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알아서 끓여라?…‘돌봄’ 못받고 방치됐던 ‘인천 형제’

국민일보

라면 알아서 끓여라?…‘돌봄’ 못받고 방치됐던 ‘인천 형제’

아동방임 112신고 3년째, 인천에만 초등학생 결식아동 6251명
중화상 형제 코로나19 상황속에서 학대피해아동으로 관리해오다 참변

입력 2020-09-17 12:54 수정 2020-09-17 15:2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학교에서 급식을 받지 못한 초등생 형제들이 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나 중화상을 입은 것과 관련, 경찰이 아동학대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상황에서 형제끼리 음식을 조리하다가 불이 나 형과 동생이 크게 다쳤다고 인천 미추홀소방서가 15일 밝혔다. 사진은 화재가 발생한 주택 내부. 연합뉴스

국민일보 취재결과 중화상을 입은 형제는 인천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학대피해아동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인천시와 인천 미추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빌라에서 B군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던 중 불이 나 형제가 모두 전신에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 형제를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돌봄이 필요했지만 누구도 이 형제 곁에 없었다.

이 때문에 A군(10·초등 4년)은 전신 40% 화상을 입었고, B군(8·초등 2년)은 5% 화상을 입고 장기 등을 다쳐 위중한 상태다.

불이 나자 B군이 사고 발생 6분후인 당일 오전 11시16분 119에 신고했고, 소방대원들이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통해 5분뒤에 도착해 불을 껐으나 피해는 심각했다.

경찰은 화상를 입은 초등생 형제들이 안정되는대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키로 했다. 코로나 블루로 우울감이 늘어나면서 가정의 안전망도 파괴되고 있다.

인천시 아동복지관 등의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불가능해지자 인천시교육청에서는 점심 한끼에 5000원을 지원했으나 아이들은 외부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했지만 아무도 안전하게 라면을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돌봄서비스는 없었다는 것이다. 형제의 어머니는 학교측에 “(내가)집에 있으니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사고당시 형제의 곁에 어머니는 없었다. 학교에 돌봄교실을 신청하면 급식지원이 가능하지만 이 형제는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에만 결식아동은 1만2909명이 존재하고, 아동 전체인구가 줄어 해마다 결식아동이 줄지만 밥을 굶는 초등생들은 사각지대에서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인천지역만 초등생 6251명이 결식아동으로 파악됐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 가정의 화재예방을 위해 가스레인지 사용시 안전교육을 실시하지만 초등 저학년생이 직접 가스레인지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 사고가 증명하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인천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의뢰를 받은 미추홀경찰서는 초등생 형제의 어머니 C씨(30)를 아동보호사건 의견으로 지난 8월 검찰에 송치했다.

C씨는 A군과 B군 형제에 대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체적으로 학대하거나 방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시는 초등생 형제를 학대피해아동으로 관리하며서 전문가 개입 상담 및 심리치료는 진행했지만 라면 끓여먹는 생활훈련 등 돌봄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쌀과 부식 등은 공급받고, 학교로부터 급식 대신 식비를 받았지만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경찰은 초등생 형제의 아동학대와 관련, 2018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C씨가 아이들을 방치해놓는다”는 내용의 112신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3년간 인천시의 사회복지전달체계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결국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가정내의 코로나 블루까지 공적서비스를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C씨가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고 경제적 형편상 방임의 우려가 있다며 인천가정법원에 어머니와 아이들을 격리해달라는 보호명령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보호자 상담은 필요하지만 아동보호시설 위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부모와의 격리를 거절해 결국 참변을 막지 못했다.

이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독자적으로 최근 A군 형제에 대한 피해아동보호명령신청을 법원에 다시 청구한 상태다.

인천시 관계자는 “미추홀구에서 긴급의료비 300만원을 지원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모금을 통해 치료비 지원과 안정적인 보호망 확보에 나설 예정”이라며 “인천도시공사도 주거복지 차원에서 치료후 초등생 형제가 살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시교육청도 해당 학교를 통해 원스톱지원팀을 가동하고, 교육복지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후원금 모금에 나서고 있다.

한편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 미추홀구 초등생 형제 화재 사고와 관련,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각종 사건·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는 우선 각 군·구와 함께 지역아동센터 등 돌봄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전수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돌봄소외 위험 대상 아동을 발굴해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특히 시는 이번과 같은 위기상황에 처한 가구가 생길 경우 관련 기관·단체 등과 연계한 응급대응팀을 가동해 신속한 조치와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인천시교육청도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돌봄서비스 운영을 활성화하고, 교육복지 우선지원사업과 연계한 취약계층 학생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현재 시행 중인 취약계층 학생 대상 원격수업 기간 중 중식비 지원에 더해 취약계층 학생의 안전사고 발생 시 지속적인 치료와 학습·정서적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시와 교육청은 미추홀구 화재 사고로 크게 다친 초등생 형제들을 지원하기 위해 초록어린이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각급 사회단체와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당장은 다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행정적 조치를 집중할 것이고, 이번 화재 사고처럼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돌봄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는 일이 없도록 좀 더 촘촘한 아동 복지의 틀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교육안전망 구축 필요성을 인식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나 가슴이 아프다”며 “원격수업 상황에서도 취약계층 학생에 대한 지원이 이어질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살피겠다”고 밝혔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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