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들” 폭발한 이근, 유튜버 폭로는 ‘정의’일까

국민일보

“쓰레기들” 폭발한 이근, 유튜버 폭로는 ‘정의’일까

입력 2020-10-19 16:56 수정 2020-10-19 17:23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이 사건을 게시했다고 볼 수 없다”
“별다른 구체적·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판사 한경환)가 지난 3월 최태원 SK 회장이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를 상대로 낸 허위사실 유포금지 가처분 청구 재판에서 한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무분별한 폭로 행태는 지속했고, 언론과 유사한 형식을 띠는 유튜브는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생태계는 간단하다. 자극적일수록 조회수가 높다. 조회수는 돈이 된다. 그러니까, 자극적일수록 돈이 된다. 콘텐츠는 대부분 ‘충격 단독’ ‘특종 단독’ 같은 말머리가 붙어있다. 눈길을 끌어야 하니 최대한 노골적인 썸네일과 파격적인 제목을 단다. 이들이 만든 이슈는 곧 기성 언론의 입을 통해 대중에 확산한다. 거짓이 명백해져도 정정 보도에는 관심이 없고, 의혹이 사실이어도 이미 속수무책으로 2차 피해자가 발생한 뒤다. 대중과 언론의 속성을 간파한 일부 유튜브가 악질로 지적되는 이유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조사에 따르면 대중이 가장 신뢰하는 매체는 유튜브(19.2%)였다. 대중은 유튜브를 이미 언론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유튜버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폭로에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튜버 김용호(왼쪽), 이근 대위. 유튜브 캡처

유튜브 ‘가짜사나이’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근이 1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별 쓰레기들 다 봤다”며 또 다른 고소를 예고했다. 앞서 유튜버 김용호가 이근이 전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성의 사망과 연관 있다는 주장을 펼치자 이에 반박한 것이다. 이근은 “지금까지 배 아픈 저질이 방송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든 말든 무시했더니 이제는 하다 하다 내 스카이다이버 동료 사망사고를 이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며 “유족에게 2차 트라우마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장에도 없었던 날, 그분의 교관을 한 적도 없던, 남자친구가 아니었던 나 때문에 A씨가 사망했겠나”라며 “이 사실은 A씨 가족들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용호는 이근의 경력이 허위라고 주장했다가 피소됐다.

현재 유튜버 김용호와 정배우가 앞장서 ‘가짜사나이’에 출연한 이근, 로건, 정은주 등의 성추행, 폭행, 성매매 등 혐의를 연달아 폭로하고 있다. 피해를 알린다는 점에서 공익성이 전무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피해자 보호보다 자극적 소재에 집중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서다. 큰 틀은 미투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개를 들여다보면 전혀 조심스럽지 않다. 유명인을 앞세워 노골적인 가십거리를 만들고 조회수를 올리는데, 이는 미투 운동의 본질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유튜브 받아쓰는 언론들

이런 나쁜 사이클을 기성 언론이 강화한다. 기성 언론은 이를 받아서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별도의 취재 과정을 생략하고 이들이 제공하는 증거에만 의존해 무분별하게 기사 쏟아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의 서사를 가져오면서도 여러 맥락을 삭제하는 탓에 2차 피해가 지속하고, 일부에서는 사건을 희화화하기도 한다.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지면 성범죄를 포함한 여러 범죄의 공익 제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여 악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성범죄 피해 보도의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고, 공익 제보자를 악용하는 점은 큰 문제다.

지난 1월 '성폭행 혐의'를 받는 가수 김건모가 경찰조사 마친 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연합

이런 우려는 앞서 김건모 성범죄 사건 때 두드러졌다.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는 ‘[충격단독] 김건모 성폭행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뒤 연달아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범행 장소가 술을 판매하는 업소였다는 점을 부각했고, 대중은 여기 집중했다. 비난은 피해자에게 꽂혔다. 선정적인 내용을 부각하고 사건 과정이나 피해자의 증언을 자세히 묘사하면 성범죄는 포르노가 되지만,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2차 피해를 감안했다면 이런 무책임한 폭로는 지양했어야 한다.

문제는 언론이다. 자극적인 부분을 유독 부각해 줄지어 받아 썼다. 뉴스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과정에서 유튜브는 어떤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언론은 그 테두리 안에 있으나 이를 스스로 어기고 있다. 유튜브가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앞세워 조회수를 따라가는 행태를 언론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언론의 조회수 우선 주의를 유튜브에서 이어받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한다. 언론이 신뢰를 잃으면서 스스로 여러 제보를 유튜브로 넘겨 준 촉매 역할을 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캡처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가

지금까지 추이로 본다면 유튜버들의 폭로에 높은 신빙성을 부여할 수 없다. 앞서 최태원 회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용호가 소속된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는 ‘회장님의 ‘그녀’는 누구일까요?’라는 제목의 방송에서 최 회장이 한 여성과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여성은 현재 동거하고 있는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가세연이 제기한 최 회장과 관련된 폭로 대부분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사진 속 여성 관련 의혹을 포함해 최 회장이 수감 시절 전국 교도소에 라텍스 베게 10만개를 기증했다거나,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도 모두 허위로 판단했다.

“가세연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이 사건 게시물을 게시했다고 볼 수 없다. 최 회장이 대기업 회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가세연 방송 채널의 구독자 수나 화제성 등을 고려하면 표현의 자유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최 회장이 현재 동거 중인 사람 외에 다른 여성과 교제한다는 부분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 대상이 될 수 없다. 가세연은 별다른 구체적·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이 사건 게시물로 최 회장의 사생활이 함부로 타인에게 공개됐고, 그로 인해 사회적 평판이 침해당했다. 가세연은 막연히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부터 얻은 정보’라고 해 마치 진실인 것 같은 인상을 줬다”

정배우(왼쪽, 유튜브 캡처)와 그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 캡처

무고한 시민 피해는?

유튜브는 신상공개 및 사생활 폭로를 주저하지 않는다. 유튜버 정배우는 ‘가짜사나이2’에 출연했던 교관인 로건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이른바 ‘몸캠 피싱’ 사진을 공개했다. 중요 부위를 가리긴 했으나 얼굴과 상의는 그대로 노출됐다. 자신을 ‘기자’로 지칭하는 정배우는 이런 행동이 정당하다는 태도다. “이미 인터넷에 유출돼 있던 사진이라 괜찮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앞세웠다.

앞서 가세연도 유명 배우의 사생활을 공개하면서 한 변호사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었다. 무고한 시민이었으나 사진까지 여과 없이 노출했고, 강경한 대응이 들어오자 해당 콘텐츠를 삭제했다. 유튜브의 이런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폭로는 기성 언론으로 이어져 확장했다. 가세연이 영상을 내렸어도 기사는 양산됐다. 일부 언론은 ‘가세연에 따르면’이라는 문장으로 교묘히 책임을 떠넘기면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이 변호사의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 그대로 보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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