월급은 1년 넘게 끊겼다. 2018년 한중대는 문을 닫았고, 안씨는 밀린 월급을 아직 받지 못했다. 폐교 후 그에게 남은 건 갚아야 할 대출금뿐이었다. 안씨는 “나이가 있다 보니 재취업이 어려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사립대학 교직원들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의 적용을 받지만 고용보험법의 대상자는 아니어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실업자의 전직을 지원하는 고용노동부의 직업능력개발사업에서도 배제된다.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은 사학연금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액수 자체가 많지 않고 폐교 과정에서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아 사학연금이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지난달 25일 전북 남원의 서남대 봉사관의 의료장비실습실 내부. 남원=윤성호 기자

폐교 대학 학생들은 모교에 큰 애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부실 대학임을 처음부터 알고 점수에 맞춰 진학한데다 학교가 어려워지는 과정에서 교육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남대 의대에 재학했던 김모(26)씨는 폐교 후 원광대에 편입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서남대는 대학병원이 없어 임상 교육이 어려웠고, 전문성을 갖춘 교수·연구 인력도 거의 없었다.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을 옮겨와보니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좋다”며 “편입학한 대학의 교수나 동기들이 많이 배려해줘서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해진 미래, 대학 폐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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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너희까진 무조건 졸업시킬게’ 폐교, 남은 자들의 다짐[이슈&탐사]
▶③‘월급 없지만 장학금 줄게’…위기의 대학, 처절한 생존[이슈&탐사]
▶⑤“절반 가격에도 안 팔려” 폐교 대학, 청산까지 첩첩산중[이슈&탐사]

이슈&탐사2팀 남원=권중혁 기자, 권기석 김유나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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