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20대, 입맛은 80대…‘할메니얼’의 등장 [청춘 20㎞]

국민일보

나이는 20대, 입맛은 80대…‘할메니얼’의 등장 [청춘 20㎞]

입력 2020-11-21 09:20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인절미 빙수, 쑥 라떼, 흑임자 아이스크림. 게티이미지뱅크

대세는 ‘할매입맛’

‘흑임자 버블티’ ‘인절미 마카롱’ ‘쑥 라떼’….

어딘가 촌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흑임자, 인절미, 쑥이 버블티, 마카롱, 라떼, 케이크 같은 요즘 디저트를 만났다. 할머니가 좋아할 것 같은 전통 식재료가 더해져 탄생한 새 디저트에 2030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초딩입맛도 아재입맛도 아닌, 할머니가 좋아할 것 같은 ‘할매입맛’을 가진 ‘할메니얼(할매+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다.
인스타그램에선 ‘할매입맛’ 해시태그를 단 음식 사진이 인기를 끌고, 전통 찻집이나 퓨전 디저트 맛집 정보가 활발히 공유된다. 카페와 편의점 등엔 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새롭게 출시된 메뉴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할메니얼’에게 물었다. “이런 거 왜 찾아 먹니?”
왼쪽은 배스킨라빈스 삼청동점에서만 팔고 있는 흑임자 아이스크림이다. 오른쪽에 꽃혀 있는 것은 아이스크림에 뿌려먹는 참기름이다. 오른쪽은 인절미로 만든 호주의 머랭 케이크 파블로바다. 권씨 제공

자타가 공인하는 ‘할매입맛’ 대학생 권모씨(23)의 취미는 인절미 파블로바나 머랭 쿠키, 쑥 라떼 같은 메뉴를 파는 개인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는 “유행이라고는 해도 프랜차이즈 카페나 편의점에서 파는 상품은 한정적이다. 개인 카페에서 파는 메뉴가 훨씬 다양해 SNS 등에서 검색하고 찾아가는 편이다”라고 귀띔했다.

일반 프랜차이즈 카페 메뉴 중 ‘설빙’의 인절미 빙수를 ‘최애’ 메뉴로 꼽은 그는 “인절미 특유의 고소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와 같은 할매입맛들은 마냥 달콤한 것보다는 달고 고소한 감칠맛을 사랑한다”는 설명이다.

권씨의 ‘할매입맛’ 사랑은 한 발 더 나간다. “한국 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는 지금 같은 때 ‘할매 입맛’ 상품들을 ‘K-디저트’와 같은 형태로 잘 브랜드화해서 세계의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올여름 내내 ‘흑임자 맛 비비빅’ 아이스크림에 빠져 살았다는 대학생 김씨(25)도 ‘자극적이지 않은 맛’에 계속 손이 갔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맛있어서 엄마와 할머니께도 사다 드렸는데 두 분 다 ‘초콜릿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낫다’며 기분 좋게 드셨다”고 전했다.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다”는 것 역시 ‘할매입맛’ 상품의 큰 장점인 셈이다.

김씨는 진성 ‘할메니얼’로서 식품업계를 향해 ‘신메뉴’ 요청도 했다. “얼마 전에 길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는 걸 봤는데, 그 순간 ‘팥 대신 흑임자 소가 들어간 붕어빵은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는 “흑임자 붕어빵 만들어 출시해주면 정말 자주 사 먹을 것 같다”며 웃었다.

커피 대신 곡물 음료나 스무디를 즐겨 마신다는 대학생 이씨(24)가 요즘 푹 빠진 메뉴는 쑥 라떼다. 최근 흑임자를 넣은 음료가 대거 출시된 것처럼 내년엔 쑥을 넣은 음료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투썸 플레이스를 제외하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쑥 라떼를 판매하는 곳이 없어 아쉽다”며 “거의 모든 카페에 있는 녹차라떼처럼 쑥 라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Newtro(뉴트로)' 메뉴 시리즈를 출시한 투썸플레이스의 메뉴판. 이씨 제공

