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죽은 딸 사진이 전화기에…” 경찰이 나섰다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죽은 딸 사진이 전화기에…” 경찰이 나섰다

입력 2020-10-05 00:03 수정 2020-10-05 00:03


경찰이 죽은 딸의 사진이 보관된 휴대전화를 되찾아 아버지에게 돌려준 사연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A씨(64)에게 휴대전화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이 휴대전화에는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죠. A씨는 딸이 그리울 때마다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휴대전화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A씨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아파트에서 인테리어 작업을 하기 위해 난간에 잠깐 놓아둔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A씨에게 휴대전화는 단순한 통신기기가 아니었습니다. 정보통신기기를 잘 다루지 못해 딸과 찍은 사진을 다른 저장장치에 옮겨놓지 못한 탓에 그 휴대전화는 세상을 떠난 딸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진첩’이었던 것이죠.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딸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망에 빠진 A씨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광주 남부경찰서 강력 3팀은 A씨 사연을 듣고 휴대전화 찾기에 나섰습니다.

수사는 장애물의 연속이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장소를 볼 수 있는 CCTV는 없었습니다. 목격자가 없어 절도범을 특정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경찰은 탐문 수사 끝에 현장을 멀리서 비추고 있는 CCTV를 찾아냈습니다. 이 CCTV에는 용의자가 까만 점으로 보일 만큼 흐릿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단서를 토대로 끈질기게 추적했습니다. 경찰은 수사 착수 9일 만에 절도 피의자 B씨(96)를 주거지에서 붙잡았습니다. B씨는 A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휴대전화는 이미 초기화돼 있었습니다. 딸과 함께 찍은 사진도 지워졌습니다. A씨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줘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죠.

경찰은 A씨를 위해 삭제한 데이터를 복구하는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사용해 딸 사진을 되찾아주기로 했습니다. 휴대전화는 다행히 별다른 문제 없이 복구됐습니다. 딸이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경찰은 복구한 휴대전화를 A씨에게 돌려주면서 USB(이동식 저장장치)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A씨가 다시 휴대전화를 분실하거나 도난당할 때를 대비해 USB에 사진을 복사해 놓았습니다. A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앞으로도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찰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훔친 B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연에는 “이게 진정한 경찰이다” “CCTV 몇 개 훑어보고 못 찾는다고 포기하는 경찰이 태반이다. 진짜 내 일처럼 발 벗고 이 잡듯 뒤지는 참경찰을 만나신 저분은 운 좋으신 거다” “경찰의 의무는 민생 안정과 치안 유지이지만, 국민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얼마나 훈훈하고 경찰을 신뢰할 수 있는 일이냐”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 사연을 쓰면서 경찰의 존재 이유를 곱씹어 봤습니다. 그리고 확실해진 게 있습니다. 강력범죄자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발 벗고 나선 경찰관도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준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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