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만능 치트키? 진짜야 사기야, 피해자만 발동동

국민일보

코로나 만능 치트키? 진짜야 사기야, 피해자만 발동동

입력 2020-09-16 17:08

서울 강남에 사는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 2월 동네 헬스장 운영자로부터 ‘코로나 때문에 잠시 문을 닫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7개월이 지났지만 헬스장은 영업을 재개하지 않았고, 등록비 환불에 대한 안내도 받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헬스장에 전화를 해 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관할 구청 등에도 문의해봤지만 전부 ‘모르는 일’이라는 답변이었다. 박씨는 16일 “진짜 방역을 이유로 문을 닫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염병을 핑계로 등록비만 받아 챙긴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코로나19 때문에’라는 이유로 계약 불이행에 따른 보상을 해주지 않거나, 계약금 지급을 미루는 등의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 핑계가 일종의 ‘만능 치트키’처럼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믿고 막연히 기다리는 사람도 있지만, 문제가 있음에도 사기 정황이 명확하지 않아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천에서 세탁업체를 운영하는 최모(45)씨는 운영이 어렵다는 헬스장 측의 부탁으로 상반기부터 매월 70~80만원에 달하는 세탁비를 1~2개월씩 늦게 지급받았다. 그러나 정부의 거리두기 조치 강화 이후 아예 대금 지급을 하지 않는 헬스장이 늘어나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최씨는 “20곳 정도에 지불요청 문자를 남기면 이제는 절반 정도가 대답조차 안 한다”며 “(헬스장 운영을 재개한) 이번 주도 세탁비 관련 문자를 돌렸더니 딱 한 곳만 ‘내일까지 꼭 드리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정부 방침에 따라 몇 달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려운 마음도 이해하지만 우리도 어려운 건 매한가지”라고 호소했다.

계약상 ‘을’의 위치에 있어 ‘갑’에게 비용 지급 요구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계약업체의 손실이 곧 본인의 손실로 이어지고, 향후 재계약 체결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속앓이만 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그래픽(CG)업계에서 일하는 이모(39)씨는 2~3개 계약사가 코로나19를 핑계로 수개월째 1억여원의 작업대금 결제를 미루고 있지만 이렇다할 대응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씨는 “세금도 못 낼 처지에 놓여 세무서에 문의하니 해당 회사(계약사) 매출에 채권을 잡아 그 비용을 세금으로 나가게 하라던데, 그 업체에 압류가 들어가 흔들리면 우리 회사도 영향을 받는 구조라 막상 행동에 옮기는 건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씨는 ‘갑’이 정말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이씨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문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이름만 말해도 알만한 업체가 우리같은 소규모 기업에 줄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코로나가 ‘갑’들에게 딱 좋은 핑계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감염병 확산이 낳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회적 신뢰 관계마저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진짜 어려워진 업계도 있고 코로나19를 핑계로 기존 계약을 불이행하려는 업체도 있을텐데, 두 경우 모두 경제의 불확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정부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한 정책을 때맞춰 발표해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고, 개개인은 코로나19와 관계없이 계약 사항은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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