이씨는 친구들 반응에서 ‘할매입맛’이 요즘 트렌드가 된 것을 실감한다. 그는 “예전에는 ‘쑥 라떼’나 ‘인절미 라떼’ 같은 것을 주문하면 친구들이 ‘애늙은이 같다’고 핀잔을 줬는데 요즘에는 친구들도 함께 먹기 시작했다”면서 “얼마 전 한 친구는 한 브랜드의 흑임자 맛 아이스크림을 먼저 추천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할메니얼’ 돼 볼까…또 생각나는 ‘은은한’ 달달함

‘할매입맛’ 예찬에 궁금증이 커졌다. 식혜, 양갱, 쑥, 깨, 인절미 등 ‘할매입맛’을 겨냥한 여러 재료 중 올해 가장 핫했던 흑임자를 공략 대상으로 선택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 1위인 스타벅스는 2020년 핼러윈 시즌 메뉴로 흑임자 음료 2종을 선보였다. 공차, 커피빈 등 거의 모든 프랜차이즈 카페가 신메뉴의 주재료로 흑임자를 선택했을 정도다. 오리온의 흑임자 찰 초코파이, CU의 흑임자 인절미 스낵 등 흑임자가 첨가된 과자도 인기라고 했다.

카페의 흑임자 음료 3종과 흑임자 케이크 1종, 편의점의 흑임자 음료 3종과 흑임자 빵 2종

카페 세 곳에서 흑임자 라떼·스무디, 흑임자 케이크를, 편의점 두 곳에서 흑임자를 베이스로 한 음료와 빵 제품을 직접 사 소소한 ‘사내 시식회’를 가졌다. 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많이 추천된 커피빈의 ’흑임자 크림 라떼’와 투썸플레이스의 ‘흑임자 생크림 케이크’에 거는 기대가 컸다.

흑임자 메뉴를 처음 맛본 동료들의 대체적 평은 “흑임자 맛=쿠키 앤 크림 맛에서 강렬한 단맛을 뺀 맛”이라는 것이었다.
“곡물 특유의 고소함이 여운을 남긴다”는 평가가 더해졌다. 동료는 “초콜릿이나 생크림처럼 강한 단맛은 아니라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입에 고소함이 오래 남아서 좋다”고 말했다. 콩이나 깨를 싫어한다던 이도 “생각했던 것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의외의 호평을 남겼다.

‘할매입맛’을 겨냥한 제품·메뉴의 인기는 실제 매장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우유의 흑임자 우유는 편의점 세 곳을 돌아 겨우 살 수 있었고, 홍루이젠의 흑임자인절미 샌드위치는 가는 곳마다 다 팔리고 없었다. 파스쿠찌의 흑임자인절미 케이크도 준비된 수량이 모두 팔렸다고 해서 결국 맛보지 못했다.

흑임자가 들어간 상품은 품절되는 경우가 많아 여러 지점을 돌아다녀야 했다. 왼쪽은 편의점에서 품절된 흑임자 우유, 오른쪽은 홍루이젠에서 품절된 흑임자 인절미 샌드위치.

흑임자 메뉴라고 ‘무조건 패스’를 받은 것은 물론 아니다. 흑임자를 내세웠을 뿐 흑임자의 향이나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제품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동료는 편의점에서 산 흑임자 파운드와 흑임자 인절미 크루아상에 대해 “맛은 있는데 ‘흑임자’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기존 빵에 흑임자 이름만 붙여서 유행에 편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먹는 것도 ‘뉴트로’ 시대

‘할매입맛’ ‘할메니얼’ 등이 식품업계의 한 트렌드를 보여주는 키워드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음악과 패션에서의 뉴트로 열풍이 식품으로 전이됐다고 풀이했다. ‘힙지로(힙스터+을지로)’같은 현상이 음식 취향에도 반영됐다는 것이다.

GS리테일 담당자는 “2030 젊은 세대가 레트로 아이템에 열광하고 있다. 할메니얼 현상도 ‘힙지로(힙스터+을지로)’와 같은 뉴트로 트렌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며 “복고 상품을 찾는 젊은 층의 심리를 반영해 다양한 브랜드에서 관련 식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김수련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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