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3만원’ 삼성상회, 글로벌 삼성된 결정적 순간

국민일보

‘자본금 3만원’ 삼성상회, 글로벌 삼성된 결정적 순간

1987년 “세계적 초일류” 외치며 취임한 이건희 회장
1993년 “모든걸 바꾸라” 신경영선언으로 완전한 변화

입력 2020-10-25 11:29 수정 2020-10-25 13:52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4년 9월 26일 신라호텔에서 정계, 재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최초 256MB D램 개발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국민일보DB

고(故) 이병철 회장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시의적절하게 사업을 확장시켜 1위 기업을 향한 초석을 다졌다면, 이건희 회장은 발로 뛰면서 ‘글로벌 삼성’을 키워냈다.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세운 ‘삼성상회’는 6·25 전쟁 이후 밀가루, 설탕 등을 유통하면서 자립경제의 틀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중화학공업에 투자해 기간산업의 기반을 닦았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 초기에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주로 생산할 때 주변에선 이병철 회장이 전자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도체 사업에 투자할 때도 내부 반대가 컸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전자와 반도체가 미래 핵심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이병철 회장의 안목은 집중 조명을 받았다. 삼성의 역사는 한국 경제발전과 함께한 ‘도전의 시간’이었다.

결정적 변화의 시기에 이건희 회장이 취임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취임사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삼성은 글로벌 일류 IT 기업이 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은 국내에서도 명실상부한 1등이 아니었다.

하지만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 자식 빼놓고 다 바꿔보라”며 내놓은 ‘신(新)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완전히 다른 경지로 탈바꿈했다.

그 중심에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1986년 1MB D램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92년 이미 세계 최초로 64MB D램 개발에 성공한 상태였다. 삼성전자는 2017년을 기준으로 D램, 낸드플래시 글로벌 시장 1위에 올라섰다.

1993년 11월에는 삼성전자 최초의 휴대전화가 탄생했다.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갤럭시S, 노트 시리즈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에 올랐다.

조민영 심희정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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