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가격에도 안 팔려” 폐교 대학, 청산까지 첩첩산중[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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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가격에도 안 팔려” 폐교 대학, 청산까지 첩첩산중[이슈&탐사]

정해진 미래, 대학의 폐교 ⑤폐교의 경제학 그리고 대안은(끝)

입력 2020-09-14 00:07 수정 2020-09-14 13:09
한국에서 대학 폐교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어 사라지는 대학은 앞으로 더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실한 대학도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터입니다. 연쇄적인 대학 폐교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대학이 폐교되는 현장을 살펴보고 5회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기사는 폐교 대학의 청산 문제와 연쇄 폐교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다뤘습니다.

2018년 문을 닫은 전북 남원의 서남대학교 건물 출입문에 지난달 25일 출입을 제한한다는 'X' 표시의 테이프가 붙어 있다. 남원=윤성호 기자

2011년 11월 폐교된 전남 강진의 성화대는 폐허로 변한 지 오래다. 학교 건물 15개 동과 25만3000여㎡ 부지 가운데 지금까지 팔린 건 기숙사 건물 2개 동뿐이다. 2개 동은 폐교 7년 만인 2018년 11월 매각돼 현재 인근 산업단지 근로자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나머지 건물 13개 동과 부지는 이를 관리하는 청산인과 매수 희망자의 조건이 맞지 않아 매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산인은 남은 재산을 감정가의 50%인 82억원에 한묶음으로 팔길 원한다. 강진군 관계자는 “매수 희망자들은 남은 재산 일부만 사겠다는 입장이지만 청산인은 일괄 매각을 원한다”고 말했다. 학교 재산이 청산돼야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성화대 옛 교수와 교직원들은 10년 가까이 재산 매각을 기다리고 있다.

대학이 문을 닫고 학생과 교직원이 떠난 자리에는 채무 관계가 남는다. 밀린 임금, 방치된 건물, 갚아야 할 빚은 폐교 후에도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학교법인이 기본 재산으로 갖고 있던 땅과 건물을 팔아 채무를 변제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폐교 대학은 지방 중소도시에 위치해 가치가 낮게 평가된다.

청산된 폐교 대학은 한 곳뿐

2018년 2월 폐교된 서남대의 건물과 부지도 아직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소유자였던 학교법인 서남학원은 폐교와 함께 해산했다. 폐교 당시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 5명이 청산인으로 지정돼 재산 처분을 담당하고 있다. 청산인 측에 따르면 법인 소유였던 광주의 적십자병원과 남광병원은 최근 매각이 완료됐다. 서남대 남원캠퍼스를 포함한 주요 자산 9개는 유찰된 상태다. 서남대 건물 관리인은 “자산 규모가 크고 시골에 있다 보니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8년 폐교했지만 전북 남원시 서남대학교는 잔여 건물을 청산하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찾은 서남대 교정은 수년간 방치돼 흉물스럽게 변해있다. 남원=윤성호 기자

대학 폐교 이후 잔여 재산이 처리되는 방식은 학교법인의 존속 여부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서남대처럼 폐교와 동시에 법인이 해산되는 경우에는 남은 업무와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법적인 청산 절차가 진행된다. 반면 기존 법인 산하에 다른 학교가 존재해 법인이 유지되면 잔여 재산은 그대로 법인에 귀속된다.

학교법인이 해산하면 일반적으로 법인 이사가 청산인으로 지정된다. 청산인은 법원의 감독 아래 각종 학교 재산을 관리·매각한다. 교직원들이 받지 못한 임금 등 채무를 변제하는 일도 청산인의 의무다.

청산인은 재산 매각을 위해 경매 절차를 진행한다. 그렇지만 폐교 대학 건물을 사겠다는 구매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감정가액의 절반까지 낮춰 매각을 시도해도 유찰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2월 문을 닫은 한중대는 부지와 시설물이 경매에서 수 차례 유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교수와 교직원들은 밀린 임금을 아직까지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법인이 해산·파산된 폐교 대학 9곳 가운데 청산이 완료된 곳은 경북외국어대 한 곳뿐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지난해 펴낸 ‘폐쇄 대학 및 해산 법인의 체계적 사후조치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폐교 대학의 장부상 자산 금액은 최소 28억원(국제문화대학원대학)에서 최대 409억원(성화대)이다. 그러나 대학 자산 대부분은 근린시설이 없는 지방 외곽에 위치해 실제 가치는 더 낮다. 학교용지(토지)나 교육용 재산(건물)으로 자산 용도가 제한돼 있다는 점도 청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해산 법인 청산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난 3월 사립학교법과 한국사학진흥재단법을 개정했다. 사학진흥재단은 개정법이 시행되는 이달부터 효율적 청산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특히 폐교 대학 교직원의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할 길을 열었다. 사학진흥재단이 먼저 융자를 통해 밀린 임금을 주고 청산 이후 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당장 올해는 사업 진행이 어렵게 됐다. 교육부가 이 사업에 편성한 6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이 기획재정부 예산 심사 단계에서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미지급 급여가 남은 성화대·한중대 구성원들은 2022년 이후에나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학만 문을 닫고 법인이 존속하는 경우 남은 자산과 부채는 고스란히 법인에 귀속된다. 지난달 31일 폐교한 동부산대는 주인인 학교법인 설봉학원이 부속 유치원을 운영 중이라 법인이 유지됐다. 동부산대의 잔여 재산은 설봉학원이 소유한다. 폐교 대학 건물과 땅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법인의 판단에 달렸다. 교육부나 사학진흥재단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가치가 낮은 자산의 매각이나 활용 방법이 마땅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고등교육 전문가들은 법인이 폐교에 책임이 있는 경우 잔여 재산을 법인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비리 법인이 해산하면 잔여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키도록 한 ‘서남대법’(사립학교법 개정안)처럼 법인이 존속하는 경우에도 재산을 돌려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김병국 사립학교개혁과비리추방을위한국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대학만 문을 닫은 경우에도 잔여 재산을 처분해 체불임금을 주고 해고된 교직원의 생계를 지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연쇄 폐교는 눈앞의 현실

