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불길 피해 내달린 맨발, 그 앞에 놓인 건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불길 피해 내달린 맨발, 그 앞에 놓인 건

입력 2020-10-15 10:33 수정 2020-10-15 10:41
연합뉴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불이 어떻게 저만큼 붙을 수 있죠?”

지난 8일 울산광역시 남구 주상복합건물 ‘삼환아르누보’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마가 33층짜리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불은 강한 바람과 건물 마감재 등을 타고 외벽 위아래로 번지기 시작했고 127가구가 입주해 있던 건물은 불기둥으로 변해갔습니다.

한밤중 화재로 온 국민의 애를 태웠지만 소방관들의 발 빠른 출동과 대피 매뉴얼을 잘 지킨 입주민들의 침착함으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었지만 화재 규모를 두고 봤을 때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매우 다행이었지요.

연합뉴스

상상만으로도 급박했던 그날. 모두가 정신없었던 그때를 회상하며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 지난 12일 울산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했습니다. 아르누보 건물 입주자의 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네티즌 A씨는 화재 당시 기억을 대신 전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에 따르면 A씨의 지인은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 나왔다고 합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달릴 뿐 아무것도 챙길 겨를이 없었죠. 그래도 무사히 건물을 탈출했는데 아이가 연기를 마신 것 같더랍니다. 급히 아이를 119구급차에 태워 먼저 병원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잠깐의 안도와 함께 그는 그제야 자신을 내려본 모양입니다. 얇은 잠옷 바람을 하고 있었고 맨발로 서 있었습니다. 얼마나 급박했는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그의 차림새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가 간절히 찾고 있다는 한 여성이 나타난 건 바로 이때였습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여성은 두툼한 코트와 신발을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A씨 지인이 깜짝 놀라 허둥대는 사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고요. A씨는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어합니다. 선행을 베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지인의 마음을 대신 전달했습니다.

“도와주신 분도 훌륭하고 도움을 받으신 분도 아직 경황이 없으실 텐데 대단하네요.” “다들 무사하다니 감사합니다.” “몸도 마음도 빨리 추스르길 바라요.” “가슴 따뜻한 이야기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에는 수십 건의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도움을 준 여성과 그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하려는 A씨의 지인 모두를 칭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이외에도 이번 울산 화재 현장에서 전해진 미담은 유독 많았습니다. 한 온라인 카페에는 ‘아르누보 화재 주민께 아기 분유 4박스를 나눠드리겠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고, 연기 자욱한 복도에서 부모의 손을 놓친 아이를 대신 구해준 사연도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아직 살만한 세상임에 감동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인사가 지금도 오가고 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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