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경비 선생님, 암 이겨내세요”…주민들이 대신 근무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경비 선생님, 암 이겨내세요”…주민들이 대신 근무

입력 2020-10-12 14:16 수정 2020-10-13 13:59
MBC '실화탐사대' 캡처

췌장암 투병 중인 경비원을 위해 교대로 근무를 서고 있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사연이 공개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10일 MBC ‘실화 탐사대’에서는 췌장암 투병 중인 경비원 한대수씨를 위해 직접 교대 근무를 서는 주민의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서울 도심 속 88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한 아파트. 이곳에서 10년째 근무한 한대수 경비원은 하루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9월 갑작스레 췌장암 3기 판정을 선고받기까지는 그랬습니다. 한씨는 당연히 경비 일도 그만두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암 판정을 받은 뒤 한씨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민들은 한씨가 암을 이겨내고 돌아올 때까지 교대로 근무를 서며 한씨의 빈자리를 채우기로 했습니다. 한씨가 완쾌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말이지요.

MBC '실화탐사대' 캡처

이날 방송에는 직접 주민들이 마을 곳곳을 정리하며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주민들은 시간표를 짜서 근무를 교대로 섰습니다. 이들은 서로 스케줄을 조율하고 교대 시 주먹 인사를 하며 따뜻한 인사를 나눴습니다.

김개환 주민자치회장은 “인간적으로 저희가 박하게 10년 넘게 일했는데 ‘당신 아프니까 그만두시오’라고 말하며 새로 사람을 뽑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일할 사람이야 많지만 그렇게 박하게 해고하고 그러지는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씨가) 병마와 싸워서 이길 때까지 기다려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BC '실화탐사대' 캡처

MBC '실화탐사대' 캡처

주민들이 한씨의 근무만 대신한 것은 아닙니다. 입주 16년차인 이경자씨는 한씨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는거 아니냐, 도와드려야 할 거 아니냐 해서 조금씩 몇 사람이 모금을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그러다가 돕고싶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후원 규모가 커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이 500만원입니다.

김 회장은 “생각보다 많이 걷혔다. 저희는 10세대에 금액 100만원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88세대 중에 약 50세대가 동참하셔서 금액적으로 500만원 정도가 됐다”고 했습니다.

이사간 사람이 한씨를 위해 모금액을 보탠 일도 있었습니다. 김 주민자치회장은 “가장 압권은 이사가신 분이 연락이 와서 대신 전해 달라고 한 것”이라며 “아이 손잡고 온 젊은 엄마가 봉투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아직 살만한 세상이지 않나”라고 흐뭇해했습니다.

MBC '실화탐사대' 캡처

평소에도 한씨를 ‘경비 선생님’으로 칭한다는 이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 한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입주 3년차인 한철우씨는 “그냥 아버님같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처럼 아들처럼 지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입주 3년차인 박은경씨는 “친정아버지 같다”며 “편하면서도 좋으면서도 어려운 친정아버지같은 느낌이었다”며 항상 인사드리던 분이 아프셔서 마음이 안좋았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MBC '실화탐사대' 캡처

이렇게 따뜻한 공동체에는 이야깃거리도 넘쳐났습니다. 혼자 지내는 노인을 위해 형광등을 교체한 사연, 아이를 출산한 뒤 아랫집에서 내복을 선물받은 이야기 등 주민들은 아파트에 살면서 겪은 일들을 줄줄이 풀어놨습니다.

주민들은 봄·가을 모두가 함께 대청소를 합니다. 이날 방송에는 모든 세대가 가을을 맞아 너나 할 것 없이 아파트 곳곳을 청소하는 모습도 담겼습니다.

주민들은 대청소를 하며 “자발적으로 나와서 같이 청소하고 끝나면 음식도 나눠먹는다” “그동안 주민들끼리 서로 소원했던 것이나 좋았던 일들을 나누고 있다” “외부에서는 사장님, 이사님이라고 해도 여기오면 그냥 주민이다”라고 말하는 등 너나 할 것 없이 아파트의 화목한 분위기를 자랑했습니다.

이렇게 화목하니 주민들이 아픈 경비원을 위해 대리 경비를 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어쩌면 한씨의 선량한 성품이 주민들을 따뜻하게 바꿔놓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고요. 선후야 어찌됐든 네모 반듯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88세대로 이뤄진 작은 마을을 이뤘고 주민들에게 튼튼한 울타리가 됐습니다. 인구 1000만명의 각박한 도시 서울에서도 좋은 이웃을 만나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는 건 가능한 모양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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