문을 닫는 대학은 앞으로 수 년간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일보 취재팀의 지난 9일 <‘월급 없지만 장학금 줄게’…위기의 대학, 처절한 생존> 보도대로 최소 8개 대학이 교직원에게 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학령인구 감소라는 충격이 더해지면 연쇄 폐교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 입학 가능 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지난 7월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방안’ 보고서에서 “지방대학은 4년 안에 신입생 수가 20% 이상 줄고 2024년 지방대학 26곳은 신입생을 절반도 못 채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실 없는 지방대가 난립하게 된 근본적 책임은 역대 정부에 있다. 김영삼정부는 1996년 대학의 다양화·특성화를 유도하겠다며 설립 기준을 완화하는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했다. 준칙주의 도입 이후 2014년까지 일반대학 52개교, 전문대학 9개교가 신설되거나 개편됐다. 2015년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낸 자료집에 따르면 이때 세워진 일반대학의 46.2%(24개교)는 문을 닫거나 부실 대학으로 선정됐다. 이 중 18개교가 수도권 바깥에 위치한 지방대학이었다.


연쇄 폐교가 눈앞에 닥치자 정부는 ‘폐교 이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폐교로 인한 지역사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종합적인 폐교 대학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위기 대학의 자진 폐교를 유도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같은 해 4월 사학진흥재단이 펴낸 ‘폐교 대학 종합관리사업 타당성 분석 및 재정운용 모델 연구’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폐교 대학에 대한 사후 관리뿐 아니라 사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폐교 대학의 자산 가치를 유지해 매각 가능성을 높이고 교직원이 전문성을 살려 재취업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폐교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사전적인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도 제시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폐교 대학 종합관리 사업을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사학진흥재단과 함께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사업 가운데 폐교 대학의 각종 기록물을 보관하는 센터는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퇴로 열어주는 게 맞나 ‘딜레마’
정부는 한계 대학이 자진 폐교를 신청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폐교 위기에 놓인 대학들은 정상적인 교육이 어려워도 법인의 재산이 얽혀 있어 지지부진하게 연명하는 경우가 많다.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여건만 주어진다면 대학 운영을 그만하고 싶다는 총장·이사장들도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대학 청산 시 잔여 재산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 귀속토록 하고 있는데 한계 상황에 놓인 사학 설립자 등이 잔여 재산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출구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폐교를 닷새 앞둔 지난달 26일 부산 해운대구 동부산대학교 도서관 창문에서 바라본 캠퍼스 모습. 부산=윤성호 기자

이에 대해 폐교에 책임 있는 자들의 재산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설립자나 이사장이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 회생 가능한 대학들마저 일부러 폐교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김병국 위원장은 “설립자가 대학에 낸 출연금은 개인의 것이 아닌 공익법인의 소유물이다. 이를 다시 개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설립자가 재산을 쉽게 가져갈 수 있게 하면 건전한 지방대의 폐교를 초래, 교육의 공공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며 “폐교 위기에 놓인 대학이 얼마나 되는지, 자진 폐교에 구성원들이 동의하는지, 폐교의 효용성과 폐해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방대학의 체질 개선보다 폐교로 이어지는 양적 구조조정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주국제대는 2018년 재정지원 제한 대학 II유형에 선정된 후 입학 정원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학과 통폐합에 적극 나섰다. 학교를 살려보려는 자구책이었지만 아직 부실 대학 낙인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김덕희 제주국제대 총장 직무대행은 “교육부가 과거 3년 치 자료를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하다 보니 투자를 늘려도 바로 빛을 보기 어렵다”며 “2022년도 재정지원 대학 해제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는데 내년이 되면 (운영이) 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폐교 대학 교수들이 설립한 사회적협동조합 한국교수발전연구원의 이덕재 원장은 “교육부는 부실 대학을 정상화하기보다 일괄적으로 폐교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마치 짜인 각본대로 폐교를 진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국 위원장은 “대학 구조조정이 초래할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고민이 당정청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며 “폐교는 구조조정의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폐교는 지방대학 전반의 부실로 이어지므로 정부가 지방대학 육성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지방대학이 인적 토대를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면서 전체 대학의 ‘10% 정원 감축’을 제안했다.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의 정원도 감축해 지방대학의 급격한 몰락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정부가 사립대학 재정의 절반 이상을 지원하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과 지방 사립대 감사 확대도 제안했다.



[정해진 미래, 대학 폐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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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교직원도 상인도 ‘벼랑끝’… 끝장난 대학, 절망의 사람들[이슈&탐사]